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사각지대 놓인 폐기물 처리 노동자
87% 재해 경험··· 안전 기준조차 없는 폐기물 현장
“민간 위탁 구조가 문제, 안전은 비용 아닌 권리”
특별법 제정·지자체 책임 명확화, 법적 안전망 절실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폐기물 처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산업재해 위험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7월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폐기물처리 노동자 안전기준 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이용우, 용혜인, 전종덕, 정혜경 의원과 여성환경연대, 전국환경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
현장 실태 고발··· “재해 경험한 노동자 87%”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팀장은 전국 폐기물 선별장 노동자 1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산업재해를 겪은 경험이 있으며, 근골격계 질환, 기관지염, 피부질환 등 건강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수의 작업장은 환기 시설, 보호 장비, 악취·미세먼지 차단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안 팀장은 “선별장 대부분이 민간에 위탁돼 운영되면서 지자체의 안전 관리 책임이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항주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폐기물처리노동자 안전기준 특별법(가칭)’ 제정 필요성을 제안했다.
해당 법안 초안은 ▷작업장 공기질 기준 ▷보호구 지급 및 착용 의무화 ▷정기 건강검진 확대 ▷지자체의 관리 책임 명시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박 위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폐기물 처리 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폐기물 처리 노동자들을 위한 독립적인 안전기준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와 민간의 책임 명확히 해야”
이후 이어진 토론에는 법조계, 노동계, 정부 관계자가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조성오 변호사(법무법인 길상)는 “공공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면서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며, 계약 구조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지자체 위탁 계약에는 안전 장비 예산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조례나 계약서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폐기물 노동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숙련직이자 필수 공공노동”이라고 밝힌 박진덕 전국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은 작업 환경과 처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환경부 안중기 과장과 고용노동부 오은경 과장도 참석해 “관련 실태를 인지하고 있으며, 부처 간 협의를 통해 기준 마련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우 의원 “하반기 법안 발의 예정”
공동 주최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폐기물 처리 노동은 도시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업무지만, 안전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안전기준 강화를 위한 법안을 올 하반기 중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그동안 법적 보호에서 배제돼 있던 폐기물 처리 노동자들의 산업안전 문제를 공론화하고, 구체적인 입법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와 국회가 후속 입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