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업체 과다경쟁…저가 부실인증 남발
인증후 사후관리 없어 ‘휴지조각’ 불과


흔히 중소기업전시회나 박람회를 가보면 가장 먼저 고객의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ISO인증서다. 예전에는 이러한 인증서를 보기도 힘들었거니와 ISO인증을 받은 기업은 정말 대단한 기업으로 여겨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업이나 인증기관에서조차 인증서의 의미가 예전같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다. ISO체제가 국내에 도입된지 어느덧 10여년이 지났다. 왜 국내에서 ISO인증서의 가치가 퇴색되는지, 또한 해결방안은 없는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국내 ISO인증체계가 국제사회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점차 신용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ISO인증체계가 혼탁해진 이유에 대해 관련 전문가는 몇 가지로 압축하고 있으며 정부가 중재를 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개선이 어렵다고까지 설명한다.
ISO 14001 인증은 기업의 지속적 환경성과를 개선하는 일련의 경영활동을 위해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제정한 환경경영시스템에 관한 국제 규격으로 이외에도 품질경영시스템을 인증하는 ISO 9001, 자동차 품질경영시스템 QS-9000, ISO/TS 16949, 정보통신제품 TL 9000, 산업안전 OHSAS 18001이 있다.


날치기식 ISO…예견된 결과

ISO인증을 심사하는 인증센터의 한 관계자는 우선 문제가 빚어진 원인으로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컨설팅 업체를 꼽았다.
현재 국내에는 대략 70여개의 ISO관련 컨설팅업체가 있으며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기업에 ‘저렴한 가격에 ISO를 받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며 인증받을 의사가 없는 기업을 상대로도 단기간, 저렴한 가격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한 업체에서는 심사 기준조차도 무시하고 100만원 정도면 증명서를 발급해 주겠다는 말이 나와 현재 외국에서 파견된 컨설팅업체들 조차 국내 ISO인증을 인정하지 않는 실정에 이르렀다.
또한 정부가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ISO인증제의 도입에 앞서 초반에 정부가 교통정리만 제대로 했어도 지금의 난립이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WTO에 가입된 상황이라 어떻게 관여할 수 없다"는 핑계만 둘러대고 있는 상황이지만 비슷한 여타 국가에서는 정부의 적절한 관여로 이러한 혼잡을 예방하고 있다.
최근 ISO체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증서 하나를 받기 위해 준비기간만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을 소요하며 최종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간은 더욱 길어져 최소가 1년이고 2년 이상 걸리는게 보통이다.
인증센터 관계자는 “그렇게도 제품이 철저하고 까탈스러운 일본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틀만에 서류를 작성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작성이라기보다 상관도 없는 회사의 서류를 베끼면서까지 서류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허위, 조작 서류임을 알고도 통과시키고 인증서를 발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증기관의 한 심의관은 “인증업체간의 담합에 끼여들 겨를이 없을만큼 똘똘 뭉친데다 컨설팅업체가 워낙 많고 경쟁 역시 치열해 문제가 발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중소기업 ‘부담’ 인증기관 ‘답답’

도대체 ISO인증이 뭐길래 이렇게 과다경쟁에 비리까지 생겨나는 것일까. ISO인증은 고객이 요구하기도 하지만 경쟁사가 요구하기도 하며 각종 행사시 전시효과로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점차 급하게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비리가 생겨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ISO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단계에 있는 한 중소기업 담당자 역시 ISO 인증을 단순히 회사이미지 제고 차원, 즉 전시효과를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소기업이 ISO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한 기간은 불과 3개월이 안 되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4백만원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ISO 인증을 받기 위한 요건이 많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물론 일부의 얘기지만 바로 현 ISO인증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인증을 쉽고 빠르게 받으려하고 인증기관에서 조차도 조건이 됐건 안 됐건 발급을 해줄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시스템이 점차 ISO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직접 인증을 심사하는 한 심의관은 ‘실제 심사를 나가보면 답답하다 버쳐 한심하기까지 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심의는 회사에서 보내온 서류만으로 인증서를 발급하는 등 ISO인증을 받으려는 기업이나 심의기관이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ISO 인증을 제대로 받게되면 기업이미지 제고는 물론 매출증가와 더불어 수출장벽까지 극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복업무, 누락업무 선별이 가능하며 예방활동 극대화로 실패율이 감소하게 되는 등 다양한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인증수순을 밟고 있지 않아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분야를 막론하고 ISO인증을 받았다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 제대로 된 수순으로 인증을 받은 업체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환경컨설턴팅 업체인 (주)에코프론티어 정해봉 사장은 “오히려 정부지원금도 지급하지 않는게 원칙이지만 현재 지원금으로도 허덕이는데 그렇게 된다면 뻔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사장은 이어 “ISO인증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추세이지만 제대로 따르지 않는게 문제”라며 “기업에서도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현 추세대로라면 ISO14000시리즈를 포함한 환경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기업과는 거래조차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대응을 잘 하는게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답한다.


비용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국내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정부지원금이 적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기업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여타 국가에서의 경우보다 적은게 사실이다. 
ISO를 받기 위한 검증비용만 봐도 일본이 80~100만원에 이르는 반면 우리나라는 50~60만원으로 가장 저렴한 실정이다.
더구나 사후관리 측면에서의 미흡함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원금을 보조하는 중소기업청에서도 지원금을 발급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어떻게 잘 쓰이고 있는지 사후점검이나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 차원에서 일부에서는 삐거덕거리는 ISO인증체계가 정부의 행정편의주의가 빚은 결과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에 인증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컨설턴트 업체의 건수와 액수 즉 실적위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양적인 팽창에 치중하고 있는만큼 단 하나의 사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평가방법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500만원이며 중소기업도 사업에 따라 지원금을 달리하는게 당연하지만 어떻게 짜맞춰서든 최대한도 금액을 받아내고 있어 정부차원의 손실도 만만치 않은 부분이다.
현재 대기업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에 지원금은 물론 전문인력까지 지원하면서 ISO인증을 받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차후 확인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 지구환경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메뉴얼의 개발 등으로 예전에 비해 인증받는 기간이 짧아지고 쉬워진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ISO인증 남발이 확산된다면 국가적 손실은 물론 대기업측면에서도 막대한 손실”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ISO14001을 인증받은 한 업체에서조차 ISO인증이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됐음을 공감하면서도 “인증은 받아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호소한 바 있다.

ISO도입 10년…참 의미 되새겨야

우리나라에 ISO체제가 도입된지도 어느덧 10여년이 넘어서고 있다. 벌써부터 아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위기를 느껴왔으며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예상해 왔다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미 문제는 도입단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 대다수의 기업들은 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기 않았기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ISO체제가 도입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내 ISO는 원사이즈 기성복으로, 유수의 중소기업들은 작던 크던 걸쳐 입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볼 수 있다. ISO 인증은 결코 기성복화 될 수 없는 기업 고유의 영역이다. 하지만 국가는 모든 기업에 기업복을 들이대고 맞는지 안 맞는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그냥 줬다는데만 그 의의를 두고 있는 현실이다.
자꾸 커져가는 몸집을 기성복에 맞춤으로써 오히려 몸집을 불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ISO인증에 더 이상의 기성복은 안 된다.
한편 지자체와 공기업에서도 ‘ISO 14001’을 획득하는 등 환경경영에 열을 올리고 있는만큼 보다 효율적인 관리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강재옥 기자>


**참고**
<<세계 ISO 14001 인증현황>>


국제 표준화기구(ISO)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ISO 14001 인증건수가 1998년말 기준, 7,887건으로 집계되었다.
1997년말 기준, 인증건수(4,433건)의 78%가 증가된 것이다. ISO 14001 인증은 유럽이나 일본등지에서 가장 비중있게 증가된 것으로 보이며 세계 72개국에서 인증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전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유럽과 극동지역에서는 1998년에 총 6,786건에 달하는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가장 최근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ISO 9000 인증건수는 총 271,966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품질과 환경경영시스템 인증 활동사이에 큰 불균형은 아마도 국제적 품질 요구사항이 1987년 처음으로 제정된 것에 반해 환경 요구사항은 1996년까지 제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에서 최다 인증건수를 자랑하는 일본은 총 1,542건에 달하는 ISO 14001 인증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영국이 총 921건을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총 651건의 독일이, 네 번째로는 총 360건의 스위스가, 다섯 번째는 341건의 네덜란드, 여섯 번째는 314건을 기록한 덴마크에 이어 일곱 번째는 304건의 스웨덴이 기록하였다.
여덟 번째 인증건수를 달성한 프랑스는 총 295건으로 미국보다 무려 4배 이상의 인증건수를 올렸으며 아홉번째 인증건수를 기록한 한국은 총 263건을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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