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산 따라 온통 단풍 천지인 늦가을로 접어들면 구미시 해평습지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겨울철새들이다.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해평습지를 찾으면서 구미시는 희귀철새 도래지로 유명해졌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수천 수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칼바람을 헤쳐 낙동강에 도착한 겨울철새들을 바라보면 ‘사람이 하고자 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느껴진다.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쯤이면 겨울은 가을 언덕의 문턱에까지 와 있다. 강가에 핀 갈꽃이 포근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차가운 강가에 들어서면 갈꽃 말고도 우리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철새들의 원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평온해 지고 희망을 갖게 된다. 철새들을 감싸고 있는 깃털은 혹독한 추위도 모두 이겨낼 수 있으며, 그들의 부리나 긴 발은 철갑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로 ‘겨울 진객’ 철새들이 홀대받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번지면서 겨울철새들은 그저 반가운 손님이 아닌 조류인플루엔자의 매개체로 전락했다.
철새들이 조류인플루엔자의 중요 매개체로 인식되면서 철새 도래지마다 열릴 예정이던 축제들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올해는 시민단체의 철새 먹이주기 행사도 대폭 줄거나 아예 철새들에게는 발길도 주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철새들은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나게 됐다.
철새들은 붉은 해 떠오르는 아침이나 붉은 서녘 하늘을 날며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왔다. 이러한 계절의 전령 철새들도 자연 앞에서는 미물에 불과한 모양이다.
조류인플루엔자은 철새뿐만 아니라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까지 멀리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조류 관련 업계는 때 아닌 된서리를 맞고 있다. 치킨업체의 경우 조류인플루엔자 예보 발령 여파로 평소보다 매출이 20~30% 떨어졌다. 조류인플루엔자는 더 나아가 농가의 사육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예방이 최선이다. 철새들의 분비물을 밟지 않고 철새도래지 주변의 출입을 삼가는 것은 기본이다. 도심 아파트 주변 하천으로 날아드는 철새들을 관찰해 조류들이 대규모로 머물던 자리는 방역하는 것도 좋다.
조류인플루엔자 대처방법을 적은 현수막이나 인쇄물 홍보도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 어느 곳도 현수막을 내거는 등 적극적인 홍보는 하지 않고 않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뒷짐 지고 백번 외치는 것보다 올해만은 철새도래지 주변지역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례가 없어 다행이다. 우리가 올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한국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요, 그래서 내년에는 겨울철새가 자유롭게 날아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김기완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