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록문화는 민족사 만큼이나 긴 전통을 자랑한다. 그리고 정확한 사실 그대로의 기록, 장구한 세월에 걸친 기록, 후대에 전하기 위한 기록물의 분류 및 보관 등에서 철저했기에 더욱 소중한 민족적 자산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왕조실록」과 「족보」다(족보는 따로 설명하기로 한다. 외국에서도 족보학회나,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한민족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만 하더라도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은 명실공히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5백년 정사를 기록했는데 세계에서 500년을 이어서 기록한 예는 어디에도 없다. 원래 「고려왕조실록」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까지 합치면 1천년을 실록으로 기록했던 셈이다. 통상 실록 차원의 기록은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승리와 영광을 기록하기 마련이다. 원래 사상과 철학, 문화예술은 나라가 강성하고 국운이 넘칠 때 꽃피는 법이듯 국운이 흥한 시대에는 역사 역시 중히 여겼고 이를 기록하여 남기는 데도 열정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활력이 넘쳤던 삼국시대에는 유기(留紀. 고구려의 사서. 모두 100권이며 이것을 600년에 이문진이 5권으로 다시 만듦), 서기(書記. 375년 ‘백제 최초의 박사' 고흥이 편찬한 백제의 사서), 백제기(百濟記. 고흥이 편찬), 국사(國史. 545년 거칠부가 편찬한 신라의 사서) 등 대대적인 역사서적의 편찬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지식문명적 전통과 문화의식이 이어지면서 고려대에 이르러서부터는 하루도 빠짐없는 실록기록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잘못된 왜곡과 오류가 일본·중국 등에 의해 일반화되면서 외국에서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일상화되다시피 쉽게 벌어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제는 우리 손에 의해 쓰여진 우리의 기록으로 다시 메우고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100년이 걸리든 얼마가 걸리든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손으로 된 역사와 자료를 모으고, 필요하다면 중국과 일본의 기록까지 찾아서라도 비어있는 한국사를 메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제국 조선, 부여·동예·옥저·읍루 등의 열국시대, 삼국시대, 나진남북국시대 등도 「부여실록」이나 「고구려실록」처럼 하나하나 빠짐없이 쓰여져야 하겠다.
다만, 여기서 신화시대와 근세 조선의 역사중 실록이 없는 고종·순종 시기 및 임정시절도 빠져서는 안되겠다.

이제는 정치사·전사만이 아니라 문화사·과학사 등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하겠다. 이러한 중에 한국은 기록이 풍부한 나라가 되고, 실록정신에 투철한 한국인은 기록문화에 관한 한 세계인이 손꼽는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록정신'을 잊지 말고 새겨 두어야 한다. 사실 세종도 태종실록이 완성된 후 실록을 보고자 했으나 맹사성의 결사 반대로 보지 못했고, 사관의 사필(史筆)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그래야 실록이 특정인이나 정치세력 등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록자체의 정확성과 사실 그대로의 진실은 생명처럼 소중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록정신'의 최고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만 하더라도 사초작업에서 실록완성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분류와 검색, 한지의 제조 및 재생법,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에 동원된 과학기술 등이 있어 가능했듯이 높은 과학성과 문화수준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명실공히 IT강국으로서 단순히 종이에 적는 것만이 아니라 영상물·CD-ROM·사이버 공간 등에 기록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기록 및 보관방식도 즐겨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남은 실록은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이자 선례로 늘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되며, 세계인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지식의 정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실록」도 후세와 인류를 위해서라도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할 것이며, 이런 중에 한민족의 ‘실록정신'은 영원한 민족적 기질이자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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