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전은 환경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수준을 제고한다.
즉 한 사회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히 관찰되는 현상이며, 이미 이론화된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제고됨에 따라 환경정책에도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과거 환경정책은 정부가 환경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명령과 통제방식(command and control system)이 주를 이뤘으나,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정부가 개별 환경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관여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점차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시장중심적 정책들(market based policies)로 이행돼 가고 있다. 환경세(environmentally motivated tax)는 이러한 시장중심적 정책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환경세는 다른 조세들과는 달리 시장 왜곡을 교정해주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이론적·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세 또는 조세가 가지고 있는 환경적 기능은 무엇인가. 어떠한 재화나 용역들은 그 소비과정 가운데 오염물질의 배출과 같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경제학에서는 외부성(externality) 또는 외부비용(external cost)이라고 한다. 조세의 환경적 기능이란 바로 이러한 외부비용을 세금의 형태로 가격체계 내에 반영하는 것, 즉 오염을 발생시킨 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조세의 형태로써 지불하게끔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원칙을 가리켜 오염자(또는 원인자) 부담원칙이라고 한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은 환경선진국들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세를 도입해 시행 중에 있으며, 많은 나라들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활동의 세계화로 인해 조세정책도 더 이상 국내용으로만 간주되지 않음을 비쳐볼 때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서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세는 특히 온실가스배출 저감을 위한 국제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당초 우리나라는 AnnexIII 국가군으로 분류돼 온실가스 저감 의무가 2018~2022년 사이에 부과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염발생량이 많은 중국경제의 급속한 발전 및 국제적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이보다 빠른 2013년부터 감축 의무를 지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본격적인 환경세의 도입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환경세’라는 명칭을 가진 세목은 없다. 현재 환경적 목적으로 도입된 것들은 대부분 과금(부과금·부담금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기능상으로는 환경세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들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조세는 아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현행 세제 속에서 환경세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세목들로는 에너지제품에 부과되고 있는 특별소비세나 교통세 등이 있지만 이들 세목들의 기능은 세수확보 등에 머무를 뿐 아직 환경적 기능이 본격적으로 구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환경세가 없다는 점, 그리고 기후변화협약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 등의 현실을 비쳐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환경세의 도입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세의 도입이 반드시 탄소세 등의 새로운 세목의 신설을 통해 도입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세제에는 이미 환경세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세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중요한 것은 환경세나 탄소세와 같은 명칭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조세의 환경적 기능이 어느 정도로 잘 구현되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세제, 즉 특별소비세나 교통세를 통한 환경세의 구현은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에너지세제개편방안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어느 정도 달성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책 도입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보완책들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아직 고에너지소비형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경우 환경세의 도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우리 산업의 국제경쟁력에 치명적일 수 있다.
따라서 세제개편과 함께 에너지저소비형 고효율의 산업구조로 원활히 이행할 수 있도록 많은 정책적 배려가 동반돼야 할 것이다. 한편 탄소세는 도입 여부의 결정과 시기에 대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저감시킬 경우 GDP가 2.2% 감소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이는 기후변화협약의 이행으로 발생할 거시경제적 충격이 그만큼 심각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탄소세를 협약이행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고려하는 경우 주변국의 움직임을 감안해 도입 여부 및 시기를 신중히, 그리고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정책추진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들, 예컨대 에너지효율제고를 위한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기업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입 시기를 넉넉히 사전 공지하는 등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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