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규모 사업장 근로자가 폭염 피해에 더 취약”
산업안전법 폭염 관련 조항 명확화, 휴식·작업 중지 의무화해야
현장 감독 강화 없이 휴식권 보장 어려워··· 실효성 확보 필요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7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신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근로자 폭염재해 예방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늘어나는 폭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와 현장 적용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비례대표) 주최로 환경부, KEI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고용노동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동 주관·후원했으며,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학계, 행정부처 관계자 등 약 8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산업재해 온열질환자 73.3%,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첫 발제를 맡은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이윤정 교수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온열질환 산재 사례를 분석하며, “총 180건의 온열질환 산업재해 중 51.7%는 건설업에서 발생했고, 73.3%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였다”며 “중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들이 폭염 피해에 더욱 취약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폭염 위험은 체감온도 31~33℃ 구간에서 특히 높으며, 이 시기 적절한 휴식과 작업 강도 조절이 사고 예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짧고 잦은 휴식보다는 충분한 휴식이 건강 회복에 효과적이며, 작업 전·중·후 모니터링 역시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정 교수는 신규 근로자가 폭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작업 강도를 높이는 ‘열순화(acclimatization)’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교수는 “스페인에서는 체감온도 37℃ 이상 시 야외작업을 축소하고, 독일은 30℃ 초과 시 냉방과 휴식, 작업시간 조정을 의무화하며, 35℃ 이상부터는 야외 작업을 전면 제한한다”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도 유사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우리나라는 5~9월 기상특보 기간에 체감온도 28℃ 이상에서 2시간마다 최소 20분 이상의 휴식시간 부여, 증상 모니터링, 고온 시간대 작업 회피, 순환 근무 등 다층적 조치가 법적 의무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법 내 폭염 관련 조항 명문화 촉구
한국환경연구원의 채여라 총괄연구원은 폭염 대응에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 활용을 제안했다.
채 총괄연구원은 “근로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체감온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위험 상황에 맞춘 맞춤형 경보를 발령하고, 근무 조건을 조절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 사회, 경제적 데이터를 통합해 지역별, 업종별 맞춤형 폭염 대응 정책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효율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합토론 좌장인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폭염 대응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부족해 실제 현장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폭염에 따른 휴식시간 의무화, 작업 중지 기준, 열순화 제도 도입 등 폭염 위험에 특화된 안전규정을 법률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한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도 “모바일 기반 디지털 경보 시스템을 도입해 실시간 폭염 위험 알림과 작업시간 조절이 가능하도록 하고, 각 사업장 특성에 맞는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회안전망 보완, 현장 감독 강화와 휴식 보장 실효성 갖춰야
김위상 의원은 “폭염 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법과 더불어 기후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이 함께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위험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 보호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5월 말부터 폭염안전 특별대책반을 구성해 건설·조선·물류 등 고위험 사업장을 중심으로 기상특보(33℃ 이상) 발효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권고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토론회 참가자들은 “법적 권고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장 감독과 이행 점검 체계를 강화해 실제 휴식 시간 보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기후위기 심화에 따른 폭염 재해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재확인했다.
특히 ▷폭염 대응 조치 법률 명문화 ▷신규 근로자 대상 열순화 제도 도입 ▷디지털·데이터 기반 맞춤형 경보 체계 구축 ▷기후보험 등 사회안전망 보완 ▷현장 감독과 휴식 보장 실효성 강화 등 다층적인 정책·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시대 노동 현장 안전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근로자 생명권 보호를 최우선에 둔 노동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국회와 정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어 폭염 재해 예방을 위한 실효적 정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