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북 군위군 소보면에 자리한 농진청 원예연구소 사과시험장에는 때 아닌 사람들로 붐볐다. 전국에서 모인 사과재배 농민들과 도시의 주부 소비자, 견학을 온 어린이 등 약 1500명이 한 자리에 모여 각별한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사과사랑 동호회’의 인터넷 홈페이지(www.iloveapple.co.kr)를 통해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정보를 주고받던 회원들이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사과농사 얘기로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인터넷상의 작은 동호회가 우리나라 사과재배 농가의 어려움을 희망으로 바꿔놓았다.

오지의 작은 연구기관인 사과시험장이 우리나라 사과 재배인을 비롯해 소비자들에게 희망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시험장 연구원들의 서비스정신에서 출발됐다.







지난 90년대 우리나라 사과산업은 농업인의 고령화와 농자재 비용의 상승, 재배기술 낙후, 사과가격 폭락 등의 원인으로 사과재배 면적이 매년 줄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약으로 범벅인데다 과일 크기는 큰 반면 맛이 없다고 불평이고, 생산자는 병해충 발생이 심하고 새로운 기술습득의 기회도 부족해 죽도록 농사지어 중간상인만 좋은 일 시킨다며 불만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험장 연구진은 95년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사과 관련 정보를 제공해보자는 의견을 내놓게 됐다.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시험장이 위치한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에서조차 “생각은 좋으나 실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 농업인 중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며, 있다 해도 지속적으로 관리할 사람과 재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얘기였다. 그러나 사과재배 농업인의 어려움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사과정보 네트워크 구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다시 동료직원들에게 “사과재배 농가가 모두 망한 뒤 연구소의 존재가치가 있겠는가”라며 설득하는 한편 각 지역 과수지도 담당자와 재배농가를 방문해 정보전달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95년 6월 하이텔의 폐쇄이용자 집단전산망을 이용, 전국 최초의 농업품목 동호회로서 ‘사과사랑 동호회’가 온라인상에 태동하게 됐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한 덕분입니다. 이같은 노력에 대한 농업인들의 화답은 동호회의 높은 참여율로 보답하고 있습니다.”

당시 동호회의 산파역을 맡았던 사과시험장 이순원 연구관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동호회가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하면 된다, 안된다 하고 강요하기보다 왜 해야 되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대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사과동호회는 시간ㆍ공간적 제약을 극복하여 사과관련 정보를 농가에 보다 신속하게 전달하고 소비자에게는 친환경 안전 농산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이를 통해 사과원이 병해충 발생을 관찰해 방제대책에 관한 정보의신속한 전달로 방제효율을 높이는 ‘친환경 병해충 종합관리체계(IPM)’를 농가에 확산시켰다.







또한 당시 한국통신에서 지원 보급한 전화모뎀 단말기 6대를 설치하고 동호회 회원을 늘려나가면서 컴퓨터교육과 함께 기술교육도 가졌다.

사과시험장 환경연구실의 이동혁연구사는 “당시 77세 노인이 ‘사과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겠다’며 투박한 두 손으로 자판을 누르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통신기반 시설이 취약한 오지의 사과원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없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전화 통화로 관련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전화음성사서함(053-152-122)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열흘마다 새로운 사과관리 정보를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과시험장은 또 대부분 사과농가가 매년 15~16회씩 무차별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성페로몬 트랩을 이용한 사과원 나방류 발생 예찰방법 연구’를 통해 그동안 사과원에 피해가 나타나야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6종의 나방류에 대한 적절한 농약살포 시기를 정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연간 농약 살포횟수를 약 10회로 줄일 수 있었으며 연간 약 264억원의 약제비용 절감효과를 거두었다.

첫 동호회가 결성된 이후 5년여의 이같은 노력 끝에 사과사랑 동호회는 2000년 10월 마침내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면서 회원수는 95년 개인 및 단체를 포함해 25명이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3800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사과재배 농업인 10중 1명이 동호회에 가입한 숫자이다.







이렇듯 사과사랑동호회는 사과나무를 심을 때부터 나무가 죽을 때까지 전 재배과정을 매뉴얼화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십년의 재배경험을 가진 사람도 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창구로 활발히 이용, 우리나라 사과산업 체계를 세계에서 가장 앞선 형태로 구축한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사과시험장은 이와 더불어 지난 2003년 전국 사과 종합정보 네트워크 사이트(www.apple.go.kr)를 구축, 사과사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꿈을 담아 ‘인터넷 사랑방’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기존 동호회 회원들의 등록자료가 늘어나 병해충 발생상황 등이 데이터베이스화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인터넷망을 통해 전국 어느 지역 사과나무에서 꽃이 언제 피고 과일이 몇 개 달려있는 지 상세히 찾아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과종합 정보망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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