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화이버 업계 “이대로면 1년 뒤 문 닫아야죠”

PET·필름류 수입 금지 3년··· 거래처 잃고 수출 경쟁력 약화, 고사 위기 수입 PET 80%는 단섬유 원료, 가공 후 재수출 ‘순환자원 지정’ 필요

2024-01-03     박선영 기자
재생화이버생산공정. 자동차 내외장재의 50%, 침장류 20%, 의류 15%, 건축·토목·농업 제품을 만드는 재료의 15%가 재생화이버(Recycled Fiber, 단섬유)다. /자료제공=한국재생화이버협회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2022년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은 541억 달러였다. 타이어 코드, 에어백, 흡음재, 안전벨트, 휠가드, 쿠션재, 카펫은 대표적인 자동차 내외장재다. 타이어 고무 내부에 들어가는 섬유 재질 보강재인 타이어 코드는 내구성과 안정성을 높인다. 자동차 내외장재의 50%, 침장류 20%, 의류 15%, 건축·토목·농업 제품을 만드는 재료의 15%가 재생화이버(Recycled Fiber, 단섬유)다. 의자 소음 방지 부직포 원재료도 재생화이버다. 이처럼 쓰이지 않는 곳을 더 찾기 힘들 정도로 사용량이 많은 재생화이버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50여 곳이다.

전기자동차 생산이 늘고 소음, 난연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며 전 세계적으로 재생화이버 사용처가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 재생화이버 업체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8년 전후로 리사이클 붐이 일며 재생화이버 업체가 많이 생겼지만 지난해 몇 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업계 전체가 침체에 빠진 것은 아니다. 재생화이버 생산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 대다수 업체 관계자 의견이다. 다만, 원료 부족이 업계를 고사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생화이버(단섬유)는 페트(PET), 파사, 필름(Sheet), 폴리머벌크 등을 분쇄한 플레이크(flake)칩, 팝콘칩으로 제조된다. /사진제공=한국재생화이버협회

국내 재생화이버 업계는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해 왔다(연 33만톤, 346달러 규모). 재생화이버 생산 원료는 페트(PET), 파사, 필름(Sheet), 폴리머벌크 등이다. 원료를 분쇄해 플레이크(flake)칩, 팝콘칩으로 제조하고 이를 최종 제품인 화이버(단섬유)로 만든다.

환경부 수입 폐기물 품목 고시는 2020년 6월30일 이뤄졌다. PET는 PP, PE, PS 등과 함께 제2조 수입금지 품목(폐합성고분자화합물)으로 지정됐다. PET 수입 제한 이유는 ‘국내 폐기물 재활용 촉진’이었다. 이와 관련해 재생화이버 업계는 PET 수입으로 유통 단가가 떨어지면 회수가 줄어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수입금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 금지로 단가를 끌어올리고 회수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2020년 6월 수입 폐기물 품목 고시 후 재생화이버 업체들은 원료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기존 거래처를 잃고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 한국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PET(잡색) 압축품 가격이 2020년 233원/kg에서 2023년 8월 기준 515원/kg까지 올랐다. 현재 국내 재생화이버 업계 가동률은 80% 수준이다.

수입을 금지한 환경부 입장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기업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듣기 힘들다. 본지는 전국 50개 재생화이버 업체 중 생존 위기를 토로하는 몇 곳을 찾아 재생화이버 원재료 수입금지로 발생한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짚었다.

환경부, 폐기물 대란 막기 위해 수입 금지

환경부 수입 폐기물 품목 고시를 보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 제19조와 같은 법 시행령 제18조 제3항에 따라 국내 발생 폐기물의 적정한 관리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해 수입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폐기물을 환경부장관이 규정하고 있다.

재생화이버 원료 수입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재생화이버 업계는 PET를 폐기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수입된 PET 80% 이상이 재생화이버 원료로 쓰이고 이 중 거의 전량이 재수출된다. 페트병을 분쇄해 나온 플레이크는 무색과 블랙을 포함한 유색이 있다. 무색은 백색화이버를 만든다. 침대 메트리스 충전재, 침구류, 카펫 소재, 의류용 충전재, 신발 깔창, 산업·농업용 부직포, 전기 제품 필터에 사용된다. 맥주병, 사이다병, 화장품병, 샴푸병은 블랙이나 유색화이버로 분류한다. 블랙화이버는 엔진커버, 라이트커버, 자동차 내장재로 쓰인다.

최종 생산된 재생화이버를 들고 있는 프린스 조화라 부장 /사진=박선영 기자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프린스 조화라 총괄부장은 “월 1500톤 정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가동률이 70%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수입금지로 발생한 원재료 부족이 원인”이라고 했다. 자동차 내장재에 필요한 재생화이버를 주로 생산하는 프린스의 월 생산량은 900~1000톤가량이다. 조 부장은 “코로나19 시기에도 국내 판로를 만들어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지만 2021년부터는 원료 공급 한계로 주문을 조절해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 부장은 “현재 수입 제한 초기보다 원재료 가격이 2배 이상 올랐고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내에서 만든 원재료와 수입원재료 가격이 70원에서 많게는 100원 이상 차이가 난다. 주문을 받지 못하니 기존 거래처도 없어졌고 이 자리를 동남아시아 재생화이버 제품이 대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간 60만톤 재활용 플라스틱 처리 여력도 사라질 것”

조화라 프린스 부장은 "재생화이버 업체가 사라지면 수출시장도 없어져 재생화이버 업계가 맡고 있던 연간 60만톤 이상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처리할 여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조 부장은 이어 “재생화이버 업계가 경쟁력을 잃어버린 근본 원인인 원료 수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4년에도 몇 개 업체가 문을 닫을 것이고 재생화이버 업체가 사라지면 수출시장도 없어져 재생화이버 업계가 맡고 있던 연간 60만톤 이상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처리할 여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연간 60만톤의 재생화이버를 생산하려면 약 24만톤의 플레이크칩, 36만톤의 일반 PET칩(팝콘, 펠렛, 파쇄품)이 필요하다. 연 6만톤 정도 PET 원료를 매월 입찰을 통해 재생화이버 업계에 공급하던 D사 물량이 2023년 4월 전량 유통·무역업체에 고가로 낙찰되며 연 3만톤 정도의 원료가 부족해졌다.

현재 플레이크 칩은 식품 용기로 전환되고 Sheet로 수출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17.6만톤 이하로 줄어 6.5만톤이 부족하지만 단가가 높아 수입을 거의 안하고 있다. 일반 PET칩은 수입금지로 8.5만 톤이 부족하다.

사라진 거래처 찾기 위한 최소 기간 필요

환경부는 재생화이버 업계 전체가 나서 위기를 호소하자 2022년 9월19일부터 9개월간 원료 수입을 재개했다. 하지만 9개월은 끊어졌던 거래처를 다시 만들기 위한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정수환 대마 실장은 “최소한 상품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 양만큼이라도 수입이 되도록 환경부 조율이 필요하지만 폐비닐이나 다른 플라스틱류와 같이 일괄로 묶여 수입이 금지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정수환 ㈜대마 실장은 “문제는 수입금지 기간에 바이어와 거래처를 잃었다는 것”이라며 “수입 전면 재개가 아닌 연장을 해야 한다면 다시 거래처를 만들고 생산과 판매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 이상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북 구미시 장천면에 위치한 대마의 주력 제품은 콘주게이트(Conjugate)다. 원료 성질이 다른 둘 이상의 실을 한 구멍으로 동시에 섞어 뽑아내 만든다. 높은 수축률로 침장, 자동차 내장재에 많이 사용되며, 솜, 베게, 패딩 속에도 들어간다. 국내에서 콘주게이트 생산 설비는 대마를 포함해 4개 업체만 갖추고 있다. 대마의 월 가능 생산량은 1000톤이다. 현재는 500~600톤 정도만 생산하고 있다.

정 실장은 “콘주게이트를 생산하는 핵심 설비와 건조·냉각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원료 부족으로 생산을 못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수출국가에 이미 동남아시아 제품이 진출해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판매도 쉽지 않다. 현재 수입금지 품목으로 지정된 필름류 재료가 공급이 안돼 제품을 생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 실장은 “원재료 수입금지가 이어지며 재생화이버 산업이 사양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입금지 이후 2021년 설립된 한국재생화이버협회에서 업체 의견을 모아 환경부에 절박함을 전달한 끝에 9개월 수입개방을 하게 됐지만 이는 수입금지 전 거래처 복원만으로도 짧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상품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 양만큼이라도 수입이 되도록 환경부 조율이 필요하지만 폐비닐이나 다른 플라스틱류와 같이 일괄로 묶여 수입이 금지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재생화이버 수입 원료는 폐기물아닌 재수출 중간재

2019년 중국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을 때 수거되지 않은 페트병을 처리한 것이 재생화이버 업체들이었다. 하지만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수입금지 해제를 하지 않아 생존위기에 처하게 됐다. 재생화이버 업계는 환경부가 역할을 해야 할 시기지만 원료 수입 재개 시 쓰레기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업계 고사를 방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경택 ㈜건백 대표는 “재생화이버 원료 수입 재개가 쓰레기를 수입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있지만 재생화이버 업계는 지난 몇십 년간 땅에 묻히거나 소각될 폐기물의 부가가치를 올려 재수출을 해왔다”며 “제품이 되는 원료를 일괄 폐기물로 볼 것이 아니라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페트병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동안 사용된 페트병은 소각이나 땅에 묻히는 대신 재생화이버 원료로 재활용돼 제품으로 만들어져 수출됐다. 생산공정에서 나온 부산물도 재활용됐다. PET 섬유류, 필름류 수입량의 66%(상위 10개 기업은 96%)는 재생화이버나 필름 등으로 제조된 후 다시 수출되고 있다.

조승형 한국재생화이버협회 회장은 최근 개최된 협회 임시 총회에서  “환경부는 수입 폐기물 품목 고시 기준만을 반복해 말할 것이 아니라 당장 1년 내 생존을 고민하는 업계 상황에 맞는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조승형 한국재생화이버협회 회장은 제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우려에 대해서는 “협회와 업체에서 보완 중에 있다. 중진공(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도 업종 자체는 친환경군으로 분류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사용 전력을 최대한 줄이고 시대 흐름에 맞게 각종 장치들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생산 재생화이버 제품이 유럽과 미국 내 수출 비중이 높았던 것은 GRS(Global Recycled Standard)나 오코텍스(OEKO-TEX) 인증 등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재생화이버 제품을 유럽이나 미국에 수출하려면 GRS, 오코텍스 인증이 필요하다. GRS는 재생원료 함량, 환경적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부여된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모든 섬유 제품은 오코텍스 품질 인증을 거쳐야 한다. 단지 제품이 우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친환경 인증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대기업 열분해유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폐플라스틱 소각 시 필연적으로 탄소가 많이 배출돼 폐플라스틱 전체가 순환자원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2020년 기준 0.9%에 불과했던 열분해율을 2026년까지 10%로 늘릴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제의 주무 부처는 환경부다. 지난해 재생화이버협회는 10여 차례 환경부를 방문했다.

한국재생화이버협회와 환경부 간담회 모습 /사진제공=한국재생화이버협회

협회는 열분해와 시멘트 공장 소성로의 폐합성수지 연소와 관련 없는 재생화이버 원료까지 순환자원 목록에서 빠지게 된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고, PET 수입 연장과 순환자원 지정을 위해 환경부가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

조승형 협회장은 “업체의견을 모아 10번을 방문해도 환경부 수입 폐기물 품목 고시 기준만을 반복해 말할 것이 아니라 당장 1년 내 생존을 고민하는 업계 상황에 맞는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