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조선시대 백자편발굴조사착수 







문경 용연리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는 2004년 8월에 안동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하였는데 이 지역에서 백자편과 가마벽체편이 확인되어 이를 바탕으로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2004년 8월 16일부터 9월 4일까지 시굴조사 하였다.

시굴조사는 5m 간격으로 시굴갱을 총 51개 넣은 결과 8곳에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가마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감태골’의 논과 밭에서 가마벽체편과 소토 등이 1m 가량 교란된 채 퇴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위쪽 논 주위에 가마가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곳은 공사예정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5년 7월 발주처인 농업기반공사 문경지사에서 저수지 내에 위치하는 ‘용연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였고,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발굴허가(2005-436호)를 얻어 2005년 7월 6일부터 2005년 7월 28일까지 20일간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순서는 시굴 당시 유구가 확인된 지역을 중심으로 전면 제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이 3기의 유구가 노출되었다. 표토 25~30㎝ 아래에서 조선시대 백자편과 구조물의 일부로 보이는 할석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조사한 결과 백자제작 공방 8기, 구상유구 1기, 기타 2기가 확인되었다. 현재 내부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출토 유물은 발, 접시, 종지류가 대부분이고, 표토와 유구 내부 등에서 도지미가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을 분류하여 대장작성용, 보고서용 등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조사지역은 소백산맥의 주산맥 사이의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다(도면 1.2). 경상북도의 최북단 지역으로 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는 충청북도의 경계가 되는 마패봉(925m), 부봉(917m), 포암산(961m), 대미산(1115m)이 서에서 동으로 가면서 이어져 있다.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 533~538번지 일대이다.


지역이 위치한 곳은 문경읍 소재지에서 901번 지방도를 따라 동북쪽으로 약 9㎞ 정도를 가면 문경읍 용연리 마을 진입로가 나오고, 이를 지나 200m 정도를 가면 도로 동북쪽에 속칭 ‘감태골’이 있다. 조사지역은 이 감태골 입구의 밭과 계단식 논 일부이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서북에서 동남으로 낮아지는 큰 계곡이 있다. 여기에 동북에서 서남으로 낮아지는 작은 계곡인 ‘감태골’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은 곡간 평지이며, 해발은 최고 246m, 최저 240m 정도이다. 주변 산들의 해발은 300~500m 내외이나 경사는 매우 급하다. 조사지역의 중앙부에는 신북천으로 유입되는 작은 개울물이 동북에서 서남으로 흐르고, 동북쪽은 잔류성 능선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계곡부이다. 조사 전에는 모두 논 밭으로 이용되었다.사방 경계는 동쪽과 북쪽은 해발 350m 내외의 지능선이 북에서 남으로 낮아져 소멸되는 곳이고, 남쪽과 서쪽은 남서쪽으로 낮아지는 완만한 경사지의 밭 지역이다.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용연리’ 마을이 있고, 서북쪽으로 1㎞ 떨어진 곳에는 ‘갈평리’ 마을이 있다. 서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신북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신북천과 조사지역 사이에는 901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과한다.


문경시 지역은 신라 때 冠文縣, 冠縣, 高思葛伊城이라 하다가 경덕왕 때 冠山으로 고쳐 古寧郡(함창)에 소속시켰다. 고려 때는 聞喜라하다가 聞慶으로 고쳤고, 1392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호계현을 병합하여 13개 면을 관리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상주군의 南山 ․ 北山, 예천군의 化庄 등을 병합하여 20개 면을 관할하였으며, 1914년에는 용궁군, 함창군, 영주군 일부지역, 1973년에는 이안면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용연리 마을은 대미산과 운달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산간 마을로 1,500년경에 손씨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龍淵’이라는 지명은 ‘연못에서 용이 승천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용연리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관음리가 위치하고 있다. 관음리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길목인 하늘재와 門幕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관음리는 관음사라는 절에서 마을의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용연리 주변의 유적은 사지로는 갈평리사지, 관음리사지가 있고, 관방유적으로는 지릅재 성지, 하늘재 성지, 도요지로는 용연리 요지, 관음리 요지, 갈평리 요지 등이 있다. 그 외에 봉생정, 신현리 성황당 등이 있다.


관음리사지는 계립령의 동쪽 관음리에 포암산을 배경으로 남향의 경사지에 위치하며, 5층 석탑이 있던 축대와 마애반가상이 있다. 탑은 현재 갈평리보건소 안에 옮겨져 있고, 마애반가상은 관음리 5층석탑이 있던 자리에서 동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독립된 바위에 부조되어 있다. 관음리사지에서 문경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는 문경관음리석불입상(문화재자료 제136호)이 있다. 이것은 높이 312cm의 비교적 거대한 불상으로 당당한 체구와 풍만한 인상으로 보아 고려초기의 것으로 보여진다. 갈평리사지는 문경읍 갈평리와 관음리의 경계지점에 있다. 현재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석탑이 남아 있으며, 주변은 밭으로 경작된다. 문경갈평리5층석탑(유형문화재 제 185)은 높이 2.9m, 지대석의 너비 1,5m 정도이다. 이 탑은 신라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조성 시기는 고려초기로 보여 진다. 석조여래좌상의 수인은 오른손은 항마인을 취하였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약함을 받쳐 들고 있다. 양쪽 무릎에는 좌우대칭의 衣紋이 표현되어 있고, 노출된 오른쪽 어깨에 4조의 동심원이 양각되어 있다. 당당한 어깨와 가슴이 돋보이나 옷주름이 뒷면에서는 생략되는 등 약식화 경향으로 볼 때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릅재 산성은 하늘재의 서쪽에 신선봉을 거쳐 조령삼관문 사이에 있는 석성이다. 하늘재(대원령, 계립령) 산성은 포암산(961m)과 부봉(925m) 사이의 하늘재에 쌓은 석성으로 둘레 590m이다. 문경지역 가마터와 관련된 것은 근래에 이루어진 세 차례의 현장조사로 어느 정도의 현황은 파조사지역에서 서남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흐르는 신북천 주변에는 비교적 많은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신북천 주변에는 총 49기의 가마터가 있는데, 이들을 지역별로 정리하면 관음리 23기, 용연리 11기, 갈평리 6기, 평천리 6기, 중평리 3기이다. 이렇게 확인된 가마터는 지표상에 드러나는 벽체를 기준으로 하였기에 그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관음리를 지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되는 계립령 넘어의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도 백자 가마터가 있다.
<문경= 정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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