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변했는데, 농업 정책은 그대로”
기온·강수 예측만으론 부족···작물별 생육지 변화 지도화 절실
농진청 “기후지도, 아직도 작물 21종에만 제한···정밀화 필요”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생육환경의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차원의 첫 본격 대응 논의가 시작됐다.
7월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기후변화와 민생: 기후지도로 보는 농작물 생육환경 변화’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조지연 국민의힘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이 주최하고, 환경부·기상청·농촌진흥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해 기후지도 기반 정책 대응과 농업·농민 중심의 적응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조지연 의원은 개회사에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의 최전선 문제”라며 “우리 농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특히 기후지도와 생육환경 정보가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재배적지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고, 농가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2040년 이후 고온작물 북상, 벼·사과 타격 우려”
첫 번째 발표자인 부경온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팀장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와 상황지도’를 소개하며, RCP 4.5 및 SSP 2-4.5 시나리오에 기반해 2050년 이후 기온, 강수량, 폭염일수, 생육적온일수 변화를 시각화한 자료를 공개했다.
부경온 팀장은 “벼, 사과, 포도, 고추 등의 작물이 2040년 이후 기존 재배지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기후지도가 일부 지역 중심의 정적인 지도 수준에 머물러 있어, 예측 정확도와 작물 다양성 확대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나영은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대응과장은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작물별 재배적지 예측 시스템의 실태와 한계를 설명했다.
현재 21종 작물에 대해 기후적합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 단위의 정밀 예측, 농가별 적용 가능한 수준의 의사결정 도구로는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나 과장은 “품종별 반응 차이, 미세기후, 토양정보, 병해충 위험지도의 통합이 이뤄져야 실제 농민이 활용할 수 있는 지도가 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험지도 고도화, 데이터·예산·법 정비 동시 필요
정부 측 발표에서는 금한승 환경부 차관이 참석해 “농업과 수산 분야에 특화된 기후위험지도의 표준화 및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기후적응을 단순 예보나 경고 수준이 아닌, 민생대책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정철 환경부 기후적응과장은 “2026년까지 전국 단위 기후위험지도를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배 가능 품종·양식 가능 어종 지도를 동시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부 토론에서는 장훈 국립환경과학원 본부장이 좌장을 맡고, 오현정 농식품부 사무관, 김지현 기상청 기후데이터팀장, 서승범 서울시립대 환경학과 교수, 정구복 농진청 농업환경변화대응단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들은 ▷농업 기후지도 활용 확대를 위한 데이터 표준화, ▷부처 간 정보 공유 체계 구축,
▷기초 지자체까지 연계 가능한 다층적 플랫폼 구축, ▷기후정보를 반영한 농업정책 재편 및 예산 투입 구조 개편 등을 제안했다.
서승범 교수는 “단순히 기후를 예측하는 기술은 충분하지만, 정책 반영이 느리고 현장 적용성이 낮다”며 “법제도 정비 없이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정보는 생존 전략, 기후감시법 개정 추진
조 의원은 이날 토론회를 통해 지 난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기후정보 고도화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며, 최근 대표 발의한 기후변화감시·예측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기후지도 정비 및 농업 적용 범위 확대를 입법화할 계획임을 밝혔다.
해당 개정안에는 기후지도의 표준화 의무 규정, 생육환경변화 예측의 농정 반영 근거 신설, 국가 적응계획과의 연계체계 강화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토론회는 기후변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넘어, 지역과 농가의 생존 문제로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후정책 논의와 차별된다.
기후지도는 단순한 예보가 아닌, 작물 재배지 이전, 품종 선택, 지역경제 대응전략의 핵심 기초자료다.
하지만 그 정확성, 범용성, 통합성은 아직 과제다.
정부와 국회, 연구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과학 기반의 기후농정 체계를 실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