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날 특집] 신형철 극지연구소장 인터뷰
“기후변화 원인·과정 복잡하지만, 기후위기 심각성은 달라지지 않아”
무너지고 사라지는 극지방 빙권 “생태계 적응보다 기후변화 속도가 훨씬 더 빨라” 쪼그라드는 해빙, 지구 열에너지 증가로 지구온난화 가속 “지구의 마지막 황무지에 인간 발자국 깊이 새겨지지 않기를”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1만240km, 1만2728km, 6450km. 남극 세종 과학기지,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북극 다산 과학기지가 각각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극지연구소와 떨어진 거리다.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8900km(직항 14시간 소요)인 것을 감안하면 극지방이 얼마나 먼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인터뷰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온실기체를 배출하는 과정은 제각각이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기후위기 앞에서는 전 지구가 예외 없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는 3곳의 과학기지를 운영하며 여러 과제를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가 극지방에 미치는 영향 분석은 그중 하나다. 극지연구소는 최근 남극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 얼음벽(빙붕, ice shelf) 붕괴 원인과 과정을 규명했다.
신 소장은 남극 얼음벽 붕괴를 ‘무너져내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얼음벽이 따뜻한 바닷물로 바닥부터 녹고, 뒤에 버티고 있던 얼음벽이 연쇄적으로 미끄러져 내리며 바닷속으로 계속 사라지는 모습을 이르는 것이다. 극지연구소는 이 과정과 결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밝혔다.
녹아내린 남극 빙상은 해수면 상승, 해안 침식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해수 온도 상승을 불러오고 따뜻해진 바닷물이 얼음벽을 다시 허무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북극 해빙이 녹으면 햇빛에너지가 바닷 속으로 들어가 지구 열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북극 에어커튼에 갇혀있던 냉기가 북극이 따뜻해지며 북극 밖으로 흘러나오면 한반도가 포함된 중위도에 폭설과 혹한으로 영향을 미친다.
“극지연구를 수행하며 지구의 마지막 황무지에 인간 발자국이 너무 깊이 새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을 지구의 날을 앞둔 4월12일 극지연구소 집무실에서 만났다.
전 세계 기후체계를 바꾸는 극지환경 변화
Q. 전 지구적인 기후재난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인 극지환경 변화가 국가와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극지환경 변화는 전세계 기후체계를 바꾼다. 남극 빙상이 모두 녹으면 현재보다 해수면이 60미터 넘게 상승할 것이다. 전 세계 인구 상당수는 해안선 가까이 살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하나는 날씨 패턴 변화다. 눈이 다져져 만들어진 얼음이 대륙을 덮고 있는(빙상) 남극과 달리 북극해의 상당한 면적은 얼어붙은 바다가 차지하고 있다. 해빙이 녹으면 햇빛에너지가 바닷 속으로 그대로 들어와 지구 열에너지를 증가시킨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지구온난화가 가속된다. 북극이 따뜻해지면 북극 에어커튼에 갇혀있던 냉기가 밖으로 흘러나와 중위도에 폭설과 혹한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지연구소는 이러한 변화를 10년 이상 살피며 이것이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극지연구소의 역할이기도 하다. 과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 문명과 지구환경을 바꾸는 변화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것을 설명해 내는 것 역시 극지연구소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연구이다.
Q. 기후변화로 생물다양성 감소가 빠르게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극지 미생물 연구과제와 극지 미생물이 가지는 가치라면
기후변화가 생물이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는 먹이그물 바닥부터 정점까지 생태계 전부를 일컫는다. 미생물도 당연히 영향을 받지만 고래나 곰, 펭귄 같은 큰 생물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극지방 생물들은 추위와 얼음에 적응된 상태다. 극지방이 따뜻해지고 얼음이 녹으면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야 한다. 이로 인해 거처를 이동해야 하거나, 번식활동이 교란되고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속도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보다 기후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추위와 얼음에 적응해 살던 동물들도 추위로 과거에는 못 들어가던 곳으로 이동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크릴의 경우 전체 생애주기를 완성하는데 해빙이 굉장히 중요하다. 겨울이 돼 먹이가 희박해지면 바다얼음 밑에 식물들이 생육하고 이곳에서 크릴은 겨울을 난다. 얼음 밑이라면 천적을 피할 수도 있다. 얼음이 없어져 먹을 것도 숨을 곳도 사라진 환경에서는 크릴 생존이 쉽지 않다. 크릴 개체군이 감소하면 크릴을 먹고 사는 펭귄이나 고래, 물개같은 생물도 번식과 생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동토나 얼음에 갇혀있던 미생물은 온난화로 얼음이 사라지면 밖으로 나오기 좋은 환경이 된다. 러시아의 경우 동토층 밑 탄저균이 나오면서 짐승을 죽이고 사람도 감염된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는 인류와 생태계에 새로운 도전이다. 극지연구소 역시 빙하에 숨겨져 있던 미생물이 밖으로 나오게 될 경우에 대한 연구를 북극과 남극에서 하고 있다.
다만, 북극이나 남극 미생물들이 신진대사를 유지하려면 효소나 생물유기화합물질이 저온환경에 맞춰 생산된다. 이런 특질을 저온에서 잘 작동하는 효소나 찬물에서도 잘 빨리는 의류세제 등 산업에 적용할 여지도 있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해수면 상승
인간 상상 뛰어넘는 실질적 위협으로
Q. 지구온난화로 녹은 빙하가 해수면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해수면 상승 예측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된 극지연구소 과제라면
빙하가 녹아 촉발된 세계 평균 해수면 상승은 3.6cm다. 인천의 경우 4cm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모든 예측에는 오차범위가 있다. 이 오차범위를 더 줄여서 최대한 정확한 예측을 해내는 것이 극지연구의 중요한 목표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 더 정확한 값을 가질수록 대책을 세우는데 낭비가 없다. 해수면 상승을 포함한 미래 예측값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예산낭비를 막는 효과가 있다.
Q. 극지연구소는 북극의 이상 고온 현상이 중위도 지역의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불러온 원인인 것을 밝혀냈다. 이에 대한 설명과 이후 북극 고온 현상과 기상 현상 간 추가로 밝혀진 연구가 있다면
극지연구소가 2014년 논문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북극 온난화가 중위도 한파에 원인이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규명한 선도적인 연구다. 그뒤로 다른 연구도 이어졌다. 극지연구소는 이 연구성과를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밝혀낼 것이다.
북극이 따뜻해지면 냉기를 가둬두는 에어커튼이 약해질 수 있다. 어떤 이유든 따뜻한 기운이 북극으로 이동하면 북극 온난화가 가속될 수 있다. 최근 극지연구소는 논문을 통해 북극 온난화가 겨울철 한파의 절반에 가까운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이 논리는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북극 온난화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위도 지역 혹한이나 폭설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더 정교해지게 만드려면 우리나라 겨울 기후 예측에 북극의 자료와 현상을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극지방 자원 이용, 생태계 훼손 없도록 선제적 관리해야"
Q. 4월25일은 세계 펭귄의 날이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남극생태계 파괴로 먹이사슬이 사라지고 있다. 남극에 상주기지를 보유한 극지연구소의 극지방 생태 보존 역할이라면
남극에서 자원을 활용할 때 특히 생물자원에 대해서 사전예방원칙과 생태계적 접근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이다. 자원 고갈과 붕괴를 막을 뿐 아니라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숙제이다. 자원 이용이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훼손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자원 이용을 삼가야 한다. 이를 사전예방주의원칙이라고 한다. 선제적으로 조심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극지환경 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할 가치다.
또 하나는 생태계 접근이 있다. 명태를 남획하는 것은 식량자원으로 명태가 사라진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명태를 먹이로 하는 생물, 명태가 먹고 사는 종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극지해역 생태계 보전을 위해 취해야 할 입장이다. 과거에는 경제적 수익에 비해 생태계 보전에 대한 고려를 훨씬 덜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대한민국도 보전이라는 국제사회의 대의명분을 수용하고 그 가치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과거 관심이 덜했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과 순환, 수거 시스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극지방에 플라스틱이 전달되는 경로는 바닷물과 바람 등 다양하다. 극지방에 한번 유입된 플라스틱은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고 축적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극지 생물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이 위험에 대해 더 많은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해빙 속에서도 심지어 펭귄의나 분변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생태계 교란도 실질적인 위협이다. 극지방에 원래 살지 않던 종이 사람 활동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극지연구소는 원래 그곳에 있지 않았던 미생물이나 생물이 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북반구 기원의 각다귀가 남극에서 발견되고 있다. 과학기지를 포함한 인간 활동인지 극지 관광이 매개가 되었는지 혹 다른 원인이 작동했는지 모른다.
Q. 극지연구소 성과를 산학연 협력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면
학술단체나 대학, 기업 등이 극지연구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협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체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드는 것도 극지연구소 역할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을 가진 학교에 기회를 제공한다. 종합학문 성격이 강한 극지연구 특성상 대학원 과정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가 있다.
극지연구소는 자체적으로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UST 체계를 통해에서 극지캠퍼스에 등록한 학생에게 수업을 포함하여 다양한 교육훈련 과정과 학위연구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UST 이름으로 학위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일반대학과도 많은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협력을 하고 있다.
Q. 2017년 환경일보 기고에서 “세계 각국은 지구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는 창으로 남극을 연구하고, 아직은 모르지만 미래에 모습을 드러낼 잠재력을 미리 발견하기 위한 발길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연구 동력을 이어갈 수 있는 정부지원이나 극지활동진흥법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면
2021년 극지활동진흥법이 제정됐다. 그전에도 남극활동 및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었지만. 극지활동진흥법이 만들어진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극지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연구, 관련 정책수립, 경제 등 모든 것에 법적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이 만들어지면 정부는 그 법에 근거해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법정계획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법정계획이 만들어지면 우리나라 정부 전체를 대표하는 범부처 계획이 수립된다. 각 부처간 통합된 의견을 내고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이 전하는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살리는 한마디]
심각한 기후변화 모습을 알리려 할 때 녹아내리는 얼음 위에서 간신히 의지하는 북극곰 모습은 단골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여기지 않는다. 과거에도 기후변화는 있었다. 문제는 속도다. 지금 극지에서는 해빙이 사라지고 빙상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어떤 생물들은 번식의 어려움을 겪거나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거처를 옮기고 있다.
온실 기체 배출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극지연구를 통해 설명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더불어 극지연구를 수행하며 지구의 마지막 황무지에 인간 발자국이 너무 깊이 새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