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변호사의 ‘정·비·공’ ⑤]
나, 바다 – 세계 해양의 날을 돌아보며

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2025-06-19     편집국
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환경일보] 지난 6월 8일은 ‘세계 해양의 날’이었다. 이 기념일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Agenda 21’이라는 지속가능발전 행동계획을 채택하며 시작됐다. 그중 제17장은 '해양과 모든 해양생물자원의 보호'를 독립 항목으로 두었고, 특히 육상기원 오염원(Land-based pollutants)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강조했다. 바다가 단순한 수자원이 아닌, 기후, 생태, 식량, 경제를 포괄하는 복합적 공간임을 국제사회가 명확히 인식한 순간이었다.

아울러 지난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기념행사는 1997년 이후 28년만에 국내에서 열렸으며 ‘플라스틱 오염 종식(#BeatPlasticPollution)’을 주제로 하였다. 그러나 리우회담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해양은 여전히 육상 중심 행정의 변방에 머물러 있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자원의 원천으로, 관광지로, 전략적 중요성으로 대상화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바다다. 바다에서 보면 모두 섬사람들이다. 나는 지구 산소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내고, 수억 생명체의 서식지를 품고 있으며, 기후를 조절하고 탄소를 흡수한다. 나는 식량의 보고이며, 사람들의 교역과 에너지, 여가의 공간이기도 하다. 섬사람들이 매년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을 흘려보내고 중금속과 영양염류, 산업폐수가 병든 나를 더 오염시키고 있다. 녹조는 연안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침적 폐기물은 저층 생물다양성을 파괴한다.

우리나라에서 해양정책은 해양수산부가 주관하지만, 환경부는 육상 오염원의 규제를 맡고 있고, 해양오염사고의 현장대응은 해양경찰청, 항만 개발은 국토교통부, 해상풍력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한다. 어업 분쟁은 지자체와 어촌계가 나서고, 유역 관리는 수자원공사까지 아우른다. 나는 육지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다루는 정책은 여전히 육지 기반으로 흩어져 있다. 나의 면적은 우리나라 국토의 4.4배에 달한다.

해양쓰레기 문제만 봐도 그러하다. 나는 도시하수와 하천에서 유입된 미세플라스틱을 받고, 1000만 낚시인구가 낳은 낚시용 폐기물과 항만 폐기물, 선박 잔재물에 잠식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제도는 환경부 소관 폐기물관리법, 물환경보전법과 해양수산부 소관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양환경 보전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수산업법 등으로 분절되어 있고, 실질적인 예방보다는 바다에 도달한 이후의 수거에 치우쳐 있다. 나의 문제를 바다 위에서만 현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뿌리 깊은 원인에 대한 정책 대응은 늘 부족하다.

국제사회는 나의 회복을 위해 더 정교한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지속가능한 해양을 위한 10년’으로 정하고, 해양공간계획(Marine Spatial Planning, MSP), 생태계 기반 접근(Ecosystem-based Management, EBM), 시민참여형 거버넌스를 해양관리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나는 해양공간계획이 필요하다. 단순한 해역 구획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을 기반으로 다중이용을 질서화하고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토대다. 우리나라도 2019년부터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며 이를 제도로 채택했다. 해양을 연접하는 육지, 나아가 해양의 상공에서 해저까지 3차원의 공간으로 파악하여 다양하게 전개되는 해양의 이용과 개발 및 해양생태계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종합적인 해양관리수단이다. 아울러 2025년 1월부터는 해양을 이용, 개발하는 사업의 해양환경영향 저감을 위한 해양이용영향평가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해양공간계획과 해양이용영향평가의 실효적 적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해양공간계획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서는 단일한 국가계획에 머무르지 않고, 권역별 맞춤형 이행계획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성과평가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어업인·지자체·시민사회가 계획 수립 및 집행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해양공간계획은 개별 인허가 갈등을 해소하는 사후조정 수단이 아니라, 충돌을 예방하고 질서를 설계하는 사전배치 전략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업법, 연안관리법, 해상풍력법 등 관련 법령 간 정합성과 사전협의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나는 이 계획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선 생태계 기반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MSP는 단순한 구획이 아닌, 생태 민감도에 기반한 차등적 구역 설정과 누적영향 분석을 반영해야 진정한 ‘생태 기반 접근’으로 기능할 수 있다. 생태우선구역과 개발조정구역, 완충지대 설정은 선택적 기술이 아니라 기본 인프라다. 이는 유역-연안-심해를 아우르는 통합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어민·시민단체의 참여가 보장되는 실질적 거버넌스도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는 제22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해양환경 통합관리 컨트롤 타워 전담기관 신설’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현재 별다른 추진경과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대통령직속 국가해양위원회 설치 논의가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 통합적 거버넌스를 실제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육상에서부터 유입되는 오염원을 차단하고, 이용과 보전이 조화된 공간계획을 수립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합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 해양공간계획이 지방단위 해역계획 및 개별 사업계획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공간계획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중앙-지방 연계구조의 실효성을 위한 지원 체계와 조정기구가 필요하다. ‘블루이코노미’는 나의 개발을 위한 수식어가 아니라, 나의 생명력을 보전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성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한다.

칼럼 제목은 레너드 리드의 1958년 저서 ‘나, 연필’이라는 제목에서 차용했다. 수많은 사람과 자원이 연결되어 하나의 연필이 만들어지듯이, 바다 또한 그렇게 우리 삶과 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