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등 공원화정책
‘의미와 역사인식이 급선무’

“가든(Garden)과 공원(Park)은 엄연히 다르죠. 우선 원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산기지의 공원화 정책에 대해 물어보려는 순간, 공원이라는 낱말을 듣자마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전 문화부 장관)


이 전장관은 “19세기 이전엔 공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일제강점기시절 서양의 public park가 한자로 옮겨지면서 public에서 공(公)이 park에서 원(園)이 나와 공원이 된 거에요.”라고 공원의 유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에도시대때 시비야 공원, 아사쿠사 공원, 아스카야마 공원 등 5개의 큰 공원이 있었고 서민들의 유락지로써 평소 유흥을 즐기는 소유지의 기능을 했습니다. 6개의 출입구가 있는 그 공원들은 서민들을 위한 자유공간이었음에도 관에서 만들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2조 13항의 각종조례가 있었죠.”라고 이어갔다. “내가 왜 일본이야기를 자꾸 하는지 아십니까?”라며 갑자기 반문을 한 이 전장관은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섭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퍼블릭 파크(Public Park)에서 파크의 뜻은 잘못오해가 된 것입니다. 원래 뜻은 지금의 공원이 아니라 멧돼지, 양, 소, 말 등 먹는 동물들을 키우는 수렵장이란 뜻이다”라며 파크의 원의미를 전했고 “파크의 역사를 되새겨보면 처음의 정원개념은 종교적 의미를 띄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희랍과 로마의 역사보다 앞서 주로 사막의 오아시스나 에덴동산 같은 극락·이상적인 종교적 의식공간과 같은 의미였다”라고 공원의 원래의미에 대해 말했다.

이 전 장관은“물론 동·서양 할 것 없이 공원은 종교적 개념이었습니다. 동양은 ‘서방정토’같은 개념이었고 서양은 에덴동산과 같은 이상적 의식 공간 이었습니다. 즉 동·서가 일치하죠”라고 침이 마르게 설명했다.

“과거엔 공원이 폐쇄적·방어적·성스러운 공간이라 서민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특정한 계층이나 종교적 가치가 있는 인물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곧 권력공간과도 일치하며 중세적 공간이후에 와선 르네상스 정원 같은 종교에서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변형됐습니다”라고 개념의 변형에 대해 말을 이었다.

“자유로운 시민의 해방적 공원(english landscape park)과는 대칭되는 베르사유공원 같은 곳이 가든과 파크의 건널목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즉 종교와 권력의 중심에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가는 반환점같은 역할을 한 것이죠”라고 전했다.

공원이 완전히 시민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 중추적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이 전 장관은 뜬금없이 “대포입니다”라고 말했다. “18세기 후반 무렵, 대포가 나오면서 성벽이 더 이상의 방어적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벽을 쌓을 필요가 없어졌고 있던 성벽마저 허물게 됐죠. 이는 곧 시민에게 자유를 알리게 되는 이유가 됐고 세속화된 공간에서 도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용산기지 등 우리나라도 공원화사업을 많이 하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느냐란 질문에 이 전 장관은 “용산기지 등은 종교적·정치적·권력적·기하학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문화예술·관상용도 아닙니다. 서양사를 보면 해답이 나옵니다”라고 말하고 “공원의 역사와 원 의미를 우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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