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 탄소집약도 미흡에 운항 중단 위기
벌크선 25%, 탱커선 12% 탄소집약도지수 D등급 이하 추정
연료 전환·대체연료 선박 도입 미진··· '탄소비용 리스크 현실화'
[환경일보] 세계 주요 해운사들이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연료 전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 선박의 상당수가 탄소집약도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운항 중단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기후솔루션의 분석이 나왔다. 감축 로드맵과 목표를 수립했음에도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실정으로, 이대로라면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후솔루션이 11월 5일 발표한 보고서 ‘탄소중립 시대, 국내 해운사는 준비되었는가’는 전 세계 100대 해운사의 ESG 공시 및 감축 현황을 비교·분석해 한국 해운업계의 대응 수준을 평가했다.
분석 결과, 한국 해운사가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벌크선 4척 중 1척이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집약도지수(CII) 평가에서 D등급 이하를 받을 것으로 추정됐다. 탱커선의 경우 11.7%가 D등급 이하로 분류될 것으로 추정됐다.
특정 선박이 3년 연속 D등급 또는 1년 이상 E등급을 받을 경우, 선사는 시정조치 계획을 제출하고 이를 승인받아야 하며, 미이행 시 운항 중단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CII 기준은 매년 강화되고 있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동일 선박이라도 향후 등급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결과는 감축 계획은 수립했으나 실질적 이행이 미흡한 업계 현실을 반영한다. 보고서는 한국 선사들이 탄소감축 로드맵과 IMO 규제 대응 계획 등 전략·공시 부문에서는 양호한 평가를 받았지만, 대체연료 추진선 도입, 친환경 연료 전환 일정, 이중연료선 개조 계획 등 실제 이행에 관한 정보는 현저히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요 국내 선사 가운데 대체연료 사용 비율을 명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연료소비량 및 배출량 등 기본 데이터의 공개 수준도 매우 낮았다. 보고서는 이를 한국 해운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하며 “공시와 이행 간의 격차가 클수록 탄소 비용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지난 10월 예정됐던 IMO의 ‘넷제로 프레임워크(NZF)’ 중기조치 채택이 1년 연기되면서 당장 탄소요금이 부과되지는 않지만, EU 배출권거래제(ETS) 등 주요 규제 시행 일정은 이미 확정된 상태다. 보고서는 향후 5년 내 대체연료, 전기추진, 수소혼소 기술 확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해운업은 이중 규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유예된 1년은 대응을 늦추는 기간이 아니라, 준비를 가속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평가다.
보고서는 “IMO의 단기조치와 향후 중기조치는 환경규제를 넘어 해운업의 비용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제도”라며, “화석연료 중심 운항을 지속할 경우 탄소요금 부담이 선박 감가상각비를 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기 전환을 통해 초기 비용을 분산하고,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를 확보하는 전략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한 보고서는 정부와 업계에 대해 ▷친환경 연료 전환 보조금 및 공적금융 기반 ‘그린선박펀드’ 조성 ▷노후 선박 조기 폐선 및 친환경 선대 확충 ▷선사별 연료전환 로드맵 공개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한주은 기후솔루션 해운팀 연구원은 “IMO 중기조치 채택이 미뤄졌다고 해서 대응을 늦출 수는 없다”며 “한국 해운업계는 유예된 1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CII, EEXI, 운항 최적화 등 단기조치와 연료 전환이라는 장기 전략을 통합한 실행계획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