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톡톡] 기후 소설, 문학이 건네는 마지막 경고
기후위기와 인간 책임을 성찰하는 ‘클라이파이’의 부상
[환경일보] 판타지 소설, 추리 소설, 로맨스 소설. ‘소설’이라는 단어 앞에 장르가 붙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장르 소설이 우리의 서재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기후 소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흔히 기후위기 담론이 그러하듯,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영미권에서부터 기후 소설의 흐름이 시작됐다. 영국의 지넷 윈터슨이 쓴 ‘돌의 신들’(The Stone Gods, 2007년, 국내 미출간), 영국의 이언 매큐언이 쓴 ‘솔라’(2010년, 2018년 국내 출간)를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를 다루는 독립 미디어 그리스트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2200년을 상상하라’는 주제로 기후 소설 세계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 소설의 흐름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SF 소설 작가로 유명한 김초엽은 2021년 노출되면 죽음에 이르는 먼지 ‘더스트’로 멸종한 미래 인류를 다룬 ‘지구 끝의 온실’을 펴냈다. 소설가 배미주도 2024년 ‘너의 초록에 닿으면’을 출간해 청소년 문학에서의 기후 소설의 지평을 넓혔다. 문학뉴스와 시산맥 역시 2022년부터 문인으로서 기후와 환경으로 인한 현 인류의 고통을 위기의식으로 인식하길 바라며 기후환경문학상을 제정해 공모전을 열고 있다.
그렇다면 기후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나 재앙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는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댄 블룸이 2007년 기후(climate)와 소설(fiction)을 결합해 처음 만들었다. 주로 SF와 교집합으로 그려지는 클라이파이에는 청정에너지로 구동하는 녹색사회 중심의 긍정적 미래상인 ‘솔라펑크(solar-funk)’도 포함된다.
클라이파이는 기후위기 이후 멸망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흔히 넓은 의미의 과학소설(SF)로 묶인다. 과학소설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사변’이다. 경험이 아닌, 생각만으로 사물이나 현실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사고실험을 이른다. 이런 작업은 과학소설의 수식으로 잘못 붙곤 하는 ‘공상’이 아닌, 과학적 추론에 따른 것이다. 기후 소설의 사고실험은 기후위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측하려는 시도이면서 기후위기를 막을 담론 확산의 매개가 된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클라이파이는 기존의 문학과는 달리, 멸망이 누구의 책임인지 밝힌다. 단순히 디스토피아적 배경 설정을 위해 지구온난화가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어리석음으로 지구가 멸망했고,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파이가 단순히 종말만을 다루는 비관적 이야기는 아니다. 이후에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통찰이 담긴 것이 기후 소설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기후 소설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안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이 가지는 힘을 생각하면 기후 소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자 레이먼드 마와 키스 오틀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에 쉽게 공명하며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소설 읽기가 곧 공감 능력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평소에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느꼈던 주제라도, 문학을 통해서는 거부감 없이 ‘나’의 영역을 넓혀 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때 학습 효과가 더 높다. 일상과 직접 연관이 없을수록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익숙지 않은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통로이다.
이처럼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라는 의제에 접근하고 환경파괴의 영향을 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를 재현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증언하는 한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반성 없는 현재가 디스토피아로 이어진다는 어두운 경고에도 낙관적 미래를 전망함으로써 현재 시점에서 기후행동과 같은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후 소설은 기후위기와 개인 삶 간의 거리를 좁히고 새로운 실천을 촉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후위기가 빈부격차에 따라 그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기후위기 음모론까지 떠돌며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는 오늘날이다. 기후학자들이 아무리 위기를 부르짖어도, 대중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기후위기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후 소설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 문학은 남의 이야기를 나와 동일시하게 만들어 주고, 멀리 떨어져 있는 주제라 생각했던 기후위기를 독자와 연관 짓는다. 이기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이타심을 길러주는 문학은 막대한 예산 투자도 필요 없는 최고의 계몽이 될 수 있다.
요즘 새로 읽을 책을 찾고 있었다면, 기후 소설을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조금은 허황하고 조금은 바보 같고 조금은 오그라들지라도, 그런 이야기가 때로는 마음을 움직인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진 lsjlee03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