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형(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한국환경교육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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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지구가 몸부림치고 있다. 어쩌면 지구는 우리 인류가 지구에서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인류가 현재와 같은 생활양식을 유지한다면 ‘타이타닉’ 호의 침몰과 같은 지구 우주선의 대참사를 피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직면한 갖가지 환경 재난, 빈곤 확산, 테러와 전쟁 등의 문제들은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측면에서 서로 복잡하고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인류는 20세기 후반에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을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하게 됐다.
유엔은 2005~2014년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교육 유엔 10년(United Nations Decade of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으로 정했다. 선진국들은 삶의 질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짧은 기간에 환경교육을 크게 내실화하고 있다. 환경교육은 1960년대까지는 자연학습, 1970년대에는 야외교육, 1980년대에는 세계화교육과 가치교육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면서 진화·발전했으며, 1990년대 이후부터 ‘환경교육’은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현재의 개발이 현 세대 내에서만이 아니라 현 세대와 미래 세대, 인간과 생물종 간의 형평성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그 실천에서는 주요 집단 간의 파트너십이 매개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발전교육이 필수다.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각국의 사회적·경제적·환경적 특성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현 세대의 삶과 미래 세대의 삶을 개선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육’으로 정의된다. 즉,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서로 관련된 환경적·사회적·경제적 쟁점을 이해시킬 뿐 아니라 개인·지역사회·집단·산업계와 정부가 지속가능하게 살고 행동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속가능발전교육은 기존 교육과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사회가 지속가능한 미래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지식,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및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보다 강조하고 지구의 지속 지능성을 위협하는 주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쟁점을 강조하며, 국지적 및 문화적으로 현실성 있는 쟁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해결하는 기능을 강조한다. 또한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지구적 맥락에서 세계적 쟁점과 국지적 쟁점 이해를 중시하는 인식을 길러주고,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면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다. 시대착오적인 입시 준비교육, 지식유통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는지 냉철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정말 필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모든 교육자와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알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그러한 교육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속가능발전교육(ESD)과 같이 인류와 환경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환경교육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것은 작게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크게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와 환경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의 후세대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환경교사들이 자신의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교사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모든 교육자가 자신의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을 위해 좀 더 큰 것을 놓치고 마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가 원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구성원 모두가 능동적으로 지속가능발전교육으로서의 환경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활성화시킴으로서 비로소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남이 만들어 준 지속불가능한 미래를 그대로 앉아서 맞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성취된다. 성취는 상상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상상하지 않은 것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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