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의 흔적

[#사진1]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서쪽 끝 휴양도시인 반다아체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 인구 60만 명 이상이 죽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UN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복구에 신경을 썼다. 국제기아대책, 팀앤팀, 빗물연구센터의 물 전문가들은 현재 이 지역의 물 문제를 살펴보고, 어떠한 방법으로 이들을 도울지 생각하기 위해 지난 12~16일 4일간 반다아체에 다녀왔다.

휴양도시 반다아체

반다아체는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4시간, 수마트라 섬의 주도인 메단에서는 비행기로 1시간 걸리는 지역으로 인도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유명한 휴양도시다. 메단의 연평균 강우량은 연간 2263㎜로 우리나라 (1283㎜)의 두 배에 가까우며, 연중 거의 고르게 분포한다. 아주 심각한 건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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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반다아체에는 곳곳에 피해를 입은 집들의 잔해가 남아 있으며, 전 세계의 구호단체에서 집을 지어주고 있다. 많은 부분이 이미 완공돼 있거나 짓고 있지만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기존의 사람들이 살기에는 좀 고급스러운 집들처럼 보인다. 한편 현지인들은 움막 같은 것을 짓고 거기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들에게 새로 지은 집을 주더라도 살기가 힘이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난 사람 중의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나중에 하늘에서 다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이유인지 모르겠다.

심각한 물 문제

아마도 복구지원팀에서는 상수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인 상수도 시스템이란 것은 댐을 만들고 정수처리장을 만들고, 관로를 깔아서 집집마다 연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게 든다. 또 매우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며, 자재와 약품도 많이 들어 개발도상국에서는 인력과 자재의 조달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진3] 그래서인지 현재의 구호는 지역 전체의 상하수도 인프라 보급보다는 개별적인 집의 신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학교를 만들어 주긴 하지만 정작 필요한 물 공급에 대한 대안이 없다. 따라서 옛날과 같이 얕은 우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부분 이전에 쓰나미가 덮쳐 염도가 높고 냄새가 난다.

일부 시설에서는 해수담수화 시설이나 지하수를 개발해 공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넓은 지역을 단시일 내에 관으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못 사는 사람이 사는 변두리 지역 같은 곳에서는 물 공급의 우선 순위가 상대적으로 밀려 ‘풍요 속의 빈곤’이 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 새로운 원조의 혜택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골의 어느 집

[#사진4]시골의 어느 집을 방문해 물 사정에 대해 물어봤다. 낮이라 그런지 아기와 젊은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있었다. 이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은 계량기가 달리지 않은 시 상수도, 지붕에서 빗물을 모으는 통에는 비가 안 올 때는 해수담수화물을 배달을 받아서 같이 쓰고 있다. 집 주변에 염도가 높고 냄새 나는 얕은 우물이 있다. 가장 예민한 아기가 마시거나 씻는 물은 빗물과 해수담수화물을 받은 통에서 이용한다.

시 수돗물은 40ℓ 통에 담아 화장실에 놓고 쓴다. 세탁 등은 얕은 우물물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물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이 전체 가구 소득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물 공급이 안 되는 지역에 살면서 가장 물 값을 많이 내고 있는 것이다.[#사진5]

과연 이와 같은 방법은 지속가능한 방법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재해 직후 전 세계에서 엄청난 물질적·자금적 원조를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당장 먹을 물을 해결해주지 못한 것을 보고 UN 등의 기구에서 우선순위를 잘못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훌륭한 주택이나 거기에 들어가는 가구 등이 아니고, 당장 필요한 한 모금의 맑고 깨끗한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물이다. 이들에게는 이 물은 바로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물 공급의 대안들

[#사진6]이후에 또 다른 쓰나미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어떤 방법으로 도와줘야 할 것인가. 이들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시고 씻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다. 이 물을 값싸고 안전하게 공급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장에 설치된 여러 대안들을 검토해 보고 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의 상수도 라인
일부나마 설치돼 있던 상수관로는 지진 때문에 망가져서 계속적인 공급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을 정해 제한급수를 하고 있으나 누수가 되는 곳으로 땅 위의 지저분한 물이 새어 들어와서 그런지 수질이 나쁘다. 시 수도를 얕은 지하의 통에 받아서 사용한다. 계량기가 설치되지 않아 매달 일정량의 수도요금을 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해수담수화 시설
재해 직후 쿠웨이트에서는 해변에 해수담수화 시설을 무상으로 지어주고 담수를 공장에서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운반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에서 이 물을 사용하려면 운반업체에 돈을 내야 한다. 물값은 공짜인데 운반비만 내는 셈이다. 아마도 원조가 끝난 다음에는 유지관리비를 부담해야 할 것이다.

얕은 우물
쓰나미 재해 이전에는 수도가 공급 안 된 지역의 주민들은 집 주위의 작은 우물에 의존해 음용·세탁 등의 용도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쓰나미 이후 바닷물이 덮치고 오물들이 쌓여 있던 곳이라 모든 우물이 염도가 높아지고 냄새가 나는 등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피부병이 걸리거나 세탁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집에서 버린 하수가 집 주위에 고여 있기 때문에 우물의 오염은 심각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깊은 우물(지하수 개발)
해수와 지표의 오물에 노출되지 않은 방법이 지하수의 개발이다. 깊이 100~200m 정도의 지하에 지하수가 있으면 그것을 퍼 올려 비교적 여러 사람에게 물을 나눠줄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한 번 지하수를 파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며, 퍼낸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기 위해서는 배관비용이 필요한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한 기계나 동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약 펌프 등 기계가 고장 나면 현지 인력으로는 고치기 어려워서 그대로 못쓰게 되고 만다.

빗물 모으기
다른 대안으로는 빗물 모으기가 있으나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지역에서는 과거에 얕은 우물로도 좋은 물을 충분히 얻을 수가 있어서 섬 지방 외에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 국제적인 원조시설은 집중형이고 대형의 시설만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빗물시설과 같은 값이 싸고 소규모의 시설은 대안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

물문제 대안=빗물 모으기

[#사진7]재앙이 닥친 지역에서 물 문제를 지속가능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한꺼번에 대형 시설이 들어가지 않고 비용이나 기술적 의존 없이 시설비나 유지관리비가 적게 들고 지역주민 스스로 물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돼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빗물 모으기는 훌륭한 대안이다.

빗물은 그 자체가 아주 깨끗하고 순수한 물이기 때문에 지붕면만 잘 관리한다면 처리하는 데 별도의 약품이나 동력을 들이지 않고도, 또한 운반의 비용들이지 않고도 깨끗한 물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법인 것이다.

반다아체에 있는 UNICEF 사무실을 방문해 빗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현지 기술자를 포함한 담당자들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빗물 모으기라는 것을 알고 새로 짓는 340개의 학교에 이를 반영하고자 계획 중이란다. 그런데 애당초 선진국의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이 없다고 한다.

[#사진8]같이 갔던 팀앤팀의 이용주 대표가 협의를 해 UNICEF와 한국의 기관이 각각 5만 달러씩 확보해 먼저 시범적으로 30~40개 학교에 설치하도록 하는 데 합의를 봤다. 한국의 빗물 모으기 전문가와 건축전문가가 이에 대한 설계를 하기로 했다.

한 한국청년의 빗물 모으기

이미 한국의 KOICA와 기아대책 같은 NGO에서는 11개소의 빈민가옥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빗물 모으기 시범사업을 해 그 효용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임성묵이라는 청년은 한국개발협력단(KOICA)에서 6개월 기한으로 파견됐다.

쓰나미로 남편을 잃고 다섯 아이와 함께 강 옆의 제방 위에 판잣집을 만들어 어렵게 살아가는 부인의 집에 1톤짜리 플라스틱 저장조를 이용해 빗물이용시스템을 설치해줬다. 약 16㎡의 함석으로 엮은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서 음용과 주방용으로, 또한 갓난아이의 목욕물로 사용하니 애들이 병도 안 걸리고 아주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초벌빨래는 냄새 나는 우물물로 한 다음 빗물로 헹군다고 한다. 이전에는 소득의 약 30%를 물 사먹는 데 사용했는데 그 돈을 절약하고도 좋은 환경에서 살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때 들어간 자재비용은 한국 돈으로 약 30만원.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이나 기술은 없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붕만 있다면 평생 자손대대로 큰 비용 없이 물을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선물해 준 것이다. 이 부인은 한국 사람을 볼 때마다 손을 꼭 잡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가 외국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빗물을 이용해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보는 사람 모두가 가슴 뿌듯해했다.

[#사진9]이것은 다른 유엔기관에서 해온 것과 같이 당장 표시 나는 큰 시설을 해주고 유지관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떠나는 원조와는 매우 다르다. 현지의 사정에 맞는 기술을 아주 작은 비용으로 만들어 주고, 현지인들이 직접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이 방법이야말로 지속가능하게, 현지 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지주민들과 더욱 밀착해 현지인들의 참여하에 자재와 기술을 제공하면서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위선양에 큰 몫을 할 것이다.

앞으로도 KOICA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원해주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세계인의 안목을 심어주는 일을 하도록 하는 쪽으로의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NGO캠프의 시범사업

팀앤팀과 기아대책 등의 NGO가 캠프로 하고 있는 이층집의 지붕면적은 약 80㎡.

[#사진10]양쪽 면으로 물이 떨어지도록 홈통이 만들어져 있다. 빗물 모으기를 홍보하기 위해 이 캠프에 설치하면 아주 홍보효과가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같은 팀원 중에서도 빗물 모으기의 효과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집에 시범사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빗물시설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유엔의 기관이나 의사결정자에게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설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1년 강우량은 약 2300㎜라고 하니 빗물의 양은 충분하다(우리나라는 1300㎜ 정도) 문제는 비용과 시간·인력이었다.

일행 중에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Love House 의 김원철 건축가와 함께 설계와 기획을 했다. 건물의 지붕과 배관, 그리고 미적인 감각은 김 건축가, 그리고 빗물이용시스템의 설계와 자재 구매 등은 한무영 교수가 담당했다. 다른 곳에 적용할 것을 생각해 이때 들어간 비용과 걸린 시간도 모니터링 하도록 했다.

빗물저장조는 지하수공사를 할 때 쓰던 플라스틱 1톤짜리 저장조를 이용하기로 했다. 빗물필터는 한국에서 가져간 것을 이용했다. 공사하기 전날 시장에 가서 홈통배관과 배관용 부속품, 수도꼭지, 기둥에 붙이는 클램프 등을 사왔다. 이때 든 비용은 1만5000원이고, 시장 다녀오는 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

그 다음날 오전 7시부터 직원 두 명이 김 건축가의 감독 하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오래 놔뒀던 물통을 비누와 솔로 닦는데 1시간, 탱크의 밑에 받침을 괴고, 세우고 연결하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비 오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지붕 위에 수도꼭지를 연결해 지붕에서 받은 물이 저장조에 모이고, 수도꼭지에 있는 물을 받아서 쓰는 장면까지도 연출하고 기념사진 찍는 것까지 포함해 전체 걸린 시간은 3시간이었다.

앞으로의 할 일은 빗물의 수량과 수질을 모니터링해 앞으로의 확산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현지주민들의 비용과 기술수준에 맞은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주어 그것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앞으로 이 건물에서는 비가 오면 땅에 떨어져서 질퍽거릴 빗물이 이 저장조에 담겨서 아주 훌륭한 수자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력이 필요하지도 않고 약품도 필요하지 않으니, 건물이 지붕이 남아 있는 한 공짜로 훌륭한 수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방법이고 이 지역주민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소중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빗물은 생명

이번 방문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이 지역에서 빗물은 생명과 같다. 이것을 보고 현재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빗물 모으기 운동에 대한 더욱 많은 확신을 가지게 됐다. 빗물은 처리나 운반에 드는 비용이 들지 않고 재해나 재앙이 닥치더라도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게 물을 공급할 수 있다.

UN등 선진국에서는 아직도 빗물 모으기가 이 지역에서 가장 적합한 물 공급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들의 대형 집중형 방법만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다른 모든 방법이 지속가능한 해결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빗물 모으기 방법을 도입하기로 계획을 바꾼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해외에 원조할 때가 됐다. 이때는 빗물 모으기와 같이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기술을 공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생명과도 같은 물을 값싸게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국위선양에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국제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개도국에서의 봉사활동에 의한 경험과 안목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2007년 1월부터 매년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학생 10여 명씩 반다아체와 같은 지역에 보내 전공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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