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소중립 정부’의 자기모순

재정의 방향 전환 없이는 미래차 경쟁력 없어

2025-11-13     편집국

[환경일보] 정부가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내연기관차를 지원하는 데 매년 8조원 넘는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그린피스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의 ‘전기차 전환, 역행하는 정부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내연기관차 관련 지원은 24조8000억원에 이른다. 유류세 한시 인하, 유가보조금, 하이브리드차 세제 감면 등이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지탱하며 정부 스스로 설정한 탄소중립 목표를 흔들고 있다.

내연기관차 지원은 단순한 산업 보전이 아니다. 총소유비용(TCO) 기준에서 전기차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시장 신호를 왜곡한다. 소비자는 정책 방향을 이해하기 어렵고, 산업계는 중장기 전환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하면서 화석연료 기반 차량을 지원하는 것은 정책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정이다.

보고서 분석은 문제의 규모를 수치로 보여준다. 내연기관차 지원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수송부문 배출량을 3.6%, 최대 207만톤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유류세 정상화와 전기차 지원 확대를 병행하면 감축률은 15.7%, 감축량은 903만톤까지 늘어나 수송부문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4분의 1을 충당할 수 있다. 추가 재정 투입 없이도 가능한 변화라는 점에서, 지금의 지원 구조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명확해진다.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내연기관차 지원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수송부문 배출량을 3.6%, 최대 207만톤 줄일 수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정부는 내연기관차 지원을 산업 보호의 명목으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보호는 미래 경쟁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유지가 아니라 전환이 필요하다. 유류세 감면 대신 소득 보전, 보조금 대신 혁신 투자로 방향을 바꾸면 된다. 확보된 재정은 전기차·수소차 등 무탄소 모빌리티로 이동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내연기관차 퇴출을 공식화했다. 유럽연합은 2035년, 미국은 2032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 일본·중국·인도도 일정표를 제시했다. 한국만이 여전히 보조금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실제로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내연기관차 지원을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전환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내연기관차 지원의 지속은 기후위기 대응을 늦추고, 미래 산업의 기회를 경쟁국에 내어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재정의 확대가 아니라 재정의 방향 전환이다. 정부는 탄소중립의 이름으로 과거 관성을 거두고, 전기차 전환의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며,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가는 현실적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