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다음날인 2월 24일 오전, 가은읍 성저리 및 모산굴 일원에서 임진왜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전승 발전되어 온 "모산굴 기세배 굿"을 인근 주민들이 모여 한바탕 전통농악과 함께 벌인다.


 이날 행사는 가은 불우리 농악단과 성저1리 주민 등 약 4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며, 성저1리에서 “모이는 마당”과 “기싸움 마당”을 시작으로, 이 후 모산굴로 이동한 다음 풍물놀이와 위령제를 지낼 예정이다.


 한 때 20개 이상의 마을에서 참여할 정도로 많은 성황을 이루었던 기세배는 일제시대에 중단이 된 후, 자꾸 마을에 우환이 생기자 1993년부터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까지 매년 행사를 치루고 있다.


 전국적으로 기세배의 형태로 나타나는 곳은 전북 완주 ․ 김제 일원과, 충북과 충남 일부에서 보이고 있으나 문경모산굴 기세배처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놀이방법 등에서 차별화 될 뿐 아니라, 경북지역에서는 좀처럼 쉽게 볼 수 없어 그 전승 가치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문경 모산굴 기세배의 유래
 임진왜란 때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모산굴에 피신해 있었다. 모산굴 안에는 물이 꽤 많아서 피난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당분간은 별탈 없이 잘 지냈으나 날이 지날수록 습하고 침침하여 옷을 빨아야만 했다. 그래서 햇볕이 있는 굴밖에 널어놓았는데 그것을 왜놈들이 발견하고 독이 있는 나무를 태워 굴속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을 질식시켜 죽였다. 모산굴 앞에서 관찰해 보면, 이 굴은 바람이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안으로 빨려 들어가 때문에 연기가 자연스럽게 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후 모산굴에는 뭇귀신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굴 출입을 삼갔다. 그런데 동네에 흉한 일이 자주 생겨났다. 점치는 무당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건으로 인해 흉한 일이 생겨나며 그들의 혼을 달래주면 동네가 편안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몇몇 사람들의 의논을 통해 매년 정월 열엿새 귀신달군 날에 뭇귀신들을 위안하는 위령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마을에 흉한 일이 없이 잘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밑 마을만의 위령제였으나 이 굴에서 굿을 하면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한 해 두 해가 지난 뒤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근에서는 ‘성밑 굴 빈다‘, ‘기세배 한다‘고 하면 많은 마을들이 각기 풍물패를 이끌고 왔다. 풍물패가 가장 많이 참여할 때는 20개 마을 이상이 참여하였다.이 모산굴 제의는 일제 강점기 이후 중단되었다가 마을에 우환이 많아 1993년 다시 복원하여 현재 제를 지내고 있다.      <문경=정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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