송경훈 변호사 “과학적 증거는 수집 단계에서부터 신경 써야”

환경일보와 법무법인(유)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송경훈 변호사 khsong@jipyong.com
송경훈 변호사 khsong@jipyong.com

[환경일보] 과학적 방법을 이용해 획득한 증거, 이른바 과학적 증거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재판에서 상당한 구속력을 가집니다.

즉 폐수 수질검사와 같은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지닌 감정인이 시료에 대해 일반적으로 확립된 표준적인 분석기법을 활용해 분석하고, 그 분석이 적정한 절차를 통해 수행됐다고 인정되는 이상 법관이 사실인정을 함에 있어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지므로, 비록 사실의 인정이 사실심의 전권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함부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7도1950 판결, 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도8486 판결 등).

‘상당한 구속력’이나 ‘자유심증주의 한계’ 등 어려운 말이 쓰이지만, 전문가에 의해 분석된 과학적 증거가 사실상 재판을 좌우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수질검사를 예로 위 대법원 판결들을 다시 풀어보면 ▷감정인이 전문적인 지식·기술·경험을 가져야 하고 ▷공인된 표준 검사기법으로 분석을 거쳐야 하며 ▷분석 과정은 과학적으로 정당해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분석 대상인 시료의 채취·보관 등 모든 과정에서 시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돼야 하며, 각 단계에서 시료에 대한 정확한 인수인계 절차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유지돼야만 앞서 말한 법관의 사실인정에 대한 상당한 구속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위 요건들이 모두 충족돼 상당한 구속력이 인정되지만, 구속력이 부정된 이례적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해 특정 수질유해물질을 배출했다는 이유로 구 수질환경보전법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결국 무죄로 판결이 확정된 사례입니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14772 판결).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로 제출된 W시 보건환경연구원의 폐수 수질검사 결과 회신을 유죄의 증거로 삼기에 부족하다며 본 제1, 2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사실관계의 대강은 이러합니다. 당시 폐수를 배출하는 알루미늄 제조공장 부근에서 W시 단속 공무원이 채취한 시료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A시료는 공장 담장 밖 맨홀에서 채취한 것(최종방류수와 다른 일반하수가 섞인 것)이었고, B시료는 폐수처리 후 최종방류수에서 채취한 것이었으며, C시료는 폐수처리 전 원폐수에서 채취한 것이었습니다. 단속 공무원은 각각의 시료에 번호를 붙여 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맡겼는데, 이 중 92번 시료의 경우 배출허용기준보다 높은 수소이온농도와 시안이 검출됐습니다. W시와 검찰 모두 92번 시료가 B시료로 채취됐음을 전제로 해당 업체가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해 폐수를 배출했다고 주장했으나, 3심에 걸쳐 법원은 92번 시료가 B시료가 아니라 C시료로 보인다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위와 같이 판단한 근거는 다양하나 ▷단속 공무원이 C시료를 참고용으로만 채취하고 성분검사를 의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C시료를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폐기하였는지 밝히지 못한 점 ▷단순히 채취만 하고 따로 검사를 맡기지 않았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점과 ▷92번 시료의 채취시각이 C시료 채취시각과 일치하는 점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C시료로 채취된 92번 시료가 B시료에 섞인 채 분석되었다는 취지입니다.

과학적 증거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위와 같은 사례에서는 행정청이 주도한 검사절차 외에 재판에서 따로 감정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많고, 감정 절차에서는 위와 같은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그러나 감정 절차라고 시료가 섞이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으므로, 어떤 절차든 시료 채취 과정에 이해관계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류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위 사례에서도 업체 담당자가 단속 공무원이 시료를 채취할 때 참여했었기 때문에 시료가 섞이는 오류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과학적 증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석보다 그 분석대상의 수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증거를 동원할 경우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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