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헌법소원, 가장 보수적 판결···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선 제시”
5명 재판관, ‘총배출량·순배출량’ 기준 불일치 지적
“2030년 감축목표, 2050 탄소중립 위한 최선 아냐”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고려한 ‘한국의 몫’ 근거해야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후대응’의 방향으로 대응 필요성↑
[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지난 16일 서울 중구에 소재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시민단체, 법률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후 헌법소원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에 대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판결 후속 토론회가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8월29일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2031~2049년에 해당하는 감축목표가 부재한 것을 2026년 2월28일까지 법개정을 통해서 바로잡도록 결정한 것이다.
정족수에 1명이 모자라서 위헌 결정이 나지는 않았으나, 2030년 탄소중립기본계획(이하 ‘탄기본’)에 대해서도 ‘총배출량‧순배출량’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 5명의 재판관이 위헌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2030년 감축목표도 위헌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으나,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최선이라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또 헌재는 우리나라가 전지구적 감축에 기여해야 할 몫(온실가스 감축목표)은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고려해 판단해야 함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탄기본에 대한 개정 및 개선과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이 필요하다는 데 해당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윤세종 기후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플랜1.5 변호사는 기후헌법소원 판결의 의미로 크게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할 권리: 헌법상 환경권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몫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절차와 내용 ▷고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국회의 헌법적 의무로 봤다.
5년 주기 감축 목표··· 단기적 여건 의존 위험성↑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다. 그렇기에 정부는 단기적 감축의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많고, 이로 인해 감축 비율을 가속화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감축 부담이 다시 가중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헌재는 누적 배출량에 대한 고려나 준거가 없는 상황에서 5년 주기로만 감축목표를 정하게 되면 단기적 상황과 여건에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에, 감축목표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서는 목표 시점 이전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2050년 목표 시점까지 실제로 점진적인 감축이 이뤄질 수 있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가 설계돼야 하고, 그 제도적 실효성에 대한 심사는 급속한 감축의 필요성이 커진 만큼 보다 엄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윤 변호사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의 입법 과제로 “과학적으로 요구되는 감축 수준 분석 및 국제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기여도 평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절차 도출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전했다.
기후헌법소원을 시작하고 주도해 온 기후 운동 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 김보림 활동가는 “법원은 후속조치를 하는 곳이지, 앞서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곳이 아니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 판결은 가장 보수적인 판결이며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선을 제시인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오목한 장기경로, 탄소예산, 공정분담 고려한 방식이어야”
그러면서 “헌법재판소가 말하고 있는 ‘환경권’은 단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생명, 신체의 자유, 삶의 질, 생활환경과 안전에 대한 것들이 모두 포괄되는 종합적 기본권으로서 다뤄지고 있다”며 “또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후대응’의 방향으로 오목한 장기 경로, 탄소예산과 공정분담을 고려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위기비상행동 황인철 공동운영위원장은 실질적인 감축목표 강화 효과를 위해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의 감축목표 기준이 모두 ‘순배출량’임을 법률 조항에 추가해야 한다며, 독일 사례와 같이 강화된 2030년 감축목표를 법률에 명시, 내년에 유엔에 제출할 2035 NDC 수립도 탄소중립법 개정 과정과 연동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위원장은 이러한 목표 설정에 있어서 임의적인 목표 설정이 아닌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고려한 ‘한국의 몫’에 근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6월13일에 제기된 아기기후소송과 2023년 7월6일에 제기된 탄기본 위헌소송에 참여한 장하나 아기 기후헌법소원 청구대리인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어린이를 위한 기후 대안교육’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학교, 환경부, 환경재단 등 여러 경로로 기후환경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나 ‘어떻게’가 빠진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고 지적하며, “환경교육이 그린워싱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관련 프로그램이 많다. 결국 정치적인 해법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교육이 정치를 터부시하다 보니 기후교육이 될 리가 만무하다”고 토로했다.
이와 더불어 “아기기후소송의 법정대리인으로 참여하면서 양육자들도 기후에 대해 설명하고 가르칠 정도로 관련 지식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을 자각했다”며 “어린이를 위한 교육은 사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법리상 전진과 후퇴 모두 있어··· “헌법 개정 필요”
이번 판결에서의 법리상 전진과 후퇴에 대한 분석도 제기됐다.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과 교수는 법리상 전진에 대해서는 ▷환경권에 대해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을 인정한 두 번째 사건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판단 방법에 대한 법리상 혼란 정리 ▷이 사건에 특화된 비교형량 기준 구체화해 제시 ▷의회유보원칙 심사강도를 강화해 위헌의 결론에 이른 첫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 환경적 가치 자체를 헌법상 환경권의 보호영역으로 인정한 선례의 경향에서 후퇴했으며, 환경권 보호의무 대신 환경보전 노력의무로 구성 등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의 규범적 지위 격하, 미래세대의 자유권 침해 주장 및 세대 간 정의 판단을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향후 규범적 노력 방향에 대해서는 기후문제의 근본적인 규범적 해결을 위해 ▷안정적인 기후에서 생활할 권리 명문화 ▷공권력 행사 시 미래 국민의 이익 고려 명문화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서 생태적 가치 명문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