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 간 겸업 제한, 분리발주 의무 완화 개선 등 핵심 논의
정부 ‘현실에 맞게 변화해야’ vs 건설업계 ‘받아들일 수 없다’ 맞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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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 규제 합리화를 위한 법개정 논의를 놓고 건설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개선안에는 일반·전문건설업을 건설업으로 통합, 건설업·건축설계업 겸업,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 예외 규정 확대를 포함하고 있어 이해 당사자간의 마찰이 확대되고 있다.
18일 안양 국토연구원에서 국무조정실이 개최한 ‘건설산업 규제합리화’ 공청회에서 규제개혁 위원회 이성구 국장은 “법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법 개정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건설업계나 다른 업계들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와 관련 전기·정보통신공사 업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전문건설업 업계는 일반·전문건설업을 건설업으로 통합하고 업종 구분체계를 재조정하게 되면 기존 중소기업인 전문건설업을 하는 업계의 시장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고 있다. 또한 겸업 제한제도가 전문화를 통한 기술개발 촉진과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도입된 점을 들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밝히고 있다.
건축설계업계는 일정한 수 이상의 건축사를 보유하고 있는 건설업체가 자기설계 공사에 대한 시공에는 자기시공 공사에 대한 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방침의 건설업·건축설계업 겸업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건축설계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다. 건축산업이 아니라 건축문화인 설계를 건설업과 겸업한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중소기업을 살린다고 하면서 대형 건설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 예외규정 확대에 대해 전기·정보통신업계는 반대 의사를 확실히 하고 있다. 업계는 “전기나 통신공사의 경우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공사인데 분리발주 예외규정을 확대하면 품질 면이나 기술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통합 발주를 하면 대형 기업의 하도급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규제합리화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면서도 일반건설사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현대건설 관계자는 “건설과 건축설계의 겸업은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건축문화는 발전시키되 특정 분은 일반건설에서 겸하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며 겸업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관계자로 참석한 건설교통부 관계자나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업계의 입장을 국무조정실에 잘 전달에 기존의 개선안이 수정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공청회 의견을 종합하고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음 달 초에 관계장관회를 통해 건설산업 규제 합리화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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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공청회
18일 안양 국토연구원에서 개최된 건설산업 규제 합리화 방안 공청회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서로 간에 큰소리가 오고가는 등 장내가 진정되지 않아 공청회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지연됐다. 또한 이규방 국토연구원장은 인사말도 전하지 못하고 야유 속에 들어가야 했다. 방청석에서는 “강의 목적이 뭐냐” “요식행위를 하지 마라” 등의 소리가 연방 터져 나왔다.
참석자들의 거센 반발로 건설산업 규제 합리화에 대해 발표하기로 한 이성구 국무조정실 국장도 결국 주제 발표를 하지 못하고 바로 토론으로 들어갔다. 토론이 이어지면서 흥분한 업계 관계자들은 손가락질과 욕설을 하기도 하고 책상 위로 올라가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이번 개선안은 전면 무효”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내에서는 “이번 공청회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극단적인 말까지도 나왔다.
전국 각지에서 온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어깨에 띠를 두르고 상복을 입는 등 과격한 의견표출로 정부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다.
한편 1부 토론회가 끝나고 관계자들은 국토연구원 앞에 모여 건설산업 규제합리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건설산업 규제 합리화 반대 구령을 함께 복창했다.

<건설산업 규제 합리화 개선안>

▷일반·전문건설업 겸업
일반·전문건설업을 건설업으로 통합해 겸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겸업 허용으로 인해 발생할 전문건설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전문공사 시공실적 인정, 시행범위의 단계적 확대 등의 조치를 강구한다. 건설감리사업(CM)발주, 주계약자형 공동 도급 등 다양한 발주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발주 방식의 규제개선을 추진한다.
건설업계는 단일 하도급 실적을 토목·건축 등 복합공사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경험과 능력이 없는 업체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부실시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소 일반건설업체의 경우 수주 실적이 상위 전문건설업체보다 적어 일반건설업체에 대한 역차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건설업계는 일반건설은 종합적인 계획 관리를, 전문건설업은 직접 시공을 담당하면서 건설산업의 발전을 이룩해 왔으며 겸업제한제도가 전문건설업의 육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업·건축설계업 겸업
일정 수 이상의 건축사를 보유하고 있는 건설업체가 자기설계 공사에 대한 시공에는 자기시공 공사에 대한 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이와 함께 설계업자가 CM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건축설계업 발전방안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여건 조성이 아니라 겸업을 허용하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축설계업계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건축은 창작활동으로 결코 건설과 겸업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 의무제 완화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를 원칙으로 하되 분리발주 예외규정을 확대한다. 전기공사나 통신공사가 주공정인 경우에는 전기공사업자나 통신공사업자를 주계약자로 하는 발주 형태를 허용한다.
건설업계는 분리발주제 개선에 환영하는 입장으로 발주자의 판단에 따라 분리발주 여부를 결정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방침이다. 반면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업계는 분리발주 폐지에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전문기술과 품질보장에 있어 통합발주는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적격심사제
시공능력을 평가할 때 시공품질이 확보되도록 배점 방식을 조정하고 이미 수행된 공사에 대하 사후평가요소(하자발생비율·사용자 품질평가 등)를 심사기준에 추가토록 하는 것이다.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 신인도 심사항목 중 산업재해율 가·감점제는 현행처럼 2점 폭을 유지하되 가점은 재해율에 따라 부과하고 감점은 산재은폐 건수에 따라 부과한다. 환경규제 위반 감점제는 현행 -1점 폭을 유지하되 위반 횟수에 따라 3~4등급으로 차등 적용토록 개선한다.
예정가격 근접도에 따라 높은 점수를 주는 현행 방식을 폐지하고 품질경쟁과 가격경쟁을 조화시켜 최고 가치를 제공하는 자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최고가치 낙찰제 도입을 추진한다.
건설업계는 제도개선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환경규제 위반 감점제가 유지되는 것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며 감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고가치 낙찰제
단순한 자격심사 위주의 현행 저가심사제를 공사 중단의 위험 등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이행능력 심사제로 개선한다. 최적가격 낙찰제와 적격심사제를 통합해 최고가치 낙찰제로 개선한다. 건설업계는 일정낙찰률 이하의 업체를 탈락시키는 절대기준이 가미된 저가심의제를 적용하다가 문제가 없다고 확인될 때 확대 검토해야 한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턴키입찰제도
턴키입찰 대상공사 발주 여부에 대한 검토절차를 도입한다. 미관 등 계량화가 곤란하거나 창의성이 별도로 요구되는 건축공사는 턴키 대상에서 제외한다. 선형공사의 분리발주와 턴키입찰 참가비용을 줄여 중소·중견기업의 턴키공사 입찰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소·중견업체들은 턴키시장을 대형 업체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점을 들어 턴키공사 발주의 축소를 요구해 왔다. 반면 턴키공사를 통해 상당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업체들은 건설기술의 향상과 시공물의 품질을 높이기 우해 턴키공사의 발주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도급제도
저가 하도급 심사 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과 하도급대금 지급 보증서를 발주자에게 직접 제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증제도
보증제도 개선안은 보증심사 기능 강화를 통한 덤핑입찰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가수주가 늘어나는 업체에 대해 추후 보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경고를 사전에 보내는 것이 ‘보증제한 예고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감리제도
감리사후평가제 도입, 부실시공이 발생한 경우 시공자와의 공동 책임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하도급자의 경우 공동 책임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 우려 나타내고 있다. 한편 현재 공사 기간에 한정된 손해보상보험 기간을 공사완료 후 하자담보 책임기간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발주청이 보험료를 부담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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