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E(환경)’ 성과 요구에 국내 기업 이해·실천 부족
RE100 추진 체계화 및 ‘환경’ 표준 경영구조 개편 시급

기업이 재무적 성과만 중시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투자자들의 환경 요구가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최용구 기자)
기업이 재무적 성과만 중시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투자자들의 환경 요구가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최용구 기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기업이 재무적 성과로만 인정받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환경까지 생각해야 한다. 기부금이나 비영리법인을 통한 복지사업으로 사회적 책임을 대신했던 것도 과거의 얘기다. 대안은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다. 투자자들은 환경을 생각하고 인권침해가 없으며, 지배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이 오랫동안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이라 여기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위기이자 기회의 기로에 선 셈이다.  

커지는 ESG 수요 

ESG 경영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기업들은 부쩍 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국내 상장기업의 ESG 성과를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등급인 A+를 받은 곳은 2019년 전체 8곳에서 지난해 16곳으로 늘었다. 다음인 A에 해당하는 기업도 같은 기간 50곳에서 92곳으로 급증했다. ESG의 중요성을 인식해 시도하고 있다는 움직임의 방증이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라는 세 지표 가운데 관건은 ‘환경(E)’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힘들다는 게 이유다. 기업들의 선택지는 RE100이다. 필요로 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이 개념은 앞으로의 리스크 대비를 위한 필수가 됐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RE100 Annual Report에 의하면 참여 중인 기업의 2019년 신재생에너지 사용량은 총 113TWh(테라와트시)로, 2015년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이들 기업 전체 필요 전력의 42%를 조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분위기 주도에는 혁신의 대표격인 애플이 있다. 이미 2018년부터 모든 건물, 데이터센터, 매장을 신재생 전력으로 운영 중인 애플은, 특히 2030년까지 전체 공급망과 제품에 있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봤다. 즉, 자사와 거래하는 곳들 역시 신재생에너지로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애플의 CEP(Clean Energy Program) 협력사로 있는 SK하이닉스나 대상그룹이 100%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공급품을 약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늘려갈 수 있는 해법은 직접 발전시설을 짓거나 REC(공급인증서)를 구매하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PPA(전력구매계약)를 체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발전공기업이 아니면 REC 구매는 불가할뿐더러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PPA를 맺는 것도 안 된다. 구매 옵션이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다. 실제 RE100에 참여 중인 기업들 대상의 설문에서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조달이 가장 어려운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 바 있다. 

‘무역장벽’ 불안 엄습

최근 한국미래기술교육연구원 주최의 ‘기후변화에 따른 ESG 경영 확대와 비즈니스 전략 수립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양춘승 CDP 한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은 “한국에 진출한 RE100 참여 기업과 국내기업의 신재생에너지 사용 촉진을 위해선 다양한 조달 옵션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RE100을 따라야 하는 배경엔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거란 우려가 존재한다. 그보다 앞서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배출량 감축이라는 대전제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 간의 RE100 요구에 뒤처지면 치명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거란 우려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제도적 기준부터가 미완성된 상태로 놓여있다.
글로벌 기업들 간의 RE100 요구에 뒤처지면 치명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거란 우려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제도적 기준부터가 미완성된 상태로 놓여있다.

문제는 에너지 전환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갈 만한 뚜렷한 제도적 장치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현재는 발전사업자가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 의무율을 채우고 부족할 경우 REC를 구매해 충당만 하면, 더 이상 신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다는 함정을 안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서 RPS 의무비율을 기존 10%에서 40%로 높이고 REC 가중치를 개편한 것이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ESG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얼마만큼 현실에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업에서도 ESG를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치로 측정이 가능한 재무적 성과와는 다르다 보니, 모호한 추진은 자칫 실행력을 잃기 십상이다. ‘반드시’라는 법적 구속력도 없다.    

김학범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 리스크자문본부 파트너는 “ESG는 하나의 콘셉트이다. 무슨 일이든 이걸 생각하고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내재된 정책과 프로세스를 갖춰 현재 하고 있는 일들과 융합시켜야 하는 문제”라고 조언했다.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해야

그는 “실무 진단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그 과정에선 ESG 경영 우수기업 활동의 벤치마킹과 함께 관련 준거 기준 또한 파악돼야 한다”면서 “필요한 우선순위를 찾아 담당자를 정할 때는 꼭 KPI(핵심성과지표)를 부여해 실행 동력을 유지시키는 것도 핵심”이라고 당부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들 사이엔 불안이 짙게 깔려있다. 탄소중립을 표방하는 정부와 투자자, 경쟁 글로벌 기업들이 ESG를 강조한다고 한들 당장 ‘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기간(2021~2025)’ 대비에 들어가는 기업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거래에 참여 중인 611개사(364개사 응답)를 대상해 그동안의 과정과 준비도를 파악한 설문 결과만 봐도 이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기업들은 ‘배출권 가격 급등락’ 문제를 가장 많이(25.5%) 꼽았으며, ‘감축 투자 아이템이 부족했다’는 반응도 적잖았다(25.1%).

더 나아가 ‘3차 계획기간 중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64%로 ‘계획이 있다(36%)’고 답한 비율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감축 투자 아이템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과반수(59.1%)였는데, 다시 말해 어떻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이미 280여개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참여를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막론하고 환경이 표준이 되는 경영구조 개편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과연 ESG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국내 기업에도 기회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열쇠는 정부와 기업, 산업계 모두가 쥐고 있다.

당장의 온실가스를 줄여갈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업계의 반응은 ESG 경영이 더욱 강조될 앞날을 어둡게 할 요인이다.
당장의 온실가스를 줄여갈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업계의 반응은 ESG 경영이 더욱 강조될 앞날을 어둡게 할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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