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 모래 아래 숨은 생명들
여름 갯벌,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이주예 학생기자 =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갯벌은 단순한 진흙땅이 아니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생겨나는 이곳은 수많은 생명체가 깃드는 생태계의 보고다. 여름, 갯벌은 지금 가장 바쁘고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넓고 다양한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만, 갯벌이 있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은 갯벌이 생성되기 위한 특별한 자연적 조건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차가 크고 하천에서 유입되는 퇴적물이 풍부한 지형적 조건 덕분에 형성된 이 갯벌은 해양과 육지를 연결하며 독특한 생물 다양성을 지닌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중요하고 의미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도 가치가 크다. 이 생태학적 가치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되어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갯벌의 중요성
오랫동안 사람들은 갯벌을 쉽게 매립하여 육지로 만들 수 있는 개발의 대상지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 생태학적·경제적·기후적 가치가 점점 더 주목받게 되면서 갯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갯벌은 자연 생물의 생산지이자 서식지로 인류의 식량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필수적이다. 또 갯벌은 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갯벌은 육지에서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정화 기능, 태풍이나 해일로 인한 피해 완충 역할, 탄소를 저장해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는 블루카본 생태계로서의 역할도 한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
갯벌은 자연의 유치원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복합 생태계이다. 갯벌에서는 염분이나 표면 노출 시간에 따라 살아가는 생물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에 놓여 있어 두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육지에서 유입되는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먹이와 은신처가 많아서 산란지나 어린 생물들의 서식지로도 적합하다.
갯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물 도감이다.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칠게와 방게부터, 모래 속에 숨어 사는 갯지렁이, 맛조개, 삿갓조개, 동죽 등 다양한 저서생물이 이곳을 삶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갯벌에는 약 2000여 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종 다양성을 보인다. 해양환경 정보 포털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과 그 주변 생태계에서 서식하는 어류는 약 200종, 갑각류 250종, 연체동물 200종, 갯지렁이류가 100여 종 이상이 된다. 이밖에도 갯벌에는 수많은 해양무척추동물, 미생물, 200종류 이상의 미세조류, 100종이 넘는 바닷새들과 50종에 가까운 염생식물, 150여 종의 해조류 등이 갯벌과 연계된 생태계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갯벌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전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생물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균형
갯벌의 생물들은 단지 다양한 데에 그치지 않고 생태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갯벌은 그 안의 생물들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갯벌 저서생물 중 미세조류는 탄소와 영양물질의 순환을 책임지며, 갯벌 생태계의 1차 생산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갯지렁이는 진흙 속 유기물을 분해해 정화하고. 칠게, 방게 등의 게류는 표층 퇴적물을 뒤집어 산소 순환을 돕는다. 조개류는 바닷물을 걸러내며 수질 정화에 기여하고, 망둥어는 먹이사슬의 중간 포식자로서 어류와 조류 먹이사슬의 연결고리가 된다.
또한, 갯벌은 철새들에게도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다. 수많은 철새들이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섭취한 뒤 다시 긴 비행을 이어가며 더 큰 생태계를 구성한다.
여름 갯벌, 생명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
여름철은 갯벌 생물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이다. 많은 생물의 번식기이자 어린 개체들의 성장기이며, 따뜻한 수온과 햇볕은 유기물의 분해와 광합성을 촉진한다. 이 시기에는 생명 활동이 극대화되며, 갯벌 생태계가 가장 풍부하게 살아 숨쉰다. 그러나 여름은 동시에 갯벌이 가장 민감하고 취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채집 활동이나 쓰레기 방치 등이 빈번해지기 때문이다.
위기에 놓인 갯벌
이처럼 생명의 보고인 갯벌은 다양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매립이나 해안 개발, 지나친 관광지화 등이 생물들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서식 공간이 줄어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갯벌의 시간대별 노출 구간인 조간대를 좁히며, 염분 농도와 퇴적 특성의 변화는 민감한 생물의 서식지를 망가뜨린다. 또한, 미세플라스틱, 중금속, 유기오염물질 등의 축적은 갯벌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으며, 외래종 유입과 인위적 간섭도 균형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갯벌은 IUCN 멸종위기종 등재 물새 27종(넓적부리도요, 저어새, 재두루미 등)과 멸종위기 해양무척추동물 5종(갯게,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 등), 고유종 47종의 중요한 서식지이다. 이 생물들이 사라진다면 단순한 개체 수 감소가 아닌 생태계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게다가 갯벌은 단지 생물 서식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탄소 저장고로서 기후위기 대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갯벌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갯벌과 공존하기 위한 첫걸음
다양한 가치를 지닌 갯벌의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관심이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갯벌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갯벌연구를 국가 중점 연구 사업으로 지정하여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또한, 갯벌 보호지역 확대, 지속 가능한 어업 활동 유도, 국가 중요 어업 유산 지정 등을 통해 제도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해양 생태교육 및 해양 생태계에 대한 대국민 인식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갯벌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느냐이다.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갯벌의 가치를 인식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여름날, 갯벌이 들려주는 생명의 소리
여름의 갯벌은 그저 놀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무대이다. 우리가 갯벌을 들여다보는 일은 단지 자연을 보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 다양함이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는 조금 더 조심히 그 공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저 진흙탕처럼 보일 수 있는 이곳은, 알고 보면 수천 종의 생명이 공존하는 복잡한 생명 공간이다. 갯벌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이웃이라는 사실을, 여름 갯벌은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소중한 갯벌을 건강하게 지켜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