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는 곧 금융 위기”
기후 리스크 관리‧전략 부족한 은행‧보험업, 대응 시니리오‧모델링 개발 시급
[환경일보] 예상하지 못한 기상이변이 발생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전 세계에 엄습하고 있다. 폭우나 폭염, 산불 등 자연재해로 피해를 보는 국가가 속출하고 심지어 같은 나라인데도 지역별 다른 현상으로 고통받는 일이 빈번하다.
한국도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보험산업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기후위기와 보험산업, 이 둘은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을까.
스위스리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 손실은 1992년 500억 달러에서 2022년 1252억 달러(한화 약 166조2700억원)까지 약 2.5배 증가했다. 그로 인한 재보험료의 인상과 더욱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버티지 못하는 보험사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대 보험회사 스테이트팜(State Farm)은 기후변화 리스크 확대로 인해 주 전역 주택보험에 대한 신규 손해보험 인수 중단을 발표했다. 스테이트팜뿐만 아니라 미국 보험사 올스테이트, AIG, Chubb는 기후변화 리스크 확대와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한 손실액 증가로 주택보험의 신계약 체결을 중단했고 루이지애나주에서는 허리케인 피해로 12개 보험사는 결국 파산했다.
한국 보험업계도 기후위기를 피해 갈 수 없다. 2022년 국내 보험사가 자연재해로 지급한 보험금이 1조2559억원으로 2017년(3947억)에 비해 규모가 커졌다. 특히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재해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가입률이 상승하다 보니 풍수해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 지급액도 크게 증가했다. 이처럼 기상이변 현상이 빈번, 심각해질수록 피해 금액은 점차 늘어나고 재보험사를 비롯한 보험사들은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보험 기업들에 ‘기후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대비책의 필요성을 보여주며, 기후리스크 관리가 곧 보험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후리스크는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되는 물리적 피해나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는데 기상이변, 자연재해에 의해 실물자산이 손상되는 물리적리스크(physical risk)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저탄소 전환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의존 산업과 같이 탄소 집약적인 산업의 자산가치 하락,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 소비자 선호 변화 등과 같은 이행리스크(transition risk)로 나눌 수 있다.
기후리스크는 운영리스크, 신용리스크, 보험리스크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기후리스크에 노출된 기업과, 관련한 금융자산을 보유한 금융회사에도 상당한 손실을 유발할 수 있고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 즉, 기후변화가 언젠가는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보험업계에서는 앞으로 기후리스크 관리 부담이 더욱 가중되리라는 것을 전망한다. 이러한 피해가 보험료 인상, 보장한도 축소, 보험 가입 한도 제한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험의 소비자인 기업이나 가계까지 전가될 수 있기에 대비가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보험사들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모델링을 통해 자연재해 발생 가능성과 예상 피해 금액을 추정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급격한 속도를 반영하기에 과거 데이터만 이용해서는 한계가 있어 아직 많은 예측 모델이 기후 재난의 빈도와 심각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민간 보험 회사가 리스크 관리의 어려움으로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에 신규 가입을 거절하거나 철수할 경우, 정부가 그 부담을 떠맡게 된다.
리스크 모델링 기업 RMS의 책임자 마이클 스틸은 “보험업계가 기후 재난 지역에서 철수한다면 정부가 재난 복구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기후위기로 인해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보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은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사의 잠재적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하고 넷제로 보험연합(Net-Zero Insurance Aliiance, NZIA)을 결성해 상품과 서비스 개발, 자산운용 등의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공동 대응하기 했다.
한국 금융업계 기후리스크 관리 전략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대형보험사나 금융지주사에서 기후리스크를 관리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기는 하나 ‘물리리스크 관리’에 대한 측정과 평가는 미흡한 수준이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가 학계와 공동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리스크를 측정하는 관리모형을 개발했지만, 아직 보험 계약 인수나 보험료율 산정 등 실무 업무에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기후리스크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는 국내 은행·보험업계 대형사들과 공동작업반을 만들어 기후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 개발, 기후리스크 공시 확대 등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고, 이 작업반은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이행리스크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 기후 시나리오와 스트레스 테스트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이제 기후리스크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기후위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곧 기업의 경쟁력 혹은 국가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전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기후리스크 모델링과 기후 시나리오, 스트레스 테스트 개발 등의 노력을 통해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많은 연구가 실현됐으면 한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변지원 byeonjiwon5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