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 유전적 병목현상, 반달가슴곰은 왜 국제결혼이 필요할까?

반달가슴곰 '복원'의 진짜 의미

2025-08-08     최혁주 학생기자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최혁주 학생기자 = 짙은 녹음이 카펫처럼 깔린 2025년 7월의 지리산. 한때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 천연기념물 제329호 반달가슴곰이 이제는 이곳의 당당한 주인이 되었다. 2004년, 단 6마리를 방사하며 시작된 복원 사업은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적에 가까운 결실을 보였다. 현재 지리산의 야생을 누비는 반달가슴곰은 90여마리. 국민들의 염원과 수많은 이들의 땀이 만들어낸 이 성공 신화에 우리 사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성공의 환호성 뒤편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조용한 질문 하나가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밀렵꾼의 총구나 먹이 부족의 문제가 아닌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피’, 즉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그림자가 바로 그들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드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90마리가 넘는 곰들의 개체 수를 넘어, 이제 와서 그들의 족보를 뒤지고, 심지어 바다 건너 러시아에서 새로운 짝을 찾아와야만 했을까? 성공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던 이 낯선 질문, ‘복원’의 진짜 의미를 찾아, 그 기묘한 국제 결혼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반달가슴곰 /사진=국립생물자연관

섬이 되어버린 지리산, 그들만의 리그

아무리 넓은 지리산이라도, 곰들에게는 거대한 ‘녹색의 섬’이었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고속도로는 거대한 해협이 되었고,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와 농경지는 그들이 건널 수 없는 심해가 되었다. 2004년, 이 고립된 섬에 떨어진 소수의 ‘아담과 이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 되어갔다. 이 거대한 녹색 섬,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그들의 유전자는 역설적으로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이는 마치 역사가 증명하는 ‘왕가의 비극’과도 같다. 화려한 벨벳 옷과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정작 그들의 뼈는 쉽게 부서지고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려야 했던 유럽의 왕족들처럼 말이다. 순수한 혈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집단을 유전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몰락을 재촉했던 그 비극이, 지금 지리산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당한 풍채로 숲을 거니는 곰들의 모습 뒤에는, 근친교배로 인해 누적된 유전적 시한폭탄이 조용히 똑딱이고 있었다.

이 시한폭탄이 무서운 이유는 그 파괴력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게 뛰어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미래에 닥쳐올 단 한 번의 전염병이나 유전병에 집단 전체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수 있는 운명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로 지리산의 식생이 바뀌고 먹이가 달라졌을 때, 모두가 똑같은 유전자만 가졌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단 한 마리의 돌연변이 영웅도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러면 점차 번식률이 떨어지고, 어렵게 태어난 새끼들이 맥없이 죽어나가는 비극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그들을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써 만든 안전지대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종 전체를 질식시키는 유전적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했던 성공의 모습일까? 겉은 평화롭지만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이 위태로운 성공을, 우리는 언제까지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 할까?

유전자 지도를 든 곰 중매쟁이들

DNA구조 /사진=환경일보DB

이 무기력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곰의 거친 발톱이 아닌 인간의 손에 들린 ‘유전자 지도’였다.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이들을 위해, 단단한 암반과도 같은 건강한 유전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마치 최고의 결혼정보회사처럼, 연구원들은 곰들의 유전자 궁합을 보기 시작했다. 곰 한 마리 한 마리의 피에 새겨진 비밀스러운 족보를 펼쳐, 누가 누구의 자손이고 누구와 피가 섞이면 안 되는지를 계산해냈다. 차가운 데이터 속에서 가장 뜨거운 인연을 찾는 이 기묘한 곰 중매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전자 지도는 그 곰의 성격이 까칠한지, 잠버릇이 험한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2세가 이 험난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답을 속삭여주었다. 연구원들은 이 차가운 속삭임에 귀 기울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곰의 미래를 위한 혼처를 정해나갔다. 특히 외부에서 온 러시아산 ‘신랑감’은 구원투수처럼 등장해, 고여 있던 지리산의 유전자 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물론 이 과정은 컴퓨터 앞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전적으로는 최고의 한 쌍이라도, 서로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구원들은 곰들의 행동반경과 번식 시기를 계산해 같은 시기, 같은 구역에 방사하는 생태학적 전략까지 동원했다. 이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직관이 교차하는 숭고한 줄타기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종의 운명에 개입하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겸허하고도 책임감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살리는 것을 넘어, 살아갈 힘을 주는 일

반달가슴곰 그림 /AI 제작=최혁주 학생기자

우리는 기사의 처음, 곰들의 기묘한 국제결혼이라는 낯선 질문으로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답을 내놓을 차례다. 우리가 그들의 족보를 뒤지고 바다 건너 새로운 인연을 찾아야만 했던 이유는, 진정한 복원이란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파괴와 인간의 위협에서 구해내는 구조를 넘어, 본래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어떤 위기에도 스스로 맞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되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당장의 90여마리가 아니다.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이 땅에서 이어져 온 반달가슴곰이라는 종의 장대한 서사 그 자체다. 우리는 그 책의 페이지가 찢겨나가지 않도록, 다음 세대가 그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유전자라는 이름의 문장들을 교정하고 새로운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더하는 도서관의 사서와도 같다.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혀주고, 내일의 폭풍우를 견딜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본질이다.

결국 지리산의 곰들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숫자의 성공이라는 환호 뒤에서 우리는 그 생명이 가진 고유한 역사의 무게를 잊었던 것은 아닐까? 한 생명의 운명에 개입하고자 했다면, 그들의 먼 미래까지 함께 짊어지며 나아가는 것이 그에 맞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복원의 성공은 단순히 숫자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반달가슴곰의 유전자 속에 내일의 폭풍우를 견딜 힘을 건네주는 그 정성스러운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곁의 모든 생명이 가진 다채로운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종의 유전자를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세대가 이 땅의 ‘생물다양성’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얼마나 풍요롭게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약속과도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