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자기만의 영역을 갖는다. 특히 수컷의 경우 소변으로 영역표시를 하며 다른 종이나 수컷 등이 자기의 영역에 침범할 경우 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역은 반드시 어느 개체가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싸워서 이긴 개체는 그 영역을 획득하지만 진 개체는 그 지역에서 떠나야 하는 하나의 룰(rule)이 있다. 요즘 서울에서 나타나는 멧돼지들도 영역싸움에서 져 지역을 이탈한 무리라고 하는데, 그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사회는 어떠한가. 인간도 보이지 않게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에 침입한 자는 동물처럼 물리쳐야만 하는가. 물론 집에 도둑이나 이방인이 침입했을 경우에는 경찰을 불러 퇴치해야겠지만 누구나 그 영역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라고 본다면, 또는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영역의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면 스스로 영역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물 관리 체계’는 이원화돼 있다.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 수량과 수질관리를 각각 건설교통부와 환경부가 맡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국민들에게 최적의 물을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 물을 따로따로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며 정책의 중복, 정부와 지자체가 손발이 안 맞는 상황에서는 최적의 물 관리를 할 수가 없다. 또한 용수공급계획 수립 시 중복·누락 등으로 용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해 상·하류 간, 물 관련 기관 간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얼마 전 열린 제67차 국정과제회의에서는 ‘지속가능한 물 관리정책’이라는 주제로 노무현 대통령, 환경·농림·건교부 장관 등 관계부처 전문가 등이 참석해 물 관리체계 개선방안과 정책과제 등을 논의했다. ‘물 관리 위원회’(가칭)를 두기로 하고 기본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과거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의 조정기능이 성공하지 못했던 사례도 있고 위원회체제는 국내 행정조직상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원화돼 있는 물 관리 체계를 상수도 관리체계 일원화·수도 관리 정책 조정·수량 및 수질 관리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지난 94년 낙동강 수질사고 등으로 이슈화됐던 수질문제로 인해 환경담당 부처에서는 수질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물 관리 일원화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물 관리 주무부처였던 건교부에서는 현 체제의 방어론으로 맞서면서 수년간 정책 논쟁이 지속됐다. 이러한 논쟁이 계속돼 환경부와 건교부 사이의 부처 간 이해를 좁히지 못해 논의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충으로 물 관리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이제는 물 관리 체계의 새로운 관리자를 찾아야 한다. 만약 자기의 영역 또는 먹잇감을 남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거시적인 발전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 서로 조율하되 주고받을 것은 주고받는 합리적인 정책 토론을 해야 한다. 현 체계와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최적의 물을 공급하는 방법은 기존의 법·제도·기술을 면밀히 검토하고 개선책을 차근차근 찾아갈 때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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