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변호사의 ‘정·비·공’ ⑨]
도시와 하수도: 3차 국가하수도종합계획을 기다리며
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환경일보] 우리들 공동체, 특히 도시의 역사는 하수도의 역사다. 고대 로마가 ‘클로아카 막시마’라는 거대한 하수관로 위에서 100만 인구의 제국을 유지했고, 19세기 런던에서는 대악취(Great Stink)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근대적 하수 시스템이 도시를 지탱했다. 문명은 늘 물을 다스리는 능력, 특히 쓰고 버린 물을 처리하는 능력 위에 세워졌다.
2025년 여름 우리가 아래로, 아래로, 버리고, 가리고 있었던 현실이 뒤집혀 드러났다. 시간당 100mm를 넘는 극한 호우가 전국을 강타했다. 맨홀 뚜껑이 하수도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날아오르고, 지하철역과 주택가는 흙탕물에 잠겼다. 단순히 ‘기록적인 폭우’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의 성장과 안전을 묵묵히 지탱해 온 지하의 혈관, 하수도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전문가, 정책 입안자, 정치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시민이 알게 되었다.
하수도법에 따른 제2차 국가하수도종합계획(2016~2025)이 막을 내리는 올해, 우리는 2025년 여름의 뼈아픈 교훈을 안고 ‘제3차 국가하수도종합계획’을 설계해야 한다.
미래의 도전: 낡은 청사진으로 맞설 수 없는 과제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 하수도 보급률 95.6%에 달하며 산업화 이후 악취와 수인성 질병의 위협을 극복하는 위생혁명을 이루어 냈다. 또한 하수처리 기술의 발달로 죽어가는 하천을 살려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도시 노후화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기후위기는 설계 기준을 무력화하는 재난이다. 2차 계획은 도시 침수에 대응하기 위해 하수관로의 방재 목표를 30년 빈도 강우로 상향하는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올해 8월 서울 은평구에는 시간당 100.5mm, 경기 고양시에는 105.0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100년 빈도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둘째, 구시대적 관로 시스템과 노후화는 도시의 시한폭탄이다. 맨홀이 솟구치는 현상은 단순히 빗물이 많아서가 아니다. 빗물과 생활하수가 한 관으로 흐르는 합류식 하수관거는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하수관로의 23.4%(40,677km)를 차지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의 불투수면적이 결합되면서 빗물은 하수도로 폭주한다. 여기에 시설 노후화가 더해진다. 30년 이상 된 노후 하수관로 비율은 2025년 38.1%에서 2035년에는 51.5%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를 방치하면 도로 함몰(싱크홀), 지하수 및 토양오염, 그리고 가슴 아픈 인명사고로 이어진다.
셋째, 재정의 악순환이 미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2040년까지 노후 시설 재투자에 필요한 비용은 무려 53조원으로 추산된다. 2013년 기준 전국 평균 하수도 요금 현실화율은 45.3%에 불과하다. 1톤당 1537.2원의 처리원가에 요금은 696.2원을 내고 있다.
제3차 국가하수도종합계획의 방향: 2050비전을 위한 실행계획
환경부는 이미 지난 2012년 ‘기후와 미래사회 변동에 따른 하수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를 목표로 2050 하수도 정책비전을 수립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크고 어렵고 대담한 목표’를 도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제3자 종합계획은 이미 위태로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 관점: ‘방어’에서 ‘예측과 제어’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설계 기준도 예측 불가능한 폭우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제3차 계획은 단순히 관을 키우는 ‘방어’ 전략을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관리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강우를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수문과 펌프를 제어하여 물의 흐름을 분산시키는 ‘스마트 유역 관리’의 전면 도입이 핵심 과제다. 재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시대를 끝내고, 데이터를 통해 재난을 사전에 예측하고 제어하는 시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순환과 에너지 관점: ‘처리장’을 ‘자원 생산 공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수는 더 이상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닌, 도시가 품은 거대한 ‘자원’이다. 현재 추진 중인 ‘제2차 물 재이용 기본계획’과 하수도 계획의 유기적 통합이 필요하다. 2030년까지 하수처리수를 재이용하여 연간 19억 톤(1,898백만㎥/년)에 달하는 물을 확보하고 공업용수와 하천유지용수 등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다.
제3차 계획은 하수처리장을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기지이자, 하수 찌꺼기(슬러지)의 바이오가스화, 하수 열에너지 회수 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형 자원 공장’으로 전환하는 구체적 로드맵을 담아야 한다.
재원과 형평성 관점: ‘지원’에서 ‘지속가능한 투자’로 바뀌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재원과 형평성이다. 제3차 계획은 요금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과 함께, 절약한 에너지나 판매한 재생수로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형 인프라 모델’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또한,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경제 중심지뿐만 아니라, 반지하 주택 밀집 지역 등 인명 피해 위험이 가장 큰 재난 취약 계층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회적 형평성의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2차 계획에서 제안된 ‘하수도 자산관리’ 제도를 전면화하여, 가장 시급한 곳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보이지 않는 하수관거는 도시의 혈관이다. 제3차 국가하수도종합계획은 단순히 낡은 관을 교체하는 것을 넘어, AI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난을 예측하고, 하수를 에너지와 자원으로 바꾸는 스마트 순환 시스템으로의 대전환을 이루는 청사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