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더기와 악취 속 절규
악조건 재활용 선별 현장··· 방치된 안전 공백 메워야
[환경일보] 도시는 매일 수천 톤의 쓰레기를 쏟아낸다. 수거 차량이 이를 실어 나르고, 대형 선별장에서 분류 작업이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재활용’이라는 말로 가볍게 치부하는 뒤편에는 악취와 구더기,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현장이 존재한다. 최근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토크 콘서트에서 재활용 선별원들이 직접 털어놓은 증언은 한국 자원순환 체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선별원들의 노동 현장은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최전선이다. 그러나 이들의 현실은 안전은커녕 기본적인 노동 조건도 보장되지 않는다. 지하 수십 미터 공간에서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수건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갈아야 하고, 구더기와 파리가 들끓는 곳에서 장갑조차 ‘빨아 쓰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것이 오늘의 노동현장이라 할 수 있나.
보호 장비 부족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세균, 화학물질, 미세먼지는 장기적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에는 노동자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 장갑, 토시, 마스크 지급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폐기물 처리시설의 지하화다. 수도권과 광역시가 공간 확보를 이유로 시설을 지하로 옮기는 사이, 사고 발생 시 대피 불능이라는 심각한 위험이 고착화되고 있다. 지하 8층에서 화재가 나면 훈련으로도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한 직종의 노동조건 문제가 아니다. 도시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누군가는 분류해야만 한다. 선별 노동이 없다면 자원순환 체계는 멈추고, 도시는 곧 마비될 것이다.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저임금, 저가치로만 취급하며 방치해 왔다. 이번 증언은 값싼 편리함 뒤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따라서 폐기물 처리시설에도 독립적인 산업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제조업 공장은 법으로 실내 공기 관리가 규정돼 있지만, 폐기물 시설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악취와 환기, 유해물질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 기준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민간 위탁과 외주에 의존하는 현재의 구조 역시 바뀌어야 한다. 책임 회피가 반복되는 한 근본적 변화는 요원하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고 직영 운영을 확대할 때만 안정적 관리가 가능하다.
기업과 시민사회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재활용 선별원의 노동은 기업이 만들어 낸 포장재와 시민이 배출한 폐기물에서 비롯된다. 제로웨이스트와 탈플라스틱은 단순한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노동 현장의 고통을 줄이는 실질적 대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구더기와 악취 속에서 버텨 온 선별원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원순환 체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더는 책임을 미룰 수 없다는 촉구다. 이들의 노동을 도시의 필수 기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것은 자원순환이 아니라 곧 우리의 삶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