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 옥수수 반점의 비밀

'움직이는 유전자'가 수놓은 그림

2025-08-08     김하진 학생기자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김하진 학생기자 = 휴게소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 노란 옥수수에 버터와 설탕을 솔솔 뿌려 돌돌 구워낸 옥수수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인기 간식이다. 그런데 이 귀여운 간식의 알맹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복잡한 색의 조합과 불규칙한 배열이 눈에 띈다. 단순히 보기 좋은 우연일까? 언뜻 보기에 어떠한 규칙도 없어 보이는 이러한 패턴은 사실, 노벨상을 안겨준 위대한 발견을 담고 있다. 옥수수 알갱이의 신비로운 얼룩반점이 어떻게 생기는지 그 과학적 원리를 파헤쳐 본다.

사료용 옥수수 수확 적기 이삭 모양/사진=환경일보DB

옥수수 얼룩반점의 원인, 전이인자 유전자의 발견

옥수수 알갱이들을 자세히 보면 연노랑 낟알들 사이에 자주색이나 보라색 등 색깔이 다른 낟알들이 섞여 있다. 바늘로 콕콕 찔러 넣은 듯이 색깔이 점점이 묻은 낟알도 있고, 거의 전체가 색깔을 띤 낟알도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미국의 유전학자 바바라 맥클린톡 역시 옥수수의 흥미로운 패턴에 호기심을 품었다. 연구 끝에, 그녀는 1951년 'jumping gene', 즉 말 그대로 뛰어다니는 유전자인 '전이인자 (transposable element)'를 발표했다. 전이인자는 유전자 내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다니는 DNA 조각이다. 옥수수의 전이인자에는 Ds (dissociator)와 Ac (activator)가 있다. 두 전이인자가 유전자 사이를 헤집어 다니며 알갱이의 색 발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옥수수 알갱이 얼룩무늬 형태/ 자료출처 = 논문 잊혀진 전통과 신화화된 '고립' : 미국의 옥수수 유전학 전통과 바비라 맥클린톡의 연구 활동

이와 같이 전이인자가 다른 유전자로 옮겨가려면 스스로를 분리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트랜스포스타아제’ 라는 효소가 유전자를 절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효소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온전히 가진 Ac와 달리, Ds는 유전자의 일부가 없어 스스로 절단하며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Ds는 Ac가 가까이 있을 때 효소를 공급받고 유전자를 잘라내어 튀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두고 Ac가 Ds를 활성화했다고 말한다.

Ac 유무에 따른 Ds의 활성 변화 /사진=김하진 학생기자
Ac 유무에 따른 Ds의 활성 변화 /사진=김하진 학생기자

얼룩반점의 형성 과정

이와 같은 전이인자의 특성 때문에 옥수수 알갱이가 원래 전체적으로 자줏빛을 띠어야 함에도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먼저 색소 발현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이에 우연히 Ds 인자가 삽입되어 자주색의 발현을 일시적으로 억제한다. 이후 Ac로 인해 활성화된 Ds가 해당 자리에서 튀어나가면, 자주색의 발현을 억제하던 Ds가 사라지면서 끊긴 DNA는 다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색소 발현 유전자가 복구되고, 다시 자줏빛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색소 발현 유전자에 Ds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에 따라 다양한 얼룩무늬가 만들어진다. Ds가 알갱이 형성 초기에 빠져나가 색소 발현에 크게 방해받지 않으면 큰 반점이 생기고, 형성 후기에 빠져나가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방해를 받으면 작은 점들로 나타나게 되는 원리다. 이러한 전이인자의 발견은 유전자를 이해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고, 유전공학 기술의 기반이 되었다. 맥클린톡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s가 머무른 시간에 따른 얼룩반점 크기 /사진=김하진 학생기자

전이인자의 발견이 가져다준 ‘형광 소’

나아가 전이인자는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유용 단백질이 풍부한 우유를 생산하는 ‘형광 소’ 연구에도 핵심 기술로 활용됐다. 기존 방식은 유용 단백질 생산 유전자를 소의 정자나 난자, 수정란에 도입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경우 암 유발 유전자를 함께 활성화시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형광 소’ 연구에서는 전이인자에 녹색 형광 단백질 생성 유전자와 유용 단백질 생성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수정란에 도입했다. 전이인자가 다른 유전자 자리에 쉽게 끼어들어 안정적으로 DNA를 삽입할 수 있다는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형광 소’의 털 없는 코, 눈, 발에 형광색이 나타나면 형질전환에 성공했음을 즉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형질전환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의 숨은 주역, 전이인자

옥수수 얼룩반점에서 시작된 전이인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유전자의 이동을 넘어,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원리를 시사한다. 트랜스포존은 유전자 내에서 무작위적인 삽입과 탈출을 반복하며 새로운 유전자 변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변이는 때로는 해로울 수 있지만,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내 진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즉, 트랜스포존은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증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생태계의 복잡성과 적응력을 높이는 숨은 주역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생명 현상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시작으로, 이 원리들이 모여 이루는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소중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