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인 교수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얼마 전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환경단체의 후원모임에서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들, 즉 환경고위 당국자·국회의원들이 나와서 축사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결같이 환경과 경제의 공존, 친환경적인 건설 등에 대해 역설했다. 지당한 말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과거 수십 년간 진행해오고, 또 현재 진행하는 국토개발 사업들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절대 빈곤의 시대에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국토개발사업. 그동안 정치적 또는 영리적 목적으로 우리 국토는 정말 무분별하게 점령돼 왔다. 굳이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국토를 돌아볼 때 온전히 남아 있는 부분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일부 지역뿐이다. 그나마 국립공원도 대형도로 건설, 각종 개발 사업 등에 떠밀려 훼손되기 일쑤다.
일례로 도로건설사업을 들자면 서울 수도권지역의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에서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문제이다. 나는 노선재검토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건설 측 위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상당 기간 논의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점은 구조적으로 대안 설정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된 이 구간의 사업에서는 애초에 가장 짧은 지름길을 설정해 놓고 여기에 맞춰 민간투자와 자금 회수를 보장해 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우회하는 도로나 국립공원 구간을 지나가더라도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건설하는 방안 등 많은 대안 설정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초의 단편적 구상과 정책적 시행상의 면밀함, 유연성의 부족으로 사안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오히려 공사기간도 훨씬 더 걸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논의된 것 중 하나가 국립공원의 가치였다. 일부 위원은 “국립공원의 파괴로 입장객이 줄고 이로 인한 입장 수입액이 감소하는 것이 피해”라고 하고 “그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 인근에 북한산 등 수려한 국립공원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세계 어느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들이 존재하는 국립공원이 있겠는가. 이 국립공원은 우리 세대의 자산이자 미래 세대가 향유하고 그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하는 유산인 것이다.
최근에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기류를 타고 지역균형발전, 기업도시건설, 지방분권, 자유도시건설, 신행정수도, 뉴타운건설 등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국가 또는 지역 차원의 개발 사업들이 난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진정 경제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한 환경파괴의 규모는 얼마만큼 될 것인가이다. 작금에 전 국토는 자동차 통행량이나 미래의 사업수요 예측과는 무관하게 엄청난 규모의 개발행위가 이뤄지고 있고 계획되고 있다. 사업 규모도 천문학적인 액수여서 웬만한 사업은 1조원을 넘긴다. 이 액수는 10만 빈곤가구에 1000만원씩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규모이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요즘 흔히들 ‘친환경적인 건설’이라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효율성 또는 영리 목적만을 추구하는 듯하다.
용인 지역에 대규모 택지사업을 벌여 산을 포함한 전 지역을 뭉개고 택지로 하려는 과정에서 한 환경단체가 끝까지 산꼭대기 나무에 올라가 버텨 그 일대를 공원으로 남긴 ‘대지산 지키기’는 작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만 지켜지는 조그만 자연상태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자연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친환경적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까운 장래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2만5000달러 목표도 곧 세워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들 것이라는 얘기인데, 그 과정에 정작 우리가 누려야 할 주변 환경적 가치를 상실해서야 그에 걸맞은 삶의 가치가 주어지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자연은 비가역적이어서 파괴된 환경은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고, 편의에 의한 부분 복원이나 재개발만이 있을 뿐이다. 그 비용 또한 엄청나다. 이에 대한 예는 청계천 복원사업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건설이나 개발 사업자들이 환경을 위한 개발 또는 친환경적인 개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개발을 위한 환경 또는 환경을 빙자한 개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나타나는 ‘신개발주의’ 풍조는 과거 절대 빈곤을 탈출하고 잘 살아보겠다고 행한 일부 피할 수 없는 자연파괴 행위하고는 다르게 불필요하고 비경제적인 개발,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민간 또는 공공사업들을 나타나게 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부추기고 때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지원하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의사결정과 행동방식의 목표가 되고 있는 ESSD(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흔히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해 개발이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개념만을 생각하기 쉽다)가 정부 개발 부처나 건설사들의 진정한 슬로건과 행동양식이 될 날이 언제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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