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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중국 노나라의 공자가 오십 세에 이르러 득도를 위해 중원 천하를 철환할 때,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에 중원의 천산 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지나는데 저만치 앞에서 칠순의 늙은이 한 사람이 십팔 세쯤의 아리따운 낭자를 곁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사십 세쯤의 중년 남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주색과 향락에 취해 한 세상을 보내고 이제 심신이 병약해져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지라 세상에 남긴 거라곤 이 딸애 하나밖에 없도다. 지참금은 없어도 젊은이에게 부디 딸애를 거둬 주기를 부탁하네”라고 말하자, 사십 세의 중년 남자가 말하기를 “나 또한 십오 세부터 주색과 놀음과 향락에 취해 부모의 유산을 탕진하고 삼십 세가 못 돼 병들어 죽기에 이르러 속세를 떠나 죽음을 맞기 위해 이 천산으로 들어온 지 어언 오십여 년이 흘렀는지라, 설령 저 아리따운 낭자를 취해 품에 안아도 불과 반 시진의 허망한 꿈일 뿐인데 저 산으로 돌아가면 물 흐르는 계곡마다, 산허리와 능선마다, 우거진 녹음과 자연 속에 숨겨진 수천 수백의 여인이 교태로운 몸짓과 뜨거운 숨결로 나를 맞아 황홀한 경지의 극치에 이르게 하는지라, 아직도 죽음을 맞지 못하고 설레는 가슴으로 살아 생존하고 있으니 어른의 귀한 청을 받지 못함을 용서하시오”하고 산을 향해 발길을 돌리려 하자, 공자가 중년의 남자에게 나이를 물으니 팔십 세요, 길가에 서 있는 칠순의 노인에게 나이를 물으니 사십오 세였다.
공자는 “허상이로다. 세상의 성취와 향락인들 무엇하리요 모두가 일장춘몽이나 자연은 무한한 생명을 지녔음을 깨달았도다” 했다 한다.

산!
산은 삶에 찌든 현대인에게 신체와 영혼의 안식과 동경의 휴식처요, 삶에 대한 자기완성과 극기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산행하는 인구가 전국적으로 1800만 명에 이르고, 한 달에 한 번쯤 산행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약 3000만 명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등산용품 시장의 규모가 연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한국인의 산에 대한 열망을 가히 짐작하고 남을 만하다.
필자도 24년 전인 1982년 봄부터 북한산 백운대를 시작으로 초보의 산행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올랐다. 100㎜ 폭우가 내려도 산에 올랐고, 영하 20여 도의 엄동설한과 눈보라 속에서도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게 된 동기는 29세 때 운동 중에 무릎 연골이 크게 파손돼 대수술을 받기도 했고, 허리 부분을 다쳐 상당한 날을 디스크로 고생하던 때 인생을 포기 할 수 없어 선택한 자기 극복 의지에서였다. 초보 때 군용 탄띠에 수통 한 개 차고 산을 오르면서 자신을 향해 다짐하곤 했다.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그 후로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24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행 15년쯤 하니 1차 체력 도약의 계기가 왔고, 다시 5년쯤 오르니 두 번째 체력 도약의 기회가 왔다. 현재는 최상의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1년 내내 겨울이든 여름이든 산행 시간은 단 1분도 오차 없다.
요즘은 주 5일제가 돼 토요일과 일요일 주 2회 산을 오른다. 그리고 4년 전부터 설악산을 6월, 7월, 8월, 9월 년 4회 백담사 매표소에서 시작해 백담사~영시암삼거리~오세암~(공룡능선)마등령~1275봉~신선봉~휘운각~소청~중청~대청~오색 종주코스를 10시간에 완주한다.
이 코스의 기록상 산행시간은 18시간이다. 이것은 지난 79년 무릎연골 파손으로 진단 28주의 대수술을 받고 다리에 1000여 만원의 핀을 박지 않으면 평생 목발 신세가 될 것이라던 서울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과장 진단의 쓰라린 좌절의 역사를 바꿔 썼고, 그 뒤로 허리 3·4·5번 척추가 손상돼 ‘이 사람은 다리의 정상 거동이 불가능하고 발로 정상 보행을 할 수 없는 중한 상태’라는 신경외과 원장의 20년 진단을 산행을 통해 ‘의학적 불가능을 극복한 철인’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필자는 산을 통해 인생과 삶의 신체적·영적 극복은 물론 불굴의 정신력과 체력과 자기 수양의 득도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감히 글을 통해 남기고 싶다. 필자는 산행과 언론의 길에 궤적을 함께해 왔다. 이제 소박한 꿈이 있다면 75세까지 꼿꼿이 언론인의 길을 가는 것이고, 85세까지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일이다. 두 가지 모두 실현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필자도 산을 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끓어오르며 백리를 축지할 것 같은 기를 느끼고, 어느 순간엔가는 몇 시간씩 무아지경에 몰입해 산행을 의식치 못하는 경지에 다다르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산 속에는 공자 앞에서 말했던 팔순의 노인처럼 수백 수천의 여인들이 알몸의 교태로운 몸짓과 뜨거운 숨결로 나를 무아지경과 황홀경에 이르게 하니 5000년 고금의 역사가 바뀌어도 자연의 무한한 이치는 변함이 없음이다.
필자는 지난 7월 7일 금요일 정해진 2006년 1회 설악산 종주 스케줄대로 오후 5시 집에서 설악산 종주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준비물은 반팔 노란색 티와 반바지에 등산화와 면장갑 2켤레, 등산스틱 한 개, 갈아입을 등산복 상하 반제 1벌, 우의, 수건, 작은 참외 9개, 찰떡 1케이스, 피스넛 10개, 작은 물병 4개, 소염제 4정, 소화제 4정, 맥 소형 랜턴과 헤드램프, 소형 나침반, 등산용 나이프, 산행기록 수첩, 휴대폰과 보조 배터리, 호루라기, 카메라, 등산시계와 보행기록기 등이다. 차량 내 숙영 준비물로 얇은 하절기 담요 1장과 양모담요 1장을 준비했다. 전투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으로 긴장되기도 하고 가슴도 설렌다. 양평~홍천~원통을 지나 한계령에 이르는 동안 한 두 차례 소낙비가 쏟아졌다. 비가 와도 가는 것이다. 한계령 정상에서 인제 내린천 가는 도로를 타고 약 5㎞ 내려가면 필례약수터가 나온다. 필례약수터는 한계령 바로 아래 하늘아래 첫 마을이다. 이곳은 철분이 함유된 미네랄 약수가 유명하다. 지난 4년간 연 4회 설악산 종주 때는 이곳에서 차내 1박을 한다. 피서철에는 발도 못 담글 서늘한 하늘 아래 첫 물길의 이곳 숲속은 텐트촌으로 변한다. 아직은 때가 일러 한산하다. 식당 두 곳이 있는데 두 곳 모두 음식이 맛깔스럽다.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가지고 간 플라스틱 물통에 철분 탄산약수를 한통 받았다. 음주 뒤에 이 철분 탄산약수를 마시면 빠른 시간에 술이 깬다. 밤 10시가 넘자 설악 남쪽 점봉산 방향의 하늘이 맑게 갰다. 청명한 하늘에 약간의 구름 사이로 보름에 가까운 달빛이 흐른다. 휘파람새의 구성진 소리도 고즈넉하다.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적막함은 한계령 밤의 4재다. 잠시나마 떠나온 생활 속세의 덧없음을 회상하며 기도를 한다. 그리고 차안에 은은히 흐르는 흘러간 명곡 팝송의 릴렉스한 선율 속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담요를 덮으니 어느새 꿈의 밀어 속으로 빠져든다. 밤의 온도가 13도로 떨어졌지만 잠의 여신은 은밀하게 나의 영혼을 끌어안아 자장가를 불러준다.
8일 토요일 새벽 4시 반에 기상했다. 세면을 마치고 다시 차를 몰아 한계령을 넘어 오색으로 내려간다. 오색공원 매표소에서 우회전해서 그린야드호텔을 지나 식당가 마당에 주차를 했다. 식당가의 좌측열 맨 첫 집이 오색식당인데 필자는 5년을 애용했다. 음식의 정갈함과 맛깔스러움은 설악산 고유의 천연 채취 산나물에서 풍겨난다. 이곳에서는 가장 맛깔스런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여겨진다. 특히 토속 된장은 된장 맛의 정1품이라 할 수 있다. 오색식당은 40대의 두 동서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필자를 가족처럼 항상 미소와 따뜻함으로 맞아준다. 지난해 10월 단풍 산행을 오고 8개월 만이니 아우처럼 여기는 식당 사장이 달려 나와 반기고 그 누님이 활짝 웃으며 반겨 맞는다.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하고 산행 중에 먹을 주먹밥 한 덩이를 주문했다. 참깨와 맛소금 양념을 해서 만든 주먹밥 한 덩이는 휘운각에서 먹는 유일한 오찬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식당 사장을 필자의 갤로퍼 승용차에 동승해 한계령을 넘는다. 약 1시간 차를 달려 진부령 방향의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서 필자는 하차하고 동승해 온 식당 사장은 승용차를 되돌려 다시 오색으로 떠났다. 오전 6시30분이다. “가자! 나에 대한 도전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첫걸음을 내딛는다.
△제1코스. 6시43분- 백담매표소를 통과했다. 오후 5시전에는 오색매표소를 통과해 나갈 것이다. 백담사까지 순환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산행팀 한 무리가 웅성이는 정류장을 지나 설레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백담사까지는 7㎞다. 18도의 온도는 산행에는 최적의 절묘한 온도다. 일진이 좋아 보인다. 날이 흐려 아직은 칙칙한 포장도로의 나무터널 사이를 벗어나니 짙은 연두색과 녹색의 소용돌이치는 계곡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 백담계곡.”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연과 절대자가 영원의 태초에서 때 묻고 진부한 인간속세로 흘려보내는 정화수이리라. 걸음을 재촉함에 따라 계곡은 깊어진다. 도로의 등판 각도가 가파르다.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세 곳을 지나 일주문에 다다르는 동안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순환버스가 두 대 지나쳐 간다. 좌우측으로 병풍을 두른 듯 깊고 깊은 계곡과 산자락을 바라보며 나는 녹음의 나뭇가지도 되고 물길도 되며 하늘을 뒤덮은 산자락 능선 위에 걸친 구름 한 송이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백담사 정문 도착 7시44분. 61분에 9280보를 걸었다(도상 기록은 2시간10분). 순항이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대퇴부와 양쪽 무릎의 아킬레스건 부분에 맨소래담을 바른다. 지금부터 신체 각 부분에 근육의 유기적인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해 줘야 10시간을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3분간 휴식 뒤 다시 배낭을 메고 2코스 영시암 삼거리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온 다른 산행 팀들과 백담사에서 숙영한 봉정암과 오세암의 순례 팀 불자들도 뒤섞여 발길을 재촉한다.
△제2코스. 7시44분- 영시암 삼거리를 향해 출발했다. 좌측에 백담산장을 뒤로하고 녹음 터널의 탁 트인 도로를 500여m쯤 가면 넓게 펼쳐진 백담의 상류천이 시야에 들어온다. 계곡의 좌측 수변의 돌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며 계곡을 가로질러 숲길로 접어든다. 저 멀리 남쪽하늘 아래 대청봉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경상도·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산행객들을 추월해 40여 분을 걸으니 아늑한 숲속에 위치한 영시암 암자가 불사 증축에 한창이다. 도로 옆에 흘러내리는 암자 약수를 한 모금 마셨다. 약수 옆에 50여 명의 산행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매표소부터 걸어오신 분이죠?”라며 말을 건넨다. 나는 미소만 짓고 조용히 그 앞을 지났다. 곧이어 인공 나무계단을 오르기 시작하고 10분쯤 가니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했다.
도착시간 8시40분. 백담사부터 소요시간은 56분이다(도상 기록은 1시간30분). 갈림길에서 곧바로 직진하면 수렴동 대피소와 가야동 계곡과 봉정암 가는 길이요, 좌측 언덕길은 오세암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는 수행스님 세 분이 땀을 식히고 있다. 무릎에 맨소래담을 가볍게 바르고 곧바로 배낭을 둘러멨다.
△제3코스. 8시45분- 오세암을 향해 출발했다. 워밍업을 끝내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으로, 심호흡을 해 본다. 숲의 나무 수종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계곡을 몇 차례 가로질러 오르기 시작하면 일조량부터 뚝 떨어지며 어둑한 밀림이 펼쳐진다. 하늘을 향해 찌를 듯 솟구쳐 자란 우람한 전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나를 맞는다. 첫 번째 언덕의 능선을 넘고 두 번째 깎아지른 가파른 능선을 넘는다. 그리고 흙 위로 뻗어나와 뒤엉킨 백년송의 뿌리들을 피해 조심스레 가파른 경사 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천년 수림의 장엄함과 장관이 펼쳐진다. 양팔로 두 세발을 넘는 평균 수령 500~1000년의 천년송 수십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무한한 기를 내뿜고 있어 앞으로도 족히 500년 수령은 능히 건재할 듯싶다. 마치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100여m 높이의 메타세쿼이아 나무숲을 연상케 한다. 경사로를 따라 오르다가 갑자기 등판각도 80여 도의 가파른 깔닥고개가 등산객의 허를 찌른다. 이 세 번째 능선에서 야간산행 시 바라보는 설악 벽공의 달빛에서 쏟아지는 경이와 신비로움의 극치는 인간의 심성을 절로 자연으로 귀화케 한다.
네 번째 황톳길 언덕에 오르면 저 모퉁이 건너편으로 오세암이 보인다. 오세암이다! 계곡을 돌아 오세암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9시25분. 영시암 삼거리부터 소요시간은 45분이다(도상기록은 1시간20분).
오세암의 공양실 옆에 불사 증축이 한창이다. 긴 턱수염을 기른 도인의 인상을 풍기는 사무국장 스님이 합장을 하고 반긴다. 3년 전 가을, 국방부 합조단 부단장을 지낸 헌병 이모 대령과 정보기관의 유모 국장과 세 집 내외가 오후 4시부터 백담사 매표서부터 산에 올라 저녁 8시에 오세암에 도착해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마등령을 거쳐 공룡 능선을 완주한 적이 있다. 오세암의 전설은 널리 알려진 터라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소청봉 아래 위치한 봉정암이 오세암의 본찰이며 봉정암과 오세암은 직선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어 설악의 대청과 북쪽 미시령 진부령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 상의 남북의 천기를 아우르는 위치에 있음이 오묘한 역리라고도 한다. 배낭을 벗고 사찰 큰 마당에 석거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한 바가지 들이켜고 물병을 보충했다. 참외 한 개를 껍질째 해치우고 피스넛 초콜릿 두 개를 간식으로 취했다. 면수건에 약수를 흠뻑 적셔 머리를 식히고 대퇴부와 무릎에 맨소래담을 바른다. 마등령까지는 등판각도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10분간 휴식을 마치고 배낭을 둘러멨다. 공양실과 옆의 객사 사이로 계단을 오르면 작은 계곡을 건너기 직전에 갈래길이 나온다. 곧바로 직진하면 산허리를 45도 끼고 내려가면서 가야동 계곡 상류 지천을 가로질러 봉정암으로 향하는 길인데 주로 봉정암과 오세암을 순례하는 불자와 수행자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이 길을 택한다. 갈래 길에서 좌측 비탈길을 오르면 마등령을 거쳐 공룡능선으로 이어진다.
△제4코스. 9시35분- 마등령을 향해 출발했다.
이 길을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등령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많다. 첫째, 설악동 비선대에서 출발해 백담사까지 오는 코스의 산객들과 둘째, 휘운각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와 마등령에서 오세암 백담사 코스로 오는 산객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차럼 백담사 입구 용대리에서 시작해 오세암~마등령~공룡능선~휘운각~소청~대청~오색의 코스로 잡는 경우가 흔치 않다. 백담사 입구 용대리에서 마등령까지 일반인의 경우 7시간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코스에서 체력을 소진시켜 버리면 마등령에서 휘운각까지 5시간가량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 8개를 넘어야 하는 한계체력의 난코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등판각도 70여 도에 육박하는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세 개의 능선을 넘는다. 그 중 두 번째 돌출 능선을 등판하면서 뒤를 돌아보면 천지사방 가운데 고립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늘과 첩첩의 능선밖에 안 보인다. 지난 3시간은 준비 과정이다. 지금부터는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다. 절묘하게도 약간 흐린 날씨에 온도는 약 18도로 산행의 호조를 예감케 한다. 몇 사람의 하산객과 교행하고 마지막 경사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코스의 능선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과의 극한의 경지를 초월하는 산객에는 신념의 제1호다. 자연의 위압감에 기가 꺾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직 호흡 한 번에 한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세상사 번뇌와 갈등·증오와 분노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무아지경에 몰입하기 위한 전 단계다. 마침내 큰 능선에 올랐다. 널따란 숲과 목초 습지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초지의 흙이 여기저기 무참히 파헤쳐져 있다. 멧돼지들의 살아 남기 위한 먹이 행각의 흔적이다. 산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난 습지대를 200여m 지나니 고목나무들이 몇 그루 누워 뒹굴고 있는 개활지가 나온다. 마등령이다. 산객들의 걸음이 교차한다.
도착시간은 10시20분. 오세암에서부터 소요시간은 55분이다(도상 기록은 1시간40분).
마등령에서 바라보이는 남동방향의 계곡은 비선대 방향의 천불동 계곡이다. 운해에 싸인 천불동 계곡은 천혜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의 극치다. 여기서 좌측의 봉우리를 올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비선대와 설악동으로 이어진다. 봉우리를 넘어 그대로 가면 저항령~미시령으로 가는 길이다. 공룡능선은 우측으로 간다. 나는 몸져누운 거목줄기의 등허리를 깔고 앉았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참외 두 개와 피스넛 초콜릿 두 개를 순식간에 해 치웠다. 대퇴부와 무릎에 맨소래담을 바른다. 두 시간 반 동안 공룡을 타기 위해서다. 공룡능선에서 휴대폰 교신이 되는 곳은 마등령과 1275봉과 신선봉 세 곳뿐이다. 마등령은 여름 피서철 혹서기에는 산객들이 숙영 텐트를 치는 곳이다. 또한 조난을 피해 응급대피와 119 헬기 구조가 가능한 곳이다. 10분간 휴식을 마치고 공룡을 향해 출발했다.

△제5코스. 10시30분- 1275봉을 향해 출발했다. 우측의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하면 암반이 널브러진 비탈길 곳곳에 비바람에 휘어진 주목군락지가 나온다. 비바람이 거센 곳이라 모두가 암반을 향해 포복 생존해 있다. 좌측에 바다와도 같고 하늘과도 같은 운해가 가득한 천불동 계곡을 바라보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던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가 감히 헤아려질 듯싶다. 멀리 남쪽으로 1275봉의 위용과 대청이 바라보이고 그 아래 우측으로 그 유명한 화채능선과 용아장성이 바라보인다. 아! 천기(天氣) 서린 공룡능선이다.
첫째 봉우리를 넘고 15분쯤 가면 웅장한 암봉이 즐비하게 열병하고 있다. 나한봉이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두 개의 거대한 암봉 사이로 깔린 운해를 바라보면 영원으로 빨려 들러 갈 듯한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암봉을 지나면 800여m를 솟구쳐 오른 가파른 봉우리와, 다시 1000여m를 급경사로 내리꽂히는 내리막길이 2회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시 1000여m의 가파른 암반길이 길게 뻗어 올라가 아찔하게 하늘을 향해 맞닿아 있음을 바라보는 순간 만물의 영장으로 잘나고 오만한 인간들을 냉소하고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위압감에 숙연해진다.
체력과 정신력의 전투라고 해 두자. 그러나 자연과의 격돌과 전투는 인간이 무릎을 꿇게 돼 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뜨거운 가슴과 소용돌이치는 영혼을 조용히 잠재워야 한다. 나는 한 잎의 풀잎이나 꽃과 나뭇잎에 불과한 것이요, 지금 밟고 올라가는 발밑의 한 개 모래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등산모의 차양에서는 주룩 후두둑 후두둑 땀방울이 자욱을 칠 때마다 바위를 적신다. 정상부근에 이르자 좌측으로 웅장한 암반 봉우리와 사이를 두고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오른 암봉이 삼지창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다. 드디어 1275봉이다.
도착 시간은 11시30분. 마등령에서부터 소요시간은 1시간이다(도상 기록은 2시간 10분). 보행기록이 3만보다.
1275봉은 암봉이 좌우측 두 개라 해서 쌍각봉이라고도 한다. 공룡능선 구간 중간에 위치한 유일한 피난처요 휴식처다. 이곳에서 마시는 물은 인간생명의 절실한 희구를 느끼게 한다. 물은 곧 생명임을 깨닫게 한다. 물이 없다면 자연과 생태계간의 생명의 생성과 윤회의 굴레도 끊기게 된다. 또한 버적버적 씹어 삼키는 참외 두 개의 달콤한 맛과 수분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먹을거리의 수혜임을 깨닫게 한다. 피스넛 초콜릿 두 개와 양갱 한 개의 맛 또한 당분 공급과 더불어 혀끝의 감칠맛이 감미롭다. 지나온 마등령의 길과 능선은 속세로부터 떠나온 길처럼 감개하고, 저 앞에 바라보이는 신선봉은 하늘의 천궁과도 같다. 가물가물 뻗어 내려간 기다란 경사면과 다시 하늘로 맞닿은 몇 개의 봉우리로 이어진 천상의 길은 죄 많은 인간 속세의 해탈과 용서, 자복과 참회의 돌계단들이리라. 무릎과 대퇴부에 맨소래담을 바르자 땀과 범벅돼 피부에 불을 지른 듯 화끈거리고 얼얼하다. 근육의 피로와 경직이 풀리는 현상이다. 5분의 휴식을 마치고 배낭을 둘러멨다. 가자! 쉬지 말고 가자. 저 인간 세계에서 진부하게 살아온 55년의 세월에 때 묻은 영혼과 신체의 허물을 벗기 위해 오늘은 고행의 길을 나선 것이리라.

△제6코스. 11시35분- 신선봉(무너미고개)을 향해 출발했다. 이곳부터는 우거진 숲 속으로 800여m를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암반 아래 약수터가 있다. 공룡을 타는 산객들이 목마른 갈증을 해소해주는 곳이다. 숙영하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띈다. 왼쪽의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기 시작 하면 앞이 안 보인다. 오직 한 발자국이다. 들숨과 날숨을 길게 쉰다. 폐활의 산소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첫째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면 갑자기 암반 능선이 가로막고 서 있다. 이곳은 자칫 우측으로 우회를 잘못하다가는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줄이 매어져 있다. 줄을 잡고 턱을 오르면 이번에는 경사각도 80여 도에 가까운 암반 사이로 내리막 벼랑길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두 개의 로프가 매여 있다. 로프를 타고 조심스레 균형을 잡고 내려가면 약 1㎞의 암반 경사로를 내려가야 한다. 바위 경사면에 약간의 물이 흐르고 젖어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스틱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이런 긴 경사면의 암반 길을 산객들이 두 개의 스틱을 어깨보다 높게 해 짚고 내려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신체의 보행 하중이 분산돼 자칫 내짚은 스틱에 균형이 쏠릴 경우 순식간에 암반 벼랑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스틱은 불안전하게 짚을 경우 하중이 실리는 순간 스틱과 바위 접촉면이 미끄러지면서 튕겨져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 내려가고 나면 또다시 하늘로 이어지는 돌길이 나온다. 이곳의 좌우측면에는 공룡능선에서만 자라는 고산화초로 유일한 신비의 꽃 에델바이스가 자생하고 있다. 바닥에 붙어 자란 낮은 키에 백색과 베이지색의 중간색으로 꽃술이 겹 코스모스처럼 원형으로 펼쳐 있고 향기가 그윽하다. 올해는 만개한 꽃송이가 그리 많지 않다. 8월 초가 돼야 더 많이 핀다. 이 부분에서 두 번째 봉우리로 이어지는 등판 길은 자연의 미로에 갇힌 듯 인간의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무한대의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듯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등판 길이다. 이렇게 두 개의 봉우리를 더 넘고 세 번째 암반봉을 치고 오르니 설악의 천지사방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신선봉(무너미고개)이다. 도착 시간은 12시43분. 1275봉에서부터의 소요시간은 1시간이다(도상 기록은 2시간20분).
지나온 1275봉의 능선 아래로 솟아오른 범봉의 위용과 마등령 방향의 능선들과 오른쪽의 천불동 계곡을 뒤덮은 운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남쪽의 저 아래로 휘운각이 보이고 소청으로 길게 뻗어 올라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봉정암 방향으로 용아장성 능선의 위용이 바라보이고 북서쪽으로 기다란 백담 계곡이 능선들에 묻혀 있다. 범봉의 운해는 안개바다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들이 쉬는 곳이라 해서 신선봉이라 했단다. 저 아래 휘운각 대피소에서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운해 사진을 몇 장 찍고 휘운각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15분쯤 내려가 아래 능선을 타고 왼쪽으로 도니 웅성거리는 산객들의 인기척이 들린다. 좌측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천불동 계곡~비선대~설악동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언덕을 내려가니 널따란 평지 숲 속 능선 위에 위치한 휘운각이 나타난다. 소청봉으로 향하는 철다리 아래 계곡수 물가에 배낭을 내렸다. 휘운각에는 산객 50여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착 시간은 13시10분. 1275봉부터 소요시간은 1시간35분이고 마등령부터 공룡능선 주파시간은 2시간35분이다(도상 기록은 5시간).
휘운각의 냉천수에 발을 담그고 머리를 감고 천혜의 설악 자연수를 네 개의 물병에 담았다. 물맛은 청량함을 넘어 원초적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주먹밥 한 덩이로 점심을 때우고 참외 두 개와 초콜릿 두 개를 먹었다. 휘운각은 설악산 산객들의 전설에 싸인 피난처요 휴식처다. 엄동설한의 폭설로 산객들이 고립될 때, 폭우로 발길이 끊길 때, 지친 몸으로 체력을 감당 못해 좌절하고 주저앉은 이 들 등 숱한 산객들의 애환의 발자취를 안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휴대폰 교신은 안 되지만 대피소 전화가 있어서 공원관리소에 119 구조 요청이 가능하다. 25분간의 휴식을 마치니 몸이 매우 가벼워진다. 배낭을 멨다. 지금부터 소청까지 등판각도 60도에 1200m의 장구한 인간 체력과 정신력의 시험 코스를 올라야 한다. 2004년 8월 5일에는 공룡구간 내내 기습 폭우를 맞으며 통과했다. 소청봉으로 가는 철계단을 오를 때는 계단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폭우 물살이 허벅지와 가슴을 강타하는 거센 자연의 저항 속에서도 쉼 없이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폭우로 시계가 10m도 안되는 칠흑처럼 시커멓고 어둔 상태였다. 휘운각에서 25분간의 휴식으로 사기를 재충전했다.
△제7코스. 13시35분- 소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직각에 가까운 철 계단을 10여 분 오르고 길게 드러누운 바위 계단 능선을 다섯 굽이 오르는 동안은 이미 소진된 체력 때문에 하체의 내구력과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전 구간에서 그랬지만 특히 소청구간은 인간정신력과 체력과의 한판 승부다. 한 발자국도 쉬지 않고 논스톱 슬로 페이스로 등판한다. 이곳에서는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속세의 상념이 떠오를 수가 없다. 등산모의 차양에서 비 오듯 주루룩 주루룩 흘러내리는 땀이 산행로에 줄을 긋는다. “올려다보지 마라.”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 오직 스텝 바이 스텝이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원리와도 같다. 이 한 스텝이 백리도 가고 천리도 가고 긴 인생행로를 간다. 소청구간의 등산지도상 산행기록 시간은 2시간이다. 나는 55분에 올라야 한다. 그게 목표다. 운명적으로 혹은 외부 여건 때문에 인생길이 굴곡됐다면 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굴곡되지 말자. 좌절도 절망도 포기도 하지 말자. 인간으로서 천수를 다하는 그날까지는 신념을 생명으로 한다. 젊은 나이에 무릎 연골이 대파돼서 28주의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받았던 무릎도, ‘두 다리를 정상으로 쓰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던 요추 허리 부분도 지금은 모두 잊고 살고 있다.
주위에서 필자를 일컬어 ‘의지의 한국인’ ‘산행을 통해 기적을 일으킨 철인’이라고 일컫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호경찰 출신으로 경찰태권사범을 지낸 필자는 태권도 공인 6단에 유도 공인 3단의 공인 무도인이다. 나는 지난 24년을 산에 오르면서 끊임없이 신념을 충전시켰다. 앞으로도 85세까지는 이곳 설악의 대청을 오르리라.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모두가 감사할 일 뿐이다. 이 세상에 살아 남아 존재하는 동안은 사실 슬픔도 기쁨도 모두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몇 년 전 가을 산행 때였다. 일행과 오세암에서 1박을 한 다음 날, 새벽 예불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설법을 우연히 들었다. 새벽달이 휘영청 밝아 봉정암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찰 마당가에 서 있을 때였다. “네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그이가 그토록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어 몸부림했던 내일이다.” 나는 그 설법을 사찰 마당가에 서서 듣고 뒷골부터 가슴이 서늘해져 오는 어떤 영감을 느꼈다. 그렇다. 우리는 좀 더 인생에 숙연해지고 겸허해져야 한다. 온갖 오만과 교만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무상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한줄기 바람이요 구름과 같다. 인간으로 세상에 왔다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행로일 뿐이 아니런가.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침목이 양편으로 고정돼 있는 마지막 오름세가 눈에 들어온다. 전방 50m다. 가슴이 설렌다. 해냈다. 소청이다. 소청 마당에는 봉정암에서 올라온 수십 명의 산객들이 있었다. 도착 시간은 14시30분. 휘운각부터 소요 시간은 55분이다(도상 기록은 2시간). 해냈다. 배낭을 풀고 물을 들이켜고 참외 한 개와 피스넛 초콜릿 한 개를 보충했다. 아, 지나온 공룡능선 구간이 아질하게 가물거린다. 통쾌할 따름이다. 10분간 휴식했다.
△제8코스. 14시40분- 대청을 향해 출발했다.
중청 구간의 기다란 결바위 능선을 오르자 중청이 바라보이면서 좌우측 수풀 지대에 들꽃들이 이름답다. 비바람 눈보라와 거센 곳이라 키가 자라지 못해 자연에 적응한 초목들이 바닥에 남작 엎드려 자라고 있다. 산객들이 간식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복작거리고 있는 중청 대피소를 지나 대청으로 향할 때는 가끔 햇볕이 따가웠다. 대청을 오르는 주변의 낮은 키의 주목과 들꽃 지대는 하늘 아래 꽃들의 향연이다. 대청봉이다. 두 주먹을 높이 들어 ‘파이팅’을 외쳤다. 도착시간은 15시20분이다. 소청에서부터 33분이다. 대청봉 입석 옆에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소청에서부터 뒤따라온 여성 산객 3명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자기들은 부평 계양구에서 봉정암에 불자 수행을 왔다고. 지나온 길을 말하자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동쪽에는 속초와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남쪽의 점봉산과 서쪽의 끝청, 그리고 북서쪽의 백담사 방향과 북쪽의 공룡능선과 저항령과 미시령 구간 등 천지 사방을 호령하고 우뚝 선 대청의 위용과 기상은 한국 산객들의 희망이요 메카로 불릴 만하다. 10분간 휴식을 마치고 오색으로 향했다. 마지막 구간이다.
△제9코스. 14시30분- 오색을 향해 출발했다. 오색방향 동편의 비탈 초목 지대는 들꽃의 축제가 한창이다. 너무도 아름답다. 오색까지 하산길은 가파른 경사도와 돌계단 등으로 하산 시간이 도상기록 3시간 이다. 나는 1시간30분에 오색 매표소를 통과할 것이다. 이 구간은 체력이 소진된 뒤의 구간이라 비록 하산길이지만 자칫하면 하체와 무릎에 손상이 갈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필자는 가벼운 경보로 ‘하나 둘’을 나지막이 외치며 속도를 내 하산한다. 이 구간을 하산할 때는 스틱 한 개를 80㎝ 길이로 펴 오른손에 쥐고 균형을 잡으며 내려간다. 걸려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하산로와 인공 나무 계단과 돌계단 지역을 차례로 통과해 제2쉼터와 제1쉼터를 지나는 데만 1시간이 소요된다. 오색에서 대청 구간을 오르는 데도 일반 산객이 4시간 여를 올라야 한다. 필자는 논스톱으로 2시간5분에 오른다. 심폐기능과 하체력의 경주다. 제2쉼터를 못 미쳐 울창한 수 백 년 송 군락지 구간이 나온다. 잠시 발길을 멈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다섯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커다란 암반위에 서로의 뿌리를 부둥켜안고 지탱하며 자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표토층이 씻겨 나갔겠지만 모진 풍파와 비바람에 살아남기 위해 귀도 눈도 없는 소나무 다섯 그루가 서로의 생명력을 지켜주고 있는 자연의 광경을 필자는 ‘상생(相生)의 원리’라고 명명하고 싶다.
필자의 호는 송암(松岩)이다. ‘천년의 세월을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의연하고 묵묵한 소나무와 바위처럼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따라 인간 세상에 널리 화합과 상생의 길을 가라’고 깊은 뜻의 소명과 숙제를 남겨주신 헌법재판소의 K 재판관님께 숙연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제1쉼터를 지나고도 30분여를 능선과 계곡을 따라 하산했다. 우렁찬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딛는 발걸음이 이젠 무거워진다. 산행을 계획하고 가슴 설레며 차를 달려왔던 어젯밤의 일이 어느새 지나간 춘몽임을 새삼 느껴본다. 남은 것은 목표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건재하다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드디어 오색매표소를 통과했다. 16시55분. 06시43분에 용대리 백담매표소를 통과했으니 10시간12분에 주파한 것이다. 이 구간의 도상 산행기록은 30㎞에 18시간30분으로 기록돼 있다. 보행기록은 5만2800보다. 사진 찍고 휴식한 시간이 1시간 10분이니 9시간에 5만2800보 29㎞를 주파한 셈이다. 오색매표소를 통과해 채 1분도 지나기 전에 휴대폰을 켜자마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색매표소 내려왔어요?” 못 말리는 아내다. 산행 중에는 영적인 휴식을 위해 휴대폰을 끄고 다니라던 아내다.
오색 그린야드호텔의 탄산탕은 산행 후 근육과 관절의 피로를 풀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데 주효하다. 체중이 70㎏에서 66.5로 3.5㎏ 빠졌다. 작은 물병 10개 분량의 땀을 통해 수분과 탄수화물 및 콜레스테롤이 분해돼 배출 된 것이다. 한 시간가량 탕에서 피로를 풀고 차를 두고 온 오색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 가족이 “갈수록 건강이 좋아 지시네요”라며 환영한다. 표고찌개에 원기회복과 정신을 맑게 한다는 산더덕 구이를 맛깔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맛의 정일품이라 할 수 있는, 아내의 주문 1호인 된장 한 단지를 샀다. 식사 후 오후 7시에 오색을 출발해 흘러간 감미로운 명곡 팝송을 들으면서 시흥시의 집까지 3시간30분에 논스톱으로 경쾌하게 달려왔다. 몸이 날아 갈 듯 가볍다. 공룡능선의 천기(天氣)를 받았으니 나의 생활에 활력소가 넘치리라. 오늘도 나의 산행을 지켜주신 주님과 기도 해준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산행 코스
백담사매표소(06:43)~백담사(07:44)~영시암삼거리(08:40)~오세암(09:25)~마등령(10:20)~1275봉(11:30)~신선봉(12:43)~휘운각(13:10)~소청봉(14:30)~대청봉(15:20)~오색매표소(16:55), 소요시간 총 10시간12분(도상 기록은 18시간30분)

〈허성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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