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향 잃은 보험사 나침반

화석연료 투자 치중··· 기후 대응 역행, 좌초자산 리스크 직면

2025-08-28     편집국

[환경일보] 기후재해가 일상이 된 시대, 보험산업의 책무는 단순한 손해 보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의 규모를 줄이고 사회적 회복력을 키우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국제사회가 탈탄소 전환을 요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 보험산업의 나침반은 여전히 화석연료를 향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2024 한국 스코어카드’에 따르면 국내 주요 보험사의 기후리스크 관리 점수는 10점 만점에 평균 0.9점에 불과했다. 글로벌 주요 보험사 평균 4.7점과 비교하면 현격한 격차다.

일부 개선 조짐은 보인다. 삼성화재가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신규 화석연료 전체 제한 정책을 마련했고, 롯데손보와 한화손보도 석탄 밸류체인을 포괄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뒤따르며 실효성이 반감되고 있다. 기존 석탄 보험에 대한 철수 계획이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국내 보험사들의 화석연료 보험 잔액은 2024년 상반기 182조7000억원에 달하며, 신재생에너지 지원 규모(24조8000억원)의 7배가 넘는 불균형을 드러냈다.

국내 보험사들의 화석연료 보험 잔액은 2024년 상반기 182조7000억원에 달하며, 신재생에너지 지원 규모(24조8000억원)의 7배가 넘는다. /사진=환경일보DB

이 같은 구조는 글로벌 보험사들의 전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알리안츠, 악사(AXA) 등은 OECD 기준 2030년, 전 세계 기준 2040년까지 탈석탄 로드맵을 제시하고, 고객·기업 단위로 보험 제공을 제한하며 자산 전반의 전환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 배출량까지 반영한 과학적 목표 설정과 공시가 뒤따르기에 투자자와 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반면 국내 보험사들의 대응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국제시장에서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실질적인 전환에 나설 때다. 화석연료 정책은 발전용 석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야금용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까지 포괄해야 산업 전반의 고탄소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금융·보험 부문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반영한 감축 목표를 세우고, 이를 국제 기준에 맞춰 투명하게 공시하는 체계도 시급하다. 아울러 기존 화석연료 보험 인수에 대해서는 단계적 철수 계획을 세우고 연도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환경적 책무를 넘어, 좌초자산 리스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전략이 돼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역시 병행돼야 한다. 현재처럼 화석연료 금융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재생에너지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에너지 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보험사는 안정적 자산 운용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신재생 부문에 적극적으로 자본을 배분해야 하며, 정부도 금융당국 차원에서 기후리스크 공시 의무화, 탄소중립 목표 반영 기준 강화 등 제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보험산업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고 분산하는 제도다.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기후위기 대응을 강화하는 것은 환경 보호뿐 아니라 금융시장 안정과 국민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 옮길 때, 그 선택은 기후위기 시대 최소한의 책임이자 보험산업이 생존할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