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응, 기후재난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예방·회복 체계 없는 한국, 기후재난 관점으로 개편 시급 지휘 체계 일원화, 주민 중심 회복 정책 필요
[환경일보] 기후위기로 인한 대형 산불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산불 대응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8월 27일,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성곤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국회 인근 이룸센터에서 ‘기후위기와 대형산불: 기후재난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한국과 미국의 산불 대응 체계를 비교·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토론회는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재난안전관리 체계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논의의 일환으로, 지난 3월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을 계기로 사후 중심의 정부 대응 체계에 대한 한계를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건조주의보 일수는 1970년대에 비해 2.1배 증가했으며, NASA의 MODIS 위성자료 분석 결과 화점 수는 2000년대 초반 대비 최대 4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혜영 그린피스 선임연구원은 “이제 산불은 인위적 실화가 아닌 ‘기후재난’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기존의 사회재난 대응 프레임에서 벗어나 기후위기 관점에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는 한국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재난 정책 비교를 통해 한국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예방-보호-완화-대응-복구’의 5단계 순환체계를 운영하지만, 한국은 ‘완화’와 ‘회복’ 개념이 없는 4단계 선형 체계에 머물러 있다”며 “재난을 반복시키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중앙정부 중심의 하향식 지휘체계는 지역 맞춤형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 대응력 강화와 공동체 회복도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권이 지자체장과 산림청으로 나뉘는 구조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위험이 있다”며 지휘 체계 일원화와 전문기관 중심의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마을 공동체 회복과 지속 가능한 재건을 위한 주민 중심의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산불 원인과 전력회사 책임 문제도 토론의 중심에 섰다. 신하림 강원일보 기자는 2019년 고성 산불 사례를 언급하며 “명확한 원인 제공자일수록 보상과 구상권 문제로 갈등이 깊어진다”고 지적했고, 이선주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미국 샌디에이고 전력회사의 ‘공공안전 전력 차단’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전력도 시민의 안전을 위한 예방 중심의 공공기관으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도 대응 의지를 밝혔다. 정창성 행정안전부 국장은 지난 3월 영남권 산불 대응 사례를 통해 기후위기 속 재난 대응의 필요성을 공유했고, 송남훈 한국전력 관계자는 절연케이블 보강과 지중화, 차단 시스템 도입 등 산불 예방 기술을 소개했다.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위성곤 의원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보여준다”며 “피해 최소화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통합적 기후재난 대응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이번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국회 및 정부에 정책 개선을 위한 후속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