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서울대학교, UNEP-SNU 빗물연구센터장)

물건을 만들거나 살 때 많은 양을 취급할 때가 훨씬 싼 경우가 많으며, 이것을 규모의 경제성(Scale Merit)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공장이나 상점들이 대규모화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이 우리나라의 물관리 정책에도 적용되어 모든 물관리 시설이 대규모 일변도로 진행되어 왔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모든 하수를 4개의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큰 규모의 하수처리장은 드물다. 이와 같이 상수도나 하수도 등의 물관리에서는 규모의 경제성이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학교 기숙사의 식당을 생각해보자. 식사를 준비할 때 개인적으로 하기 보다는 공동으로 하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어 규모의 경제성이 성립한다. 따라서 기숙사에 큰 식당 하나를 만들어 주위의 여러 건물에 있는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넓은 학교 전체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학교에는 작은 식당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식사를 하기 위해 멀리서 오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로 보면 학교 중앙에 큰 식당하나만 만들면 충분할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생산과 공급 비용을 동시에 고려했기 때문이다. 생산비용을 보면 당연히 규모가 클수록 경제적이다. 그러나 공급 비용을 보면 기숙사의 경우에는 거리가 짧아서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에, 학교 전체의 경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여기서 공급비용이란 학생들이 식당에까지 오는 시간과 노력을 말한다. 따라서 기숙사의 경우는 한 개의 큰 식당이, 학교 전체에서는 여러 개의 작은 식당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하다. 따라서 경제성을 따질 때에는 생산과 공급비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느 도시의 상수도와 하수도의 경제적인 규모를 생각해 보자. 생산이나 처리비용만을 고려할 경우에는 규모의 경제가 성립한다. 그러나 공급비용을 포함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일반적인 도시에서 상수도의 경우 정수장에서 물을 생산하는 비용보다 공급을 위한 시설비용이 5배 정도 든다. 하수도의 경우도 하수처리장에 드는 비용의 2배 이상이 하수를 운반하는 비용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생산과 공급을 동시에 고려한 경제성은 물의 운반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하수도의 예를 들어 보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새로 집을 지을 때 발생되는 하수를 개별적으로 처리하는 방안과, 도시하수처리장에 모아서 처리하는 방안을 비교해 보자. 규모의 경제를 위해 하수를 멀리서 운반하여 처리하려면 관로비용이 많이 들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손쉬운 기술을 적용하여 발생현장에서 처리한다면 더욱 경제적이다. 처리한 물을 집 근처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부가적인 이점도 있다.

홍수방지용으로 빗물을 흘려보내는 방법도 다시 생각해 보자. 비가 내린 지역 내의 여러 곳에서 소규모로 빗물을 받은 다음 천천히 내 보내면 큰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지역 전체에 내린 빗물을 한꺼번에 모아서 대규모의 빗물펌프장에서 내 보내면서, 하천의 제방이 넘칠까봐 제방을 또 높이려고 하는 것은 대규모 집중화 방법의 모순이다. 이때에는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명까지도 피해를 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의 홍수와 물 부족, 그리고 수질오염을 대비한 물관리 정책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집중화, 대형화로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물에 의한 피해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근본적인 문제 파악과 해결방안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앞으로는 패러다임을 바꾸어 분산화, 소형화도 함께 고려해 현명하게 물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점심때 가까운 식당에 가면서 규모의 경제성(Scale Merit)의 모순점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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