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너지 효율 불균형
산업·건물 부문 상위권, 수송·정책은 하위권
[환경일보] 한국이 국제 에너지효율 평가에서 처음으로 10위권에 올랐다. 산업과 건물 부문에서 뚜렷한 개선을 보이며 순위가 한 단계 상승한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상승’이라는 결과 뒤에는 여전히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수송과 국가적 노력 부문이 하위권에 머물며, 전반적인 정책 불균형과 실행력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에너지효율경제위원회(ACEEE)가 발표한 ‘2025 국제 에너지효율 득점표’에 따르면, 한국은 총점 60.75점으로 25개 주요국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2022년보다 7.75점 상승한 수치로, 산업 부문과 건물 부문이 전체 성과를 끌어올렸다. 특히 제조업 에너지원단위가 세계 7위 수준으로 낮게 나타나며 산업 효율화의 성과가 확인됐다. 또한 건물 부문에서도 에너지 기준 의무화와 가전 효율 표시제 등 정책적 기반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산업·건물 부문의 개선과 달리 수송과 국가적 노력 부문은 여전히 취약하다. 수송 부문은 25점 만점 중 8.5점을 받으며 13위에 머물렀다. 대형 트럭 연비 및 배출가스 기준이 부재하고, 친환경차 보급 속도도 주요국에 비해 더디다. 도로 중심 교통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철도 투자 비율은 높지만, 수송 효율의 절대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 노력 부문 역시 목표는 명확하지만 실질적 투자가 뒤따르지 않는다. 1인당 에너지효율 R&D 투자액은 세계 7위 수준이지만, 실제 이행 투자는 최하위권에 머문다.
이번 결과는 한국의 에너지효율 정책이 안고 있는 ‘두 얼굴의 성적표’를 드러냈다. 산업과 건물에서의 개선은 기술적 진전을 보여주지만, 제도와 정책의 지속성은 여전히 불안하다. 에너지효율을 국가 성장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 유럽연합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부문별로 단절된 접근에 머물러 있다. 산업·건물 부문에 집중된 정책은 단기 성과를 낳을 수 있으나, 수송·전력·생활 부문까지 통합되지 않으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특히 교통 부문의 후퇴는 심각한 경고다. 수송 부문은 전체 국가 배출량의 14% 이상을 차지하는데, 차량 연비 개선과 전환 정책이 지연되면 국가 전체의 감축 목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형 트럭 연비 기준, 내연기관 감축 로드맵, 친환경 물류체계 구축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에너지 소비 구조를 산업 중심에서 생활·수송 중심으로 확장하지 못한다면, 효율성 향상은 국지적 성과에 머물 것이다.
이번 점수의 차이는 단순한 순위 경쟁이 아니라,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프랑스와 독일이 상위권을 유지하는 이유는 기술력보다 제도의 일관성과 국가적 의지에 있다. 우리도 이제는 ‘효율’의 범위를 기술에서 제도로, 산업에서 사회로 넓혀야 한다. 에너지효율은 탄소중립의 첫 단추이자 경제 구조 전환의 핵심 축이다. 균형 없는 발전은 한계가 명확하다. 부문 간 불균형을 바로잡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진정한 10위권 국가의 자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