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사각지대 ‘살생물제’ 위험 노출

2016-09-05     박미경

▲최근 열린 20대 국회 환경부문 쟁점과 과제 심포지엄에서 환경독성보건학회 임종한 회장이 살생물제 대응방안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미경 기자>


 

[국회=환경일보] 박미경 기자 = 가습기살균제 사고 이후에도 독성물질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을 함유한 에어컨 향균필터, 중금속 검출 얼음정수기 등 사고가 연일 터지며 살생물제 관리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살균제, 살충제와 같은 살생물제(Biocide)는 질병 전파를 예방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가습기살균제와 같이 큰 인명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20대 국회 환경부문 쟁점을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환경부 이정섭 차관은 “현재 관리체계는 많은 살생물질이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OIT 필터와 같은 향균제품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등 사각지대가 있다”고 밝혔다.


살생물제 또한 농약이나 의약품 등과 같이 일반 공산품과 구별되는 철저한 관리 체계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관리제도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확보하고, 우리 사회 기저에 깔린 안전관리체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EU·미국, 엄격한 규제 적용

▲KEI 박정규 선임연구위원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지와 함께 정부의 무책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외국에서는 유통이 불가능한 가습기살균제가 한국에서만 유독 쉽게 허가되면서 우리나라가 테스트 마켓으로 전락했다는 공분을 사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화학물질을 사용한 살생물제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모든 살생물제 및 살생물제에 포함된 활성물질(유해생물체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은 사전에 허가 및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살생물제품 라벨에 ‘저위해 살균성 제품’, ‘비독성’, ‘무해’, ‘천연’, ‘환경 친화적인’ 이라는 표현이나 유사한 말을 사용금지 한다.
 
미국은 농업용(농약)과 비농업용(살생물제) 제품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관리하고 있다. 농약관리는 사람들이 농작물을 먹기 때문에 일반 화학물질 관리수준에 비해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살생물제는 약사법,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이하 화평법) 등 여러 주요 법에서 분산관리 하고 있다. 또한 살생물제품 홍보에 ‘친환경적인’ 단어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EI 박정규 선임연구위원은 “여러 기관에서 분산 관리하고, 관리 대상을 열거하는 방식의 현행 제도는 규제 틈새가 있다”며 “화평법상 살생물제는 소독제, 방충제, 방부제 등 3개 품목에 불과해 제한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어 법적 규제대상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제품이 출시되면 일정기간 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국민 안전 위한 ‘법적 조치’ 확보 시급
전문가들은 화평법에 살생물제 관리를 위한 추가 법적 내용을 보완해 개정하는 등 법의 틀이 기본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정규 선임연구위원은 “화평법에 이미 살생물제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에 화평법 강화를 통해 상생물제 관리를 한다면 법 제정에 따른 시간 및 비용이 절약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살생물제만을 규제하는 별도의 법 ‘살생물제관리법(가칭)’ 제정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혼재돼 있는 살생물제 관리를 하나의 체계로 관리함으로써 활성물질부터 제품까지 일관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독성보건학회 임종한 회장은 “1톤 미만의 유통량이 적은 화학물질이라도 독성이 강한 살생물제는 살생물제법 제정을 통해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이호중 환경보건정책관
일각에서는 새로운 별도 법 제정으로 인한 사회적 피로감 및 관련부처, 기업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켐토피아 박상희 대표는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는 비용을 기업이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아웃되는 것을 반발로 우려할 것이 아니라 순기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이호중 환경보건정책관은 “종합적 접근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인프라와 전문적인 조직체계가 만들어지고 더불어 기업문화가 같이 가면 관리체계가 빠르게 확립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외에도 화학물질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 보장과 환경보건 모니터링을 통한 안전사고 조기파악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glm26@h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