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 "존재하지 않는 내 아이"

2013-11-10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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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국회에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사진= 김택수 기자>


[환경일보] 김택수 기자= 최근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아동의 절반이 무국적 상태에 놓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인 출생등록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 난민아동과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일반 이주민에 비교하면 삶의 질이 현저히 낮고 상당수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사무총장 김미셸)은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민주당 박영선, 김기식, 진선미 의원 후원으로 진행된 컨퍼런스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해 무국적 현황을 짚어보고 법무부 관계자와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출생등록, 인간 존재의 권리

 

‘출생등록’은 한 인간의 출생과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공식적인 기록이자 의료나 교육 등 아동이 누려야 할 사회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중요한 권리이다. 그러나 세이브더칠드런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아동 등 출생등록에 배제된 아이들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이들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매우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출생등록을 못하는 아이들의 수가 얼마인지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이브더칠드런 김미셸 사무총장은 “행정안전부와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에 체류 외국인은 약 140만명을 넘었고 미등록 체류자를 포함하면 약 2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출신과 배경 때문에 공적인 출생증명조차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한 국내법 제도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장명숙 상임위원도 “2011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게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부모의 법적지위나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 출생은 생물학적부모가 정확히 명시되도록 보장하라는 내용이다”며 컨퍼런스의 취지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제사회, 한국에 개선 촉구해

 

이어 장 상임위원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외국인은 해당국 대사관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고 밝힌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며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2012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2년 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등 유엔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출생등록 제도 미비 및 개선방안 마련을 지적한 것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부모 양측이나 부 또는 모가 한국인인 경우에만 출생신고를 인정하며 부모가 모두 외국인일 경우에는 자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자국에서의 박해로 한국에 정착한 난민의 경우 신분노출에 대한 우려로 대사관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류 자격이 불안정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역시 본국으로 귀국을 종용하거나 까다로운 서류나 높은 수수료 등을 요구해 출생등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난민기구 본부 마크 맨리(Mark Manly)무국적부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출생등록은 무국적 예방에 기여하지만 등록국의 국적 부여 의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이주 상황에 놓인 아동이 속인주의에 따라 부모의 국적을 취득하고,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출생등록이 필수다”고 주장했다.

 

출생등록은 국적부여와 별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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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본부 마크 맨리(Mark Manly)무국적부장

<사진= 김택수 기자>

 

마크 무국적부장은 “출생등록에 대한 권리와 국적 취득의 권리는 별개이다. 출생등록문서는 국적 취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특히 속인주의 채택국에서는 부모와의 관계를 입증해야 하며, 속지주의 채택국에서는 출생지 입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UN인권이사회 결의안을 제시하며 “출생등록 부재는 무국적 및 법적 미보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적 또는 출생등록이 없는 사람 중 여성과 아동은 특히 인신매매와 기타 학대 인권 침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마크 무국적부장은 무국적이 왜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되는가도 설명했다. 그는 “무국적의 경우 입국, 거주, 출국의 권리(여권), 정치권, 노동권, 교육, 문화 등 실제적 권리가 장해를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갑작스레 난민이 돼 국가간 긴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코트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고 말했다.

 

미등록 아동, 인권 침해 심각

 

이에 국내는 ‘보편적 출생등록’이라는 국제 기준을 고려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가족관계등록제에 기반은 둔 현행 제도는 외국국적 아동을 기본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드니대학교 김철효 연구원은 “국내 통계에서 무국적자로 기록되는 사람들은 국적미확인자도 포함한다. 하지만 통계상 무국적자 분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국내법상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입법을 통해 이행하고, 인정을 위한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국내 통계에서 무국적자로 기록되는 인구 규모는 작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국적자는 기록상 국내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국가로 이주할 가능성도 적다.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무국적자의 국내법상 지위와 장기체류에 따른 처우에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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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에는 관련 전문가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의 참여 열의가 돋보였다 <사진= 김택수 기자>

<<출생등록 사례>>

 

베트남 출신 여성노동자 응웬(가명) 씨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아이의 아버지도 한국인이 아니고, 어차피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일하는 공장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결국 회사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당했다.

일하던 공장을 그만두고 출산을 하였으나 응웬 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몇 주 안에 다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비자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 오기 위해 빌린 돈을 아직 다 갚지 못했고, 베트남의 부모를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부모가 많이 놀라겠지만 응웬 씨는 아이만이라도 베트남에 보낼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아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대사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고아’인 것처럼 해서 보육원에 맡기기로 했다.

 

응웬 씨의 아이는 이제 한국에서 발견된 ‘고아’로서 보육원을 통해 한국 이름과 국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정작 친모인 응웬 씨는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수가 없다.

 

아이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강제추방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kts@h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