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위기 키우는 보험산업

화석연료에 182조원 투자··· 이젠 재생에너지 촉진자로 나서야

2025-08-19     편집국

[환경일보] 기후위기는 미래의 변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집중호우·태풍은 재해 피해와 복구 비용을 끝없이 늘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산업이 본연의 피해 보상자 역할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의 촉진자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국내 10대 손해보험사의 화석연료 보험 규모는 182조7000억원으로 재생에너지 보험의 7배에 달한다. 특히 석탄 부문은 불과 1년 만에 82%나 증가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13%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이 북극·타르샌드 등 고위험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배제하고, 2030년 또는 2040년을 기점으로 석탄 단계적 폐지를 선언한 것과 극명히 대조된다. 재해 보상과 동시에 기후위기를 키우는 산업을 뒷받침하는 이중적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 보험산업이 기후위기 대응의 촉진자가 될지, 아니면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을 고집하는 가속자로 남을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제도적 전환을 위한 구체적 개선책도 제시되고 있다.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보험사 선정 과정에서 기후금융 실적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변동을 보완하는 지수형 날씨보험 활성화, 재난 예방 조치에 따른 보험료 인센티브 설계 등 기후 대응형 상품 개발도 시급하다. 나아가 기후대응을 위한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면책을 부여하는 등 산업 차원의 협력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보험산업은 금융시장과 산업 전환의 물줄기를 결정하는 핵심 주체다. 해외에서는 이미 석탄 개발이 보험사의 인수 거부로 지연되거나 좌초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보험이 단순히 재해 복구 비용을 지급하는 후행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보험산업이 기후위기 대응의 촉진자가 될지, 아니면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을 고집하는 가속자로 남을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보험사의 경영 리스크와 소비자 피해도 함께 커진다. 정부와 감독 당국은 기후리스크 평가와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보험사들의 탈석탄 로드맵과 재생에너지 투자 실적을 엄격히 점검해야 한다. 보험사들 또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보험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산업이다. 기후위기라는 인류 최대의 위험을 외면한 채 미래를 담보로 단기적 이익에 매달린다면, 그 결과는 보험사 스스로에게도 치명적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보험산업이 산업 전환과 탄소중립을 이끄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