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제4회 세계물포럼대회가 오는 3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다. 1996년 세계은행은 세계물평의회를 만들었다. 이 세계물평의회는 97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세 차례에 걸쳐 세계물포럼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99년 ‘21세기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세계위원회는 물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려는 의도에서 탄생했다.

세계위원회의 물에 대한 관점은 대단히 명료하다. 즉 물을 시장의 원리에 입각해 접근하고 있다. 논리적 정합성은 이러하다. 물은 희소자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다. 때문에 물은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의 원리에 맡겨져야 한다. 나아가 수자원 관리의 목표는 최고의 수질 확보이다. 최고의 수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며, 이는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이 투자 재원은 이익의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시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관점은 실행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 관점에 따라 2000년에 열린 제2회 세계물포럼에서는 물을 인간의 기본적 필요재로 규정했다. 즉 효과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물의 상품화와 물 서비스의 민영화만이 바람직한 물관리라고 결론지었다. 많은 전문가나 NGO 활동가들이 제4회 세계물포럼대회를 코앞에 두고 물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난해 3월 제주도에서 지구시민사회포럼이 열렸다. 물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지구의 벗’ 리카르도 나바로 회장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권인 물의 상품화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물 가격을 가나에서는 2배, 볼리비아에서는 3배로 올리는 횡포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각국의 정부는 물 관련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리카르도 페트렐라에 의하면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물 문제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14억 명의 인구가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하고 있으며, 20억 명의 인구가 충분한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계와 생명의 기초인 수자원의 파괴와 수질 악화가 대단히 심각하다. 나아가 평등과 화합에 바탕을 둔 세계적 차원의 수자원 관리원칙이 없다. 또한 물 소비에 있어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한 해 세계에서 사용하는 물의 86%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물 문제로 인한 전쟁과 결핍으로 고통 받는 인구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물은 단순한 경제재가 아니다. 물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물은 생존을 위한 권리인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다. 물은 인간 공동체에 필수적인 보편재이며 사회적 자산인 동시에 공공재라는 말이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듯이 최소한의 물을 얻어 쓸 권리는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물 문제는 사회가 모두 함께 다뤄야 한다. 물은 어느 한 쪽에서만 지배하거나 편향되게 관리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특히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 시장과 자본에 소유나 관리를 맡긴다면 그 후유증은 대단히 심각하고, 벌써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실시한 민영화의 결과는 물값 폭발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예컨대 90~94년 물값 상승률은 평균 50%였다. 그러나 그로노블 같은 곳은 3배로 뛰었다. 파리는 154% 상승했다. 따라서 물 관리는 국가, 시민사회, 시장,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안전과 평화를 전제로 이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이고 불편·부당함이 없는 관리가 될 수 있는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물의 민영화, 물 규제의 철폐와 완화, 물의 개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가고 있으며, 물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촘스키는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대중을 그저 구경꾼으로 만드는 이런 흐름을 꿰뚫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종속시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라고 통렬하게 비꼬면서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 경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돈이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구경꾼의 자세가 물 문제 해결을 위해 몇 십 년 동안 막대한 재원을 쏟아넣고도 오히려 물 문제는 악화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제4회 물포럼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주시해야 할 당위성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각기 주어지는 아젠다들이 결국은 세계적·일국적·지역적 차원에서 자본과 시장의 이해를 반영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 대한 위기의식인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시민사회는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한국의 NGO는 이에 맞설 실천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가. 제4회 물포럼을 앞두고 좀 늦긴 했지만 한국 민간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비하려는 조직적 준비는 여전히 취약해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추세와 동향에 대해 물 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NGO들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구심점과 집단적 연대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 우선 일국적 차원의 일상적이고 상설적인 연대조직 또는 네트워크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갖는 ‘한국 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한국 물 네트워크’는 평화적인 물 운동을 전개하는 세계적 차원의 국제 물 운동 기구들과 공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향후 급속하게 진행될 우리나라의 물 개방화와 상업화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는 민간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간 8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물 시장에 대한 개방화는 향후 우리나라의 물 문제를 규정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부문에서의 압박이다. 하나는 다국적 기업의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부문에서의 중복투자 및 관리의 비효율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민영화 움직임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각국 정부에 대해 상하수도의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후진국에게는 차관 상환을 유예시키는 조건으로 민영화를 요구하고, 개발도상국에게는 물 부문도 개방화의 대상에 포함 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9년에 시행된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은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발판이 됐다. 다국적 기업 가운데 국내에 진출한 대표적인 기업은 프랑스의 베얼리아 워터사이다. 이 회사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1억 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물 처리 기업이다. 이 업체는 한국수자원공사·현대·삼성 등과 제휴해 국내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주로 하수처리장 건설 및 운영을 전담할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상하수도 공동사업, 수돗물 누수방지 처리 시설, 고도정수처리 기술개발, 반도체 공업 용수 시설 건설 등에 투자하고 있다. 또 다른 프랑스의 기업인 수에즈사는 하수종말 처리 시설 민간 투자 사업을 수주했다.

문제는 민영화가 갖는 수자원의 예속화라는 원천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민영화가 몰고 올 파장과 물 관리 및 배분에 있어서의 불평등 문제이다. 즉 있는 자는 값싸게 질 좋은 물을 마실 수 있고, 없는 자는 값 비싸게 질 나쁜 물을 마실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실제로 마닐라시의 물 민영화는 부유층 지역의 물값이 서민층 지역의 물값보다 2분의 1이 더 싸게 책정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야기했다. 결국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 전체의 공동자산을 사적인 이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민영화의 실체다.

이렇게 볼 때 제4회 세계물포럼을 앞두고 한국민간위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물 민영화에 대한 합리적 저항성을 담보하기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국제적·국가적·지역적 운동단체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물관리와 정책의 동향과 새로운 정보의 수집을 통한 민간섹터 부문에서의 아젠다를 세팅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물 정책의 대안 제시를 위한 ‘싱크 탱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의 물 민영화 수준과 다국적 침투 사례의 조사 보고를 통해 멕시코시티 현지에서 아시아나 세계의 물 NGO들과 함께 활동을 공유하는 일들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요 근래 우리나라의 물 NGO들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적 참여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개방화 압력과 재벌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물의 민영화에 대한 문제의 제기나 실천력은 취약한 편이다. 물은 모두의 생존권적 권리라는 점을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편향된 시장중심의 논리가 갖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력이 제4회 세계 물 포럼을 계기로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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