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달라진 장마, 기상학계가 새 정의 마련 나선다
한국기상학회, 북태평양 고기압 중심의 강수 조건 반영한 정의 제시
[환경일보] 기후변화로 장마의 기간과 강수 양상이 빠르게 변함에 따라, 한국기상학회가 국립기상과학원의 지원을 받아 장마의 기상학적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다. 학회는 전문가 설문, 토론, 장마특화연구센터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장마의 새로운 정의’를 제안했다. 이 내용은 2025년 11월 12일 열린 ‘장마 개념 재정립 포럼’에서 집중 논의됐으며, 향후 한국기상학회 대기과학용어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식 정의로 확정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장마전선을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해 기단이 충돌해 형성된다고 설명했으나, 최근 연구는 이러한 설명이 현재의 장마 양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최근 여름철 오호츠크해 기단은 뚜렷하게 발달하지 않으며, 정체전선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 구조가 장마전선 형성의 핵심 역할을 하며, 이 영역에서 하층 소용돌이, 대기 불안정, 수분 수송 등 복합적인 요소가 집중호우를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장마는 하나의 전선이 아니라 다양한 기상 요인이 반복적으로 활성화되고 비활성화되는 복합적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서울대 손석우 교수(한국기상학회 재해기상특별위원장)는 “기존처럼 두 기단의 충돌로만 장마를 설명하는 모델은 최근의 폭우 양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장마 정의의 중심을 강수 조건과 기압 배치 변화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 5월 ‘장마 포럼’에서는 학회 정회원 124명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이 실시됐다. 응답자의 90%가 ‘최근 장마 양상이 변했다’고 답했고, 75% 이상은 ‘장마 개념의 학술적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마’라는 용어는 유지하되, 기후변화에 따른 강수 특성을 반영해 명확한 기상학적 정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제안된 새로운 장마 정의는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는 시기에, 남쪽의 온난다습한 기단과 북쪽의 한랭한 기단이 만나는 경계에서 강수가 발생하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는 기간’이다. 이 정의는 기존의 정체전선 중심 개념에서 벗어나, 강수 가능성이 높은 환경 조건에 주목한다. 정체전선, 중위도 저기압, 대류 불안정 등에 따른 다양한 강수 메커니즘을 포괄하며, 태풍에 의한 강수는 제외된다. 또한 비가 적은 ‘마른장마’, 장마 이후 늦여름 집중호우 등 최근의 변칙적 강수 양상도 포함할 수 있다.
공주대 장은철 교수(장마특화연구센터)는 “장마는 단일 전선이 아니라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수분 수송과 대기 변형장이 맞물리며 나타나는 계절적 강수 현상”이라며 “이번 정의는 과학적 현실과 정책적 대응 모두에 부합하는 개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기상학회는 새 장마 정의가 확정되면 이를 기상 콘텐츠에 반영할 방침이며, 국립기상과학원은 이 내용을 초중고 교과서에 반영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장마 재정의는 학술적 의미를 넘어 여름철 재난 대비와 국민 안전의 기준을 새롭게 수립하는 작업이다.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장마의 시작과 종료 시점, 지속 기간, 강도의 변동폭이 커지고 국지적 폭우가 잦아지고 있다”며 “장마는 이제 단순한 용어가 아닌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개념이며, 과학적 정의 확립은 그 첫걸음”이라고 밝혔다.