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축 없는 순환경제 없다

재활용 한계 넘어, 탈플라스틱 법제화 시급

2025-11-07     편집국

[환경일보] 플라스틱 문제는 더 이상 소비자 책임이나 분리배출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인 한국의 과제는 ‘얼마나 잘 버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덜 만들 것이냐’에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시민사회가 제안한 ‘탈플라스틱법’은 바로 그 방향 전환의 출발점이다. 플라스틱 원재료의 총생산량을 2050년까지 ‘제로(0)’로, 2040년까지는 2019년 대비 75%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기후·생태 위기를 산업 구조의 문제로 직시한 첫 입법 시도다.

플라스틱은 전 생애주기 중 생산단계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90%를 배출한다. 그럼에도 정부 대책은 여전히 폐기물 관리 중심에 머물러 있다. 분리배출 개선이나 재활용 비율 확대만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에 한계가 명확하다. 이번 법안은 폐기물 관리 중심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생산 감축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점에서 전환의 의미가 뚜렷하다.

플라스틱은 전 생애주기 중 생산단계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90%를 배출한다. 분리배출 개선이나 재활용 비율 확대만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에 한계가 명확하다. /사진=환경일보DB

물론 산업계의 부담과 기술적 전환 속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산 감축이 곧 산업 위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석유화학 산업이 고부가가치·친환경 산업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탈플라스틱은 환경 규제가 아니라 산업 혁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실행력이다. 현재 산업통상부는 친환경 플라스틱 전환과 기술 개발 병행을 내세우지만, 명확한 생산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산업 부문에 직접 반영하지 않는 한 전환은 요원하다.

탈플라스틱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산업별 감축 경로와 사회적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 아래,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고용 안정과 전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한 플라스틱을 대체할 생분해성 소재, 재사용 시스템, 무포장 유통 등 대체 인프라 확충이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 감축 없이 순환경제를 논할 수는 없다.

국가 차원의 플라스틱 총생산량 감축 목표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기후책임의 최소 조건이다. 유럽연합과 캐나다가 이미 생산량 규제에 나선 지금,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세계 시장은 이미 플라스틱 의존 산업을 위험자산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탈플라스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전주기 자원순환’이라는 추상적 구호를 넘어 생산 단계에서의 실질적 감축 목표를 명시해야 한다. 국민의 인식은 이미 거기에 닿아 있다. 플라스틱 감축이 곧 탄소 감축이며, 기후위기 대응의 첫 단추임을 직시해야 한다. 재활용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할 때다. 산업정책의 축을 바꾸지 않는 한, 순환경제는 공허한 수사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