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데스노트 조례를 폐기하라’
서울시의회 ‘대발생 곤충 방제 조례안’ 입법예고
[환경일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동물권행동 카라, 생명다양성재단, 생명의숲, 생태보전시민모임, 서울환경연합, 은평민들레당, 풀씨행동연구소 등 57개 환경⋅동물권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8월27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비과학적이고 반생태적인 러브버그 방제 조례안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8월20일 서울시의회 누리집에 ‘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 입법예고가 고시됐다.
이 조례안은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와 같이 생태계에 이로운 곤충이더라도, 시민의 정신적인 피해와 불편을 이유로 방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례안에 명시된 ‘대발생 곤충’의 기준이 모호하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 향후 어떤 곤충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 조례가 될 수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 결과 서울시의회 입법예고 누리집에는 조례안 입법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지방조례안의 입법예고에 이례적으로 380여명의 시민들이 반대의견을 제출했고, 이를통해 시민들은 단순히 불편함을 이유로 생태계의 일원을 함부로 방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로 발언한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 전문위원은 “러브버그는 박멸할 수 없으며, 친환경적 방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의 봄을 되풀이하고 생태재앙을 초래할 조례안 절대 반대한다”, “생명 경시하는 조례안 절대 반대한다”와 같은 시민의견이 서울시의회 누리집에 올라왔다고 소개하며 서울시의회가 현명하게 대처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서 발언한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러브버그는 생태학적으로 익충이라는 것이 알려져있는 종”이라며 “익충과 해충이라는 구도도 잘못됐지만, 단지 못마땅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과학적인 사실을 뒤집는 것은 거짓을 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방제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다”며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만들고 박멸하기 위해 방제를 한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를 죽여 자연 전체에 해악을 끼치게 될 뿐”이라 지적했다.
서울에서 러브버그가 처음 대발생한 곳으로 지목되는 봉산에서 봉산생태조사단 활동을 진행하는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는 “러브버그 대발생의 원인이 살충제 살포 때문일 수 있다는 보도 이후, 은평구는 친환경 방제라 홍보하면서 ‘끈끈이 롤트랩’, ‘직접 포획’, ‘낙엽 정비 등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며 “작은 생물을 비선택적으로 포획해 죽이는 끈끈이 롤트랩, 숲을 뒤져가며 직접 잡아죽이는 방식의 살생,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수많은 생물의 먹이 은신처이자 삶터가 되는 낙엽을 제거하는 방제를 과연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러브버그가 서울 전역으로 퍼지면서 밀집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처음 러브버그를 만난 시민들의 민원이 늘어났을 수는 있지만, 이 때문에 함부로 죽여 마땅한 생물로 만들면 안 된다”며 “지자체에서 할 일은 러브버그를 비롯한 다른 곤충들의 생태를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짧은 대발생 시기를 함께 인내하는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발언한 조현정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기획팀장은 이번에 발의된 대발생 곤충 방제 조례안이 “생명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유해야생동물을 떠올리게 한다”며 “유해야생동물 지정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하고 논쟁이 끊임없는데 하물며 곤충의 개체수가 많다고, 단순히 징그럽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물건을 치우듯이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유해하다고 해도 고통 속에서 죽어 마땅한 생명은 없다”며 “무분별한 방제는 생태계 교란과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성명서를 낭독하며 “해당 조례안이 통과되면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를 근거로 특정 곤충종을 방제하겠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생태파괴를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국 정부가 서명한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의 실천 목표 7번, 즉 2030년까지 모든 출처로부터 발생하는 오염 위험과 오염의 부정적 영향을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기능 및 서비스에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으로 줄이자’는 목표를 위배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도 성명서에서 “그동안 서울시는 동양하루살이와 붉은등우단털파리에 대한 올바른 정보제공과 행동요령 안내를 통해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곤충의 생태를 설명하며 공존의 방향을 제시하며, 대발생 곤충에 대한 시민 혼란이 줄어들고, 포용적 인식과 긍정적 이해가 커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상황에서 발의된 서울시의회의 이번 조례안은 그동안 서울시와 전문가, 시민들이 쌓아온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교란시키는 해로운 조례”라고 말했다.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서울시의회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 시민사회단체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며 상임위원회 안건심사 과정에서 조례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은 9월6일(금)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사될 예정이다.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생태계의 일원을 무분별하게 방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근거가 될 조례안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생명의 편에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