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변호사의 ‘정·비·공’ ⑫] 환경교육은 생존교육이다
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환경일보] ‘환경교육’을 생각한다. 환경과 사회, 환경권, 환경갈등, 환경정의. 위험사회와 기후위기. 위기 커뮤니케이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유해성과 위해성. 탄소중립과 정책수단. 원인자 책임과 인과관계. 무수한 키워드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인식에서, 사회의 정책과 제도에서, 공동체의 공론장에서 교차된다. 그래서 다시 환경교육을 생각해 본다.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는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2021)에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자연환경에 큰 부담을 주었고, 결국 우리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날 세계에는 높은 생활수준과 아찔한 불평등이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평화롭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 그 자체에도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변혁의 기본 원칙으로 “전 생애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것”과 “공공의 노력과 공유재로서의 교육을 강화할 것”을 제시했다.
이러한 선언은 환경교육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환경교육은 기술을 넘어 인식의 혁신을, 제도의 개편을 포괄하는 관계의 재구성을 지향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새로운 배움에서 시작된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 시대의 환경교육이 품은 약속이다.
‘환경교육사’ 양성교재를 읽는다. 이 교재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전환의 무게를 숨기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최대 과제는 기후위기 극복이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사회·교육·생활·인식·가치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현실 진단이다. 교재는 환경교육을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사회의 운영체제를 새로 짜는 실천으로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환경학습권’이 있다. 모든 국민이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에 대해 알 권리,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 그리고 배움을 통해 존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는 개념이다.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며, 그 권리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다.
교재의 첫 단원 ‘환경과 사회’는 환경문제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다. 오염과 자원 고갈의 원인을 과학기술의 실패로만 보지 않는다. 불평등한 제도와 시민참여의 부재, 사회 시스템의 왜곡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환경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오염의 피해가 특정 지역과 계층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환경교육이 곧 사회정의를 배우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단원 ‘통합적 환경탐구’는 경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채굴하고, 만들고, 버리는 선형경제 대신, 자원을 순환시키는 순환경제의 원리를 중심에 둔다. 재활용과 재사용을 넘어, 제품을 설계할 때부터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는 사고방식을 가르친다. 이는 기업의 ESG 경영과 같은 맥락에 있다. 결국 환경교육은 경제의 언어를 바꾸고, 지속가능한 산업의 토대를 세우는 학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 단원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국가 정책의 언어를 개인의 학습으로 옮겨놓는다. 2050 탄소중립은 먼 목표가 아니라, 지금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약속임을 일깨운다. 탄소중립은 정책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라는 메시지다.
이 교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제도적 진전을 이뤘다. 2022년 개정된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모든 국민의 환경학습권을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환경학습권은 환경을 배울 권리를 넘어, 환경재난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환경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기본권이다. 같은 해 ‘교육기본법’에도 생태전환교육 조항이 신설되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에게 기후변화 대응 교육을 제공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동안 환경교육사 자격을 가진 3000여명이 넘는 전문가가 배출되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자리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는 환경교육이 ‘범교과 학습’으로만 다뤄지고, 전담 교사 없이 외부 강사를 일시적으로 초청하여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관계도 끝난다는 한 강사의 말은 이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해 여름 국회에서 열린 ‘기후재난 시대, 환경교육은 생존교육이다’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현실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발표자는 “기후재난은 항상 발생한 곳에 또다시 발생한다. 재난 대응의 설계에 환경교육이 빠지면 피해는 되풀이된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발표자는 “기후대응기금에서 에어컨 설치에 1000억원이 배정됐지만, 환경교육 예산은 0원”이라고 지적했다. 재난의 원인을 가르치지 않고 냉방기를 늘리는 사회, 이것이 우리사회가 환경교육을 대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환경교육이야말로 재난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가장 경제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모든 공무원에게 환경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기후위기는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산업, 복지 전반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국가 역량의 문제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은 생존을 위한 사회계약이다. 새로운 제도들도 중요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철학을 현실로 옮길 실행력이 필요하다. 환경교육사를 녹색 일자리의 중심으로 제도화하고, 학교 환경교육을 정규 교육과정 속 실천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책속의 문장들이 삶과 사회의 일상 언어로 살아난다. 교육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사회가 달라진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기술의 성과와 함께 교육의 품에서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