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변호사 “국내 기업도 공급망 관리에 만전 기해야”

환경일보와 법무법인(유)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환경일보] 지난 2001년 10월, 소니는 크리스마스 특수를 겨냥해 네덜란드로 게임기를 대량 수출했다. 그런데 세관 통관 과정에서 게임기 내 부품의 카드뮴이 법적 규제 기준인 100ppm을 초과한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소니는 150만대의 게임기를 리콜해야만 했다.

알고 보니, 문제가 된 부품은 협력업체에서 공급받은 것이었고, 소니는 당시 협력업체가 공급하는 부품이 수입국의 환경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미리 관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 3월10일 유럽의회는 ‘기업 실사와 기업의 책임(corporate due diligence and corporate accountability)에 관한 EU 집행위원회에 대한 권고를 포함한 유럽의회 결의안’(이하 본 결의안)을 채택하고, EU 집행위원회에 공급망의 인권 및 환경 실사 의무화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유럽의회는 기존의 기업 실사 책임, 공급망 관리 등을 규정하는 국제규범이 사실상 구속력이 없는 점과 기업의 자율적인 이행에 의존하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며 본 결의안을 채택했다.

본 결의안은 EU 시장 참가자들이 인권, 환경, 좋은 지배구조를 존중할 의무를 이행하고, 자신이 직접 영위하는 영업 활동뿐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나 가치사슬을 통해 인권, 환경, 지배구조에 잠재적 또는 실질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마련됐다. 또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EU 시장 참가자에게 공급망에 대한 실사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본 결의안에 첨부된 지침(이하 본 지침)은 본 결의안의 적용 범위와 실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이에 따르면 본 결의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상장된 기업 또는 고위험 산업군에 속한 중소기업을 적용 대상으로 한다. 아울러 동 기업이 EU 역내에 설립됐거나 EU 회원국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는 물론, EU 이외의 국가에서 설립되고 EU 이외의 법률로 규율되는 경우라도 EU 역내 시장에서 재화를 판매하거나 용역을 공급한다면 본 결의안이 적용된다.

그런데 본 결의안과 본 지침은 ‘재화를 판매하거나 용역을 공급하는’ 것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아 그 범위가 상당히 확장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즉 국내에 소재하고 국내법의 규율을 받는 기업이라도 EU 역내에서 여하한 거래를 하면 본 결의안의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

한편, 본 지침은 개별 회원국이 본 결의안을 따라 국내법을 제정할 때 처벌 조항을 두도록 했다. 아울러 기업이 본 결의안에 따라 실사를 수행했다고 해 향후 제정될 각국의 국내법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민사 책임이 당연히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규정하면서, 공급망 실사의무 관련 소송에서 실사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업이 증명하도록 했다.

선진 글로벌 기업들, 특히 인권이나 환경 침해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에 대해 꼼꼼한 관리를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만 이제까지는 각 기업이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수립해 자발적으로 공급망 관리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공급망 관리를 법정 의무로 규정하고 기업에 강화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을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EU에 본점이 없고 EU 각국의 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국내 기업에 본 결의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와 관련해 향후 본 결의안이 실제로 법률에 반영되는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와 별개로 공급망 관리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은 불가역적이므로, 국내 기업은 지금부터라도 공급망 관리에 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공급망 인권과 환경에 관한 감시, 식별, 예방, 개선에 관한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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