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 잎의 개수로 알아보는 소나무의 과거와 미래

인간은 입으로, 숲은 잎으로 말한다

2025-07-08     전윤빈 학생기자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전윤빈 학생기자 = 송편에 배인 솔향, 담금주에 녹아든 은은한 냄새, 훈제 고기에서 올라오는 깊은 향기. 솔잎은 예로부터 우리 음식과 생활에 빠지지 않는 존재였다. 음식에서는 잡냄새 제거, 숙성 촉진, 혈액순환 개선의 효능이 알려져 있으며, 베개와 방석, 방향제처럼 습기 제거와 탈취에도 널리 활용됐다. 순수함과 청렴을 상징하는 소나무 향은 제례나 무속 같은 의례 공간에서도 정결한 기운을 더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이처럼 소나무는 단지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쉼과 향, 재료와 상징을 내어주며 곁을 지켜온, 말 그대로‘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삶의 구석구석에 녹아든 그 향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그런데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그 묵직하고 싱그러운 솔향은 사실 모든 소나무가 낼 수 있는 향이 아니다. 잎이 두 가닥으로 난 재래종 적송에서만 나는 향이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른 채 잎이 세 가닥인 리기다소나무의 잎을 사용한다면, 예상치 못한 떫고 신맛 같은 이질적인 냄새에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나무 /사진=환경일보DB

소나무도 다 같은 소나무가 아니다. 잎의 수만 보아도, 그 정체는 물론 자생지와 용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읽을 수 있다. 그 잎은 단지 식물의 기관이 아니라, 숲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의‘말’이기도 하다.

적송– 전통과 향을 품은 소나무

우리나라의 대표 재래종 소나무인 적송(Pinus densiflora)은 잎이 두 가닥씩 짝을 이루어 붙어 있다. 토종 소나무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떡에 솔향을 입힐 때 주로 사용되는 수종이다.

리기다소나무– 도입된 복구자, 그러나 양날의 검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는 세 가닥의 잎이 붙어 있는 소나무로, 북미가 원산지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대량으로 도입되었으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생태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잣나무– 다섯 잎으로 피워낸 자원의 가치

잣나무(Pinus koraiensis)는 다섯 가닥의 잎을 가진 소나무다. 주로 식용 자원인 잣이 열리는 나무로, 경제적 가치가 높다. 풍성하고 단단한 외형 덕분에 생명력과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져 왔다.

산불 이후의 선택– 외래종의 명과 암

1970년대, 우리나라 산림은 과거 전쟁과 무분별한 벌채로 심각하게 황폐해 있었다. 당시 산림 복구를 위해 정부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생장이 빠른 북미산 소나무, 리기다소나무를 대안으로 삼았다. 이는 급박한 복구와 경제적 조림 효율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리기다소나무는2000년 동해안 산불, 2022년 울진 산불 등 대형 산불 이후 복구 과정에서 주력 수종으로 꾸준히 선택되었다. 생장이 빠르고 건조한 토양에서도 활착률이 높아‘복구용 소나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일 수종 중심의 인공조림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외래종인 리기다소나무가 자생종의 생육 공간을 압박하고, 숲의 구조적 다양성과 생물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최근 복원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2022년 울진 산불 복구 계획에는 지역 주민, 전문가, 환경단체의 의견을 반영한 새로운 전략이 도입되었다. 자연 복원과 인공조림을 병행하고, 자생종 중심의 식재, 지역 맞춤형 수종 선택, 그리고 토양 회복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잎 하나로 들여다본 자연의 이치

소나무의 잎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나무의 종과 자생 환경, 쓰임새는 물론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까지 짐작할 수 있다. 잎이 두 가닥인 적송은 우리 전통의 향과 기억을 담고, 세 가닥의 리기다소나무는 산림 복구와 생태계 간의 균형을 고민하게 하며, 다섯 가닥의 잣나무는 자원의 가치를 넘어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소나무는 저마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선택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단순한 잎의 수 안에는 생태계의 다양성, 문화적 전통,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자연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