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택소노미 원전 포함‧‧‧ 업계‧시민 모두 “EU 대비 기준 턱없어”

EU 택소노미 따라 K 택소노미에 원전 포함했는데, 기준은 제멋대로
업계 “이대로면 원전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 시민 “원전이 왜 녹색?”

2022-10-07     김인성 기자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원전 경제활동 포함 공청회’에서 정의당, 녹색당, 탈핵시민행동 등 환경단체들이 원전의 K 택소노미 포함에 대한 반대 피켓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김인성 기자

[엘타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환경부는 6일 서울 양재동에 소재한 엘타워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 택소노미) 원전 경제활동 포함 공청회’를 첫 개시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원자력‧전문가‧시민 등 이해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K 택소노미의 고준위방폐장, 최적가용기술, 사고저항성 핵연료, 안전 대책 등의 조건 모두 EU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택소노미란 환경‧기후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활동 분야를 정하는 분류체계로 친환경 산업을 구분하는 국가 지침서다.

정부는 2021년 12월 K 택소노미를 발표 후, 지난달 돌연 원전을 포함시킨 수정한 초안을 재공개했다. EU 택소노미 최종(안)에 원전이 포함됨에 따라 국내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다.

이번 공청회에서 발제는 강재열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등이 진행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EU 택소노미와 상이한 K 택소노미의 ‘원전 기준’, “보완 必”

그러나 일부 전문가와 시민‧환경단체들은 납득이 안 간다는 반응이다.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 이유는 유럽의 ‘정치적 선택’의 일환이었으며, 이로 인해 개정된 내용 또한 원전이 포함되기 전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규제안이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전문위원은 “EU 집행위는 2021년 말 원전, 가스발전 포함 보완법안을 공표했으나, 논란이 된 과학적 검토의 한계를 명시했다”며 “또 사고저항성핵연료(ATF), 2050년 고준위 방폐장 확보 세부 계획, 최적가용기술 적용을 조건으로 제시된 건”이라고 전했다.

그는 EU 택소노미는 표면적으로 프랑스와 동유럽 7개국의 원전 포함안을 승인했으나, 내용적으로는 반대 그룹의 문제제기가 전제조건으로 반영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한국의 녹색분류체계는 필히 다뤄야 할 부분들도 무시되고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시민, 원자력 업계, 학계, 전문가 등 100여명의 이해관계자들이 공청회에 참석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김인성 기자

석 전문위원은 EU의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2025년까지 유예조항’에 대해서 이는 EU의 향후 모든 건설허가 원전에 대한 적용을 의미한다면 ‘K 택소노미의 ATF 적용 2031년까지 유예조항’은 현 정부의 신규 원전 및 노후원전 수명연장 모두를 면제해주는 효과만을 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러한 방식은 애초에 택소노미가 방지하려던 ‘그린워싱’의 전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짚었다.

‘환경’부인데 원전 관련 환경‧안전 조사를 타부서에 전가?

공청회에선 K 택소노미의 원전 포함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날 환경부는 K 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녹색(친환경)으로 분류할 시 검토할 ‘환경에 대한 영향’에 대한 조사와 안전 관리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환경을 담당하는 부처로서는 다소 무책임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한 시민이 “원전 가동 시 생기는 온배수로 인한 해양 생태계의 영향 조사를 해봤느냐”고 환경부에 질문하자, 환경부를 대표해서 나온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여러 상황상 아직 못했다”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더불어 원전 문제를 타 부서에 전적으로 관리와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도 지적받았다.

당초 예정됐던 2시간을 훌쩍 넘을 정도로 원자력, 시민 사회, 핵폐기물, 환경 단체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질의는 계속 이어졌다. /사진=김인성 기자

원전‧환경 관련 여러 관계자들은 환경부에게 “원전 주변 지역 및 환경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등 원전 안전에 대해서 환경부가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으나, 환경부는 “원전 안전은 원안위에서 담당하기에 우리가 개입하기는 한계가 존재한다”며 해당 부처가 원전을 녹색분류에 포함했음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 없이 방치하고 있음이 드러냈다.

방사성폐기물 등에 대해서 환경부 관계는 “산업부 등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며,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못한 방폐장 부지 선정도 못했는데, 37년간 어떻게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정책의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고만 응했다.

원전업계 “낮은 K 택소노미 원전 기준, 수출에도 악영향”

원전의 녹색분류에 찬성하는 학계나 업계 측에서도 K 택소노미에 대해 보완할 점이 많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윤종일 교수는 “K 택소노미와 EU 택소노미의 원자력 발전 인정기준 중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며 최근 국제 정세에 따른 유럽 원전 시장 확대 예상에 따라 EU 택소노미에 기반해 인정 기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한국수력원자력 및 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 역시 “EU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K 택소노미 원전 포함 조건은 결국 신뢰도 추락과 국내 기업들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충고했다.

환경부를 대변해서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김인성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전에 대한 국제적인 안전 규제가 높아져 가고 있는데, 이 상태면 미래 원자력 수출에 있어 경쟁자들이 K 택소노미의 낮은 기준을 빌미로 국내 원전의 경쟁력을 의도적으로 낮출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에 방류되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해서도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 나왔다.

일본이 해양에 방류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ALPS 처리수로 연간 22조 베크렐(Bq)을 밑도는 삼중수소를 지니고 있다. 삼중수소는 핵발전으로 생성되는 방사성 물질이다.

현재 우리나라 고리원전에서는 일본 ALPS 처리수보다 4배 높은 91조의 삼중수소를 방출 중이며, 일본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오염수 방류 정당화를 주장하고 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우리가 원전 경제활동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해서는 무엇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정책의 모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한 시민은 정부에 휘둘려 환경 정책을 바꾸지 말고, 최대 피해자인 미래 세대에 책임질 수 있는 탄소중립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쓰레기 만드는 탄소중립 방법, “미래 세대 누가 책임지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시민은 “이런 공청회에 참여할 수도 없는 아이들은 무슨 죄냐”며 “정책에 따라 환경부가 휘둘리는 것도 문제지만 미래 세대에 대해서는 윤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쓰레기를 ‘새롭게’ 만들지 않고 탄소중립을 할 방법을 강구해야지, 쓰레기를 만들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 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원전을 수출하려는 것이 아닌가. 올바른 방향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녹색당 및 탈핵시민행동, 정의당 등 환경단체에서도 원자력발전을 규탄하는 “기후위기는 핵으로 막을 수 없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핵발전을 제외하라”, “녹색분류체계 그린워싱 중단하라” 등의 피케팅을 실시했다.

한편, 한국원자력산업협회 강재열 상근부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원전 생태계 확대를 약속한 바가 있으니, 원전 활성화에 대한 대통령의 확실한 입장을 알려달라”고 환경부 관계자에 요청했으나, 환경부는 “그 건에 대해서는 공청회 끝나고 따로 답변을 주겠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환경부는 본 공청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K 택소노미에 대한 이해를 위해 내용을 전달하고, 전문가‧업계‧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