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성(華城)의 북문(北門)으로 건립된 중층누문(重層樓門)으로, 하나의 홍예문(虹霓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 쪽으로 원형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고, 성벽 위에는 안팍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을 쌓았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5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문 좌우로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步) 되는 곳에 각각 적대(敵臺)가 마련되어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였고, 규모나 구조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서울 남대문과 매우 비슷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남대문에 비해 좀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화성 장안문= 안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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