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원과 건물의 숨겨진 얼굴

공조 시스템의 민낯과 기계설비 분리발주가 필요한 이유

2025-10-02     편집국
홍희기 경희대 교수(전 대한설비공학회장)

[환경일보] 병원 감염, 호텔 투숙 중의 불쾌한 냄새, 사무실의 원인 모를 두통. 우리는 종종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그 근원에는 바로 우리가 ‘볼 필요가 없다’고 여겨온 기계설비, 그중에서도 냉난방 및 환기, 즉 공조(HVAC) 시스템이 숨겨져 있다.

기계설비 분리발주가 잊힌 상태로, 저가 수주와 무관심 속에 무방비로 방치된 기계설비의 실태는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다. 공조실 입구에는 통상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전문성 있어 보이는 그 ‘관계자’와 공조실의 실체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조금 공개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공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건물의 공조 시스템은 감염병 확산의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병원은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공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전염병 균이 공기를 통해 쉽게 전파될 수 있으므로, 병원 공조는 실내에서 배출되는 오염된 공기를 재순환시키지 않고 모두 외부로 배출하는 전외기 방식이 원칙이다.

그러나 냉매를 사용하는 시스템 에어컨은 별도의 환기 장치가 없는 경우 실내 공기를 흡입하여 냉각, 재순환시키는 구조다. 이는 감염병 바이러스나 세균이 건물 전체로 퍼지는 최악의 경로가 될 수 있다. 과거 삼성의료원 메르스 감염 사태는 이러한 무지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로, 전공기 방식의 부재와 관리 소홀로 인해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공조 시스템의 또 다른 민낯은 바로 곰팡이와 세균이다. 자동차 에어컨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냉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로로 인해 냉각 코일이 젖은 상태로 방치되면서 곰팡이가 번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물 공조기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습한 환경은 세균과 곰팡이에게 매우 좋은 서식지를 제공하며, 오염된 공조기를 통해 이들이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간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호텔 객실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퀴퀴한 냄새, 오래된 사무실의 직원들이 겪는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은 모두 오염된 공조 시스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병원의 공조 시스템이 이러한 상태로 방치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수준이다. 면역력이 취약한 환자들이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신다는 것은 그 자체로 2차 감염의 위험을 초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 관리자나 소유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실과 공조기 내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과 관심이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청소를 넘어선 근본적인 기술적 개선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의 에어컨에서 채택하고 있는, 공조기 가동을 멈춘 후에도 냉각 코일의 결로를 제거할 수 있는 자체 건조 운전 방식을 채택하거나, 아예 결로 발생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데시컨트 건조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초기 투자 비용이 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며 유지·보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포함시키느냐 여부로 의견이 분분한데, 그에 앞서 우리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공조 시스템이 얼마나 위생적인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실제 운영 데이터와 성능 검증,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정책 제안 자료는 여전히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기계설비 분야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건축물의 외관과 인테리어에 쏟는 관심만큼, 그 내부를 지탱하는 기계설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계실과 공조실은 건물의 숨겨진 심장과 폐다. 이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건물은 단순한 콘크리트 박스에 불과하며,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병원, 호텔, 사무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집의 공기가 과연 깨끗한지 의심해 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21세기 선진국에 걸맞게, 낡고 오염된 기계설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건축물에서 기계설비 분리발주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