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국제공조 흔들··· 정책·전략 모호한 정부
트럼프 재집권, 기후정책 후퇴··· 기후 리더십 유럽·중국 이동
NDC 달성 실효성 제고, 정부 주도 탈피한 시장구조 전환 필요
[국회=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기후위기 대응의 국제적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한국의 대응 전략을 점검하기 위한 긴급 토론회가 개최됐다.
박정·장철민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트럼프 이후 기후 정책 변화와 대응 토론회’가 4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개최됐다. 사회는 정내권 전 기후변화대사가 맡았고,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과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가 발제를 진행했다.
토론회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정 탈퇴, 기후과학 부정, 탄소중립 목표 무력화 시도 등 국제 기후 거버넌스에 미친 퇴행적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한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장기적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설정과 탄소 가격제 개편, 소비자 책임 분담 구조 마련 등 구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정 의원은 개회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는 단순한 국제 협정 탈퇴가 아닌,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우리도 이제는 중국과의 친환경 협력 강화 등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호영 환경노동위원장은 “미국의 기후 정책이 본격적으로 후퇴하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과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는 대비가 필요할 때”라고 밝혔다.
소비자 책임과 탄소 가격 체계 개선해야
이어진 발제에서 유연철 사무총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정 탈퇴, 기후 과학 부정, 온실가스 규제 완화 등 기후 정책 퇴행이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자연현상으로 간주하는 트럼프 정부의 생각은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 대응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국제적 책임 회피가 개도국의 피해를 심화시키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유 사무총장은 ESG 개념의 역사와 파리협정의 의미를 되짚으며 “미국 정부가 물러섰을 때도 미국의 기업과 시민사회는 ‘위 아 스틸 인(We Are Still In)’ 성명으로 파리협정을 지켰다”며 “기후위기 대응은 정부만이 아닌 다양한 주체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EU의 택소노미(Taxonomy) 법제화,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주도권 확대 사례를 통해 기후 리더십의 중심이 미국에서 유럽과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제시한 안영환 교수는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며 “탄소프리 에너지에 프리미엄을 붙여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장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독일 고속철도의 ‘그린 티켓’ 사례와 파타고니아 소비 행태를 인용하며 더 비싼 녹색 에너지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끝으로 안 교수는 “탄소 가격이 현재 톤당 1만원 이하로 유지되며 혁신 유인이 부족하다”며 “배출권 가격 상·하한제 도입과 발전 부문 100% 유상 할당 적용을 통해 실질적 가격 신호를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예비타당성조사에 탄소 비용을 반영하면 녹색 인프라 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NDC 실현 불가능··· 실행 가능한 제도 전환 시급
이어진 토론회는 정내권 전 기후변화대사를 좌장으로 강부영 환경부 팀장, 안드레 산업부 에너지정책과 서기관, 이혜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권경락 플랜1.5 정책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NDC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며,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2030년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도 실효성 강화, 탄소 가격 정비, 소비자 선택권 확대, 국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의 재정비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정내권 전 기후변화대사는 “30년간 수차례 설정된 감축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으며, 국제사회는 잊고 넘어가는 사이 온실가스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NDC가 선언적 목표에 머무는 이상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규제 중심 정책에 회의감을 나타내며,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려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소비자가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 예컨대 탄소프리 전기요금제, 녹색 인프라 투자 유인 강화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부영 환경부 팀장은 “국제기후외교의 구도가 미국 중심 1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 중국, 브릭스 국가들이 자율적 규범 구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정책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브릭스 국가들이 기존 협상 구조를 넘어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기후거버넌스의 다자협력 질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권경락 정책활동가는 “기후위기를 방치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며 “정부는 선언이 아닌 실천 중심의 정책, 특히 탄소가격의 내재화와 산업계 유인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